소모품의 꿈

1일 1글 첫번째

by mel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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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된 지 1일 차. 다들 2021년으로 뻗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2020년에 머물러있다. 내 시계는 고장난 것도 아닌데 분초를 가리키는 시침을 통째로 뽑아낸 것만 같다. 시간이 간다는 것은 느끼지만, 멈춰있는 것처럼 시간을 알 수 없다. 그래서일까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다른 이의 시계바늘 소리가 들려온다. 똑딱똑딱 째각째각

그런 월요일 속에서 다른 팀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네 생각이 나는 월요일이네.”로 시작하는 인사는 대출금과 지겨움과 고충이 섞인 자기 고백으로 연결됐다.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절로 드는 생각에 반가운 이야기가 오갔다. 끝인사를 나누며, 누군가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내 마음은 여기 있지만, 몸은 거기에 있어,’

닳고 닳은 소모품은 잊지 않는다, 내가 소모품인 것을. 몸과 마음을 고치고 돌아가도 어차피 또 닳으면 나를 바꿔치기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왜 그토록 완벽한 소모품이 되고자 노력할까. 최선을 다해 맞물리지 않으면, 역할을 하지 않으면 더 빨리 버려질 것을 알아서? 나를 괴롭히며 뽑아낸 결과물이 안겨 줄 성취감 때문에?

(흠 그렇게 우울하지 않은데 쓰다보니 우울감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것은 글이 주는 폐해. 있어 보이게 쓰고 싶기 때문이다. 거기다 1일 1글인데 30분밖에 남지 않는 월요일이 나를 쪼고 있다. 뜬금없이 고해성사.)


20대 때는 할 수 있는 일인가, 하고 싶은 일인가. 사이에서 숱한 고민을 했다.
내가 잘하는 일인가, 잘하지 못해도 하고 싶은 일인가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으려니.
그때의 나에게 말할 기회가 생긴다면 말해줄까 어쩔까.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인생은 별반 다르지 않아. 다른 일을 해도 인생은 비슷할 거야. 우리는 소모품이니까. (우울감이 고조된 것처럼 보여도 나는 희망차다)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해도, 오래만 버틴다면 잘할 수 있게 돼.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뻔뻔해진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무엇이든 해도 돼.

그렇다면 나는 자청해서 소모품이 되고 싶을까.
아니면 뛰쳐나가 쓸모가 다한 수명을 다른 곳에서 이어갈까.

둘 사이를 가늠하며 고민하겠지, 그리고 끝내 덜 두려운 것을 택할 것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 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면 지금의 내가 바뀔 거로 생각하는 것처럼,
지난 내가 지금의 나라면 무엇이든 잘할 것이라 믿고 있던 것처럼
지금이 아닌 과거든 미래든, 다른 시간의 나에게 의지하게 된다.
너는 부디 다른 선택을 해줘.

누구보다 완벽한 소모품이 되고 싶다.
뛰쳐나가 소모품이 아닌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렇구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이루고 싶은 욕심 덩어리들의 고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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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키워드는 #새해 #시작 #계획 이었으니 (지금 알았다)
위의 깨달음을 얻은 나에서 출발하자.

글이 쓰고 싶다. 글이 쓰고 싶다. 쓰고 싶어. 쓸거야. 써야지.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엉덩이를 뭉개 앉아 열심히 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미친 듯이 쓰기 싫어진다. 글쓰기 싫다. 도망치고 싶어.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뭐였지?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아. 잘 쓰고 싶어.
그러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결국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잘 쓰고 싶다.
그냥 글이 쓰고 싶은 게 아녔어. 잘 쓰고 싶었다. 잘!
여전히 삶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 지난 내가 여기 있다.
지금의 내가 애쓰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소모품이 꿀 수 있는 최상의 꿈에서 비켜나,
몸과 마음을 고치러 혹은 버려진 채, 덩그러니 다음을 꿈꾼다.

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완벽한 소모품을 꿈꿀까. 아니면 잘 써볼까.
근데 참 우스운 건, 완벽해 본 적도 잘 써본 적도 없다는 거다.
(그러니 꿈꾼다는 거야.)

실수를 할 때마다, 스스로 다독이는 말이 있었다.
실수해도 괜찮아. 다음이 있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완벽한 척(..)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의 내겐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잘 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그다음을 모르니까, 그래 글을 써야겠다. 잘 쓰지 않아도 괜찮은 글.



어찌됐든 글을 쓰는 것이 새해 계획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누구든 좋으니 내 부탁 좀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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