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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글쓰기와나
정정한다. 이번 주제가 제일 어렵다! (이 말을 몇 번째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ㅋㅋ)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던 하루에 글 하나 쓰기였는데 어느새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유는 안다. 바로 '나'를 찾고 있는 과정처럼 느껴져서. 참 늦되게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를 알게 되는구나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어쩌면 이것이 출산의 현장이 아닐까..ㅋㅋ (물론 고통이야 비할 바가 없겠지만) 내가 나를 낳고 있는 그런 느낌. 내 안에 오랜 시간 품고 있던 나를 끄집어내는. 어쩌면 탈피의 현장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허물을 벗고, 어렴풋이 알던 나를 덮고 이제야 2021년의 내가 됐네. 몇 년을 건너뛴거야 지금, 하는 그런 기분이 든다.
글쓰기, 내가 언제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더라.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부터 나는 (엄마피셜)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 취미는 아마 엄마가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고 한다. (이것도 엄마 피셜). 더운 여름이면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도서관에 나와 동생을 데려가 하루종일 문이 닫을 때까지 그곳에서 있었다네. 참 신기하게도 이 이야기를 하도 듣다보니, 그 여름의 도서관 냄새와 공기와 분위기가 떠오른다. 기억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내 머리속에 그곳이 추억된 것이다.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은) 첫 칭찬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첫 상을 받은 것이 그때 였으려나. 선사유적지로 소풍을 다녀왔는데 백일장인가 어디에서 그 주제로 글을 쓰게 됐다. 그리고 그 원고지는 (엄마피셜) 교장실 문에(?) 액자로 걸렸다. 마치 공룡이 살아 숨쉬는 것 같다며 (ㅋㅋㅋㅋ) 초2의 문장력이 아니라며 극찬을 받았다는 오로지 엄마피셜 이야기. 엄마에게 난 항상 특별한 딸이니까, 아이니까 어느 정도의 과한 사랑은 이해해주길. (난 이해 못하지만 다른 사람은 이해해줘야함. 우리 엄마는 나만 욕할거야와 같은 맥락이지)
칭찬의 힘이란 그렇게 크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결국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다. (아직 평생의 업은 안됐나.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내 안의 이야기니까.) 그러니까 칭찬을 정말 많이 해줘야해. 아이에게는 내일의 꿈을 꾸게 하고, 어른에게는 오늘을 살아갈 힘을 준다. 이 글을 읽어주는 당신은 정말 다정한 사람입니다. 덕분에 매일매일 글을 쓰고 싶다는 용기를 얻게 돼요.
그래 칭찬의 힘이란 크다. 글을 잘 쓰는 아이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글을 못 쓰는 아이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 가끔은 후자에 해당되는 아이가 아녔을까 싶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엄마의 과장된 칭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엄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뒤 또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인가) 숙제가 있었다. 어떤 숙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할머니의 삶을 인터뷰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받았는지 모를 상가 메모지에 삐뚤빼뚤 그 삶을 기록했었다. 아휴 아까워. 그 자료가 남아있었으면 내가 아마 엄청난 소설을 썼을텐데...! ㅋㅋ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그 미래를 모르고 메모지를 아무렇게나 뒀다지. 분명 엄마가 버렸을거야! 이런 이야기로 할머니 이야기할때마다 엄마와 투닥거린다. 자꾸 딴 이야기로 새네...ㅋ
그때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할머니 이야기 자체가 한국의 근현대사였으니까. 그걸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당시 난 엄마가 사다준 한국사와 세계사 만화책 전집(각 20권 가까이 되는)을 수십번은 반복해서 읽은 상태였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그 만화책을 읽은 덕분에 국사와 세계사는 공부를 별로 하지 않고도 항상 만점을 받았다. 특히 수능에서 세계사는 많이들 선택하지 않는 과목이었는데, 난 선택했고 당시 고3 담임선생님이 나를 호출했었다. 방대한 세계사를 공부하면 다른 걸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니 선택과목을 바꾸라고. 그때 나는 세계사는 공부하지 않는다고 답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듣는 걸로 충분하다고. (겁나 자만함 ㅋㅋㅋㅋ 근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고 읽지 않고 관심 갖지 않으면 결국 다 잊어버린다. 인간의 뇌란 얼마나 단순한가! 어찌됐든 세계사는 수능에서 만점 받았다. 엣헴)
그런 나에게 할머니의 삶은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줬다.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았고, 한 권의 책을 읽은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말미에서 등장한 역사가, 그저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그 사건들이 할머니의 삶에 존재했다. 그때는 순수한 동경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당시 내가 즐겨읽었던 책이 그리스로마신화라 그때 쯤의 역사를 달달 공부했는데, 그런 동일선상에 할머니의 삶이 있는 거잖아!
그래서 그 이야기를 내가 쓰고 싶었지. 지금도 물론 쓰고 싶다. 함경북도가 고향인 우리 할머니, 꿈 많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 보고 싶은 아버지 어머니 내 고향.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겪은 고생과 고통과 회한을 어렴풋이 이해할 때쯤엔 정말 할머니의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나아가 엄마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우리 할머니의 사랑, 할머니의 노래, 할머니의 걱정, 할머니의 눈물, 할머니의 삶. 아 할머니 보고 싶다. 근데 참 쉽지 않네. 아직도 눈을 감으면 할머니가 나지막이 이야기해주던 풍경이 떠오른다.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고 드문드문. 그래서 얼른 쓰고 싶다. 이 끈을 다 놓아버리기 전에,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처음으로 시나리오 아닌 시나리오를 썼다. 동화 같은 구성이었는데, 하여간 꿈과 사랑의 대모험! 같은 이야기. 당시 만화를 엄청 좋아했으니 당연한건가. (5,6학년이었는데 만화에 푹 빠져있었음) 근데 같이 발표하기로 한 친구들이 창피하다고 해서 그대로 망함 쫄딱 망함. 그게 잘 됐으면 내가 더 자신을 갖고 쓸 수 있었을까? 끝을 맺지 못한 제목 없는 이야기들이 내게 너무 많다. 한번도 이야기에 제대로 된 제목을 지어준 적이 없다. 끝을 맺어본 적이 없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해 본 적이 없다는 건 꽤 죄책감이 든다. 아직 그들을 행복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 느낌적인 느낌.
어떤 글을 쓰고 싶을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좋으니 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글, 내 것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컸으니까. 근데 지금은 달라. 누군가 읽어줬으면 좋겠고, 내 글을 좋아했으면 좋겠어. 그것이 무엇이 됐든, 내 색을 찾고 싶다. 사실 글은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안의 이야기, 나의 생각, 나의 말 결국 나를 좋아해달라는 건가. 그건 너무 뻔뻔하잖아. 그냥 혼자 써야겠다, 가 오늘의 결론.
1일 1글을 쓰면서 매일 글쓰는 훈련을 하고 있다. 글은 엉덩이가 써준다고 하는데. 오래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토해내고 다듬고, 됐다 싶은 순간이 오는 것을 인내하고 기다려야한다는 걸, 근데 결국은 오지 않아 절망에 머리를 콕 쳐박는다는 걸, 그저 쓰고 또 쓸 뿐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은 이해하기 힘든가봐.
오늘이 부디 나의 전환점이 되기를,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지금부터 시작되기를, 이 작은 날개짓이 먼 미래에 큰 바람을 일으키기를 나 혼자 꿈꿔본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