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결의 이야기라 새 페이지에 씁니다
오늘의 어제,
같이 일했던 동생들이 놀러와서 한껏 수다를 떨었다. 장장 6시간 동안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 하던 것 중 생각을 하게끔 만든 내용들이 있어서 적고 싶었는데.
- 롤모델에 관한 이야기. 혹은 각자마다 다른 장점
- 다자연애 ㅋㅋ
- 서로의 상성
그리고 나를 혼내주는 사람.
이 이야기가 제일 하고 싶었다. 오늘의 어제 안에 다 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끼인 나이가 되면 뭘 해도 어색하다. 누가 나를 혼낼 사람도 없고 내가 누구를 혼내기도 애매한 그래서 방관하는 나이. 아무도 나에게 뭐라하지 않는다. 지적받는 것도 우습고 그걸 후배나 다른 이에게 하는 건 우스워지고. 하지만 가끔은 혼나고 싶은 날이 있다는 거지. 정신 번쩍 들게 따끔한 말 한마디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근데 또 아무나는 안 된다. 우스워지거든, 쪽팔리잖아. 나를 혼낼 만한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운 나이. 화내는 것도 애정이라고, 그 아낌없는 애정을 굳이 나에게 써줄 이. 둘이 만나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선배가 있다. 자랑이다. 같이 일할 당시에는 썩 친하지 않은, 어려웠던 선배였다. 한 번 혼쭐이 난 뒤로는 더 어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왜 혼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 혼날만 했을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그만큼 선배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쌓였나봐. 당시에는 워낙 눈치없고 다시 일한다는 것에 들떠 주변을 잘 보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할 뿐.
참 어려웠던 선배였는데 언젠가부터 편해졌다. 툭툭 내뱉는 말에서, 굳이 애써 화내며 말하는 시간에서 애정을 느꼈다. 나와 다른 성향이라는 생각에 어려웠는데 지나고보니 그림자가 없는 선배였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다 잊어버리는 거야, 이제 끝!을 외치고는 정말 그게 끝이였지. 그림자가 없었다. 그 그림자를 밟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고, 그 그림자가 나를 덮칠까 겁먹지 않아도 됐다. 그 그림자를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있더라도 본인이 꽁꽁 숨겨 우리에게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을 테니까. 그뒤로 나도 내 그림자를 간수하게 됐는데. 난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정말 힘든 날, 다 포기하고 싶은 날, 정신 번쩍 들게 혼나고 싶을 때, 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혼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라는 말로 시작하며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다. 진짜로 혼난 날도 있고, 내 시간도 귀중하다고 타박들은 날도 있고, 쓰잘데기 없는 말 하다가 끊은 날도 있고, 하여간 전화를 끊고 난 뒤에는 늘 '그래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나를 위해 일부러 혼내주는 사람, 싫은 소리하며 꾸중을 해주는 사람, 다 알면서 '그거 별 거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뭘 그런 걸로 힘들다고 그래'라고 굳이 말해주는 사람, 그래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만들어주는 다정함.
근데 그 날은 정말 힘든 날이었어. 지금까지 일한 내 세월이 무시당한 기분, 그것도 친한 사람에게 들으니까 회의감이 밀려와 다 때려칠까 적적한 날이었지. 그래서 혼나고 싶어 전화를 했다. 선배, 나 혼 좀 내주세요. 나 자꾸 이런 생각 들어요. 호된 꾸중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오더라구. '그건 힘든 거 맞아. 충분히 힘들만 했네. 마음 아팠겠다.' 처음이었다. 처음이었지 그런 위로라니. 혼내주길 바랐는데 위로를 해줬다. 그래서 울었다. 혼내달라니까 왜 위로해줘요 혼내달라니까. 괜히 그런 말을 하며 선배 때문에 운다고 탓을 했다. 그게 왜 내 탓이야 하면서 또 혼이 난 것 같지만.
그런 복잡미묘한 날이 있다. 위로가 필요한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건 사치스러운 고민일 뿐이니 신경쓰지 말고 하던 거나 잘 해. 배부른 소리하고있네.'를 듣고 싶은 날. 그러니 날 힘들게 하는 것이 별게 아니라고, 아무 것도 아닌데 오바쌈바육바 혼자 난리치는 거라고, 혼나고 싶은 날. 그러니까 위로해주는 건 반칙이잖아요. 울 수 밖에 없다구.
참 신기하지, 귀신같이 혼나야하는 날에는 혼내주고,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위로해준다. 그 얼마나 다정한 애정일까.
요즘은 어떠냐면, 혼나고 싶은 나날을 보내면서도 쉬이 전화하지 못한다.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 다정한 애정을 알고 있으니까.
난 어떤 사람일까. 나는 잘 혼내지 못하는 사람.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만들어주는 마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 머글이야 머글.
나도, 그런 다정함을 배우고 싶었어.
울어버릴 것 같은 밤에, 울고 싶어서 마음 놓고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정작 그 목소리를 들을 때는 울지 말아야지, 울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가 생겨난다. 이런 나도 다정함을 조금이나마 배운 것일까.
#다정함의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