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하고도, 하나

1일 1글 스물둘

by melody


이 글도 지금 두어번은 날아갔다.
1일 1글의 스물 셋을 쓰고 싶었는데, 아직도 스물 하나와 스물 둘 사이에서 머무는 중이다


저장하는 습관을 가져야해! 일 할 때도 항상 강박증처럼 갖고 있던 버릇인데 이렇게 인터넷 창에 쓸 때는 날아가버리면 답이 없구나. 백업이 없는 세상이라니 무섭도다. 하지만 여전히 이대로 쓴다. 날아가도 아쉽지 않은 글을 쓰고 있다는 소리다. 그것이 안타깝지만 괜찮다. 지금은 밑거름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믿는다. 그래도 오늘 이상한 소설을 5천자 이상 썼다. 누구는 5만자도 쓴다는데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앉아있었던 거야. 새삼 그 위대함에 감탄을 한다. 5만자라니! 나는 5천자 쓰는데도 4시간은 걸린 것 같다고.

어쨌든 다시 지난 본론으로 돌아와서, 스물 하나로 고이 저장해둔 글이 날아갔다.

사실 진짜 스물 한 살의 이야기 같아서 더 짜증이 난다. 그래! 다들 스무살만 중요하지! 스물 하나 스물 둘은 안 중요한가봐!!!


혼자 씩씩대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서론이 길었다)


아, 내 인생의 전환점은 항상 본론에 숫자 하나가 붙은 나이에 일어났구나.
스물하고도 하나, 서른하고도 하나.
아직 마흔하고도 하나는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때도 무언가 전환점을 겪게 되려나.

근데 나만 그런건 아니더라구.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스물하고도 하나, 서른하고도 하나에 많은 성장통을 겪었다고 했다. (특히 서른하고도 하나) 스물이나 서른은 내가 크게 원하지 않았지만 얼떨결에 선물받은 이벤트 같은 느낌이었다. 다가오는 걸 알고 있지만, 다들 요란하게 맞이하는 것 같지만 뭔가 덤덤하고 실감 나지 않는 기분. 그래서 좋은지도 나쁜지도 모르겠고 뭐 별 거 없네, 하면서 그 나이를 보냈다. 그리고 1년 뒤, 꽤 크게 앓았던 것 같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사람이 무섭다는 것도 다 그 나이 때 배웠던 것 같아.

하지만 다행인 것은,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에 붙여진 이름이 '성장통'이라는 것이다. 많이 아프지만, 많이 힘들지만 시간이 그만큼 지나고 난 뒤에는 그것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나를 바꾸는 힘이 되고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드는 힘을 주니까.

근데 참 아이러니한 건 이런 말을 하는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그 시간을 지나와봐서 아는데 그 아픔이 결국 다 네 것이 될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고 견뎌. 이런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 싶었거든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앞으로가 어딨어, 원동력이 무슨 소용이야, 좋은 사람 웃기고 있네. 지금 당장 힘들고 아파서 사라지고 싶은데, 거지같은 시간을 간신히 버티면서 살고 있는데 왜 이 시간을 견디면서 굳이 거기까지 가야하는데!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들이 희미해지고 한때는 사무쳤던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나는 그때의 나에게 미안해질까. 결국 잊게 될 것을, 흘려보낼 것을 그렇게 꾹꾹 참고 버티면서 살았다고. 그렇게 미안해할까.

나는 그저 내 삶이 아까웠다. 오물을 뒤집어쓰고 그 안에 허우적 거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어서 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오물을 치울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얼른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가는 거. 비록 한동안은 그 더럽고 악취나는 오물 냄새가 빠지지 않아 고생 좀 하겠지만, 결국 사라질 것이다. 머물면 머물수록 그 냄새는 오래 가겠지.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뛰쳐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출발은 자신이 빠져있는 곳을 오물 속이라고 인삭하는 거에서 시작된다. 그걸 깨닫는데도 오래 걸렸다. 설마 내가 오물을 뒤집어 쓸 줄은 몰랐으니까, 절대 나에게 오물을 뿌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빠뜨린 것이라면 더더욱. 이런, 결국 또 꼰대력이 나왔죠. 나 이렇게 힘들었어. 라떼는 말야, 오물은 우습다구.

서른하고도 하나, 우리는 같은 시간을 건너왔다. 한참이 지난 후 각자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했을 때는 참 신기하다 여겼다. 왜 하필 그 때일까. 스물에서, 서른에서 그 다음으로 가기 위해선 고난을 한 번 겪어야하는 것이었을까. 얄궂게 말하는거지. 앞으로 조금 힘든 시간이 찾아올거야. 그러니까 그 전에 너한테 시련을 하나 줄게. 하나 그래서 스물 하나, 서른 하나. 자기들 편하려고 그때 주는 것 같네.

어느순간부터 주변에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었고,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었다. 사연 있는 사람, 상처투성이- 그런 말들이 되려 그 사람을 반기게 됐다. (인생 선배들이 들으면 크게 노할 수도 있지만) 이 나이 쯤 되니, 사연 없고 상처 없는 사람이 낯설었다. 살아왔으니까, 뜨겁고 애절한 사랑 한 두 번은 해봤을 거고, 지독한 이별도 겪어봤을 거고, 사람에 크게 데여본 적도 있을 거고 그래서 지금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껴 줄 준비가 되어있을 거고. 그런 생각을 했거든. (사실 내가 그랬다고 생각해서 일 수도. 끝장나는 자기애다.) 물론 이게 답은 아니지만. 난 그런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가슴 아픈 이별도 겪어봤고, 후회도 하고 잘 헤어졌다 안심도 하고 그러면서 점차 자신을 발견한 사람. 내가, 그러니까 자신이 누군지 아는 사람, 자신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아는 사람, 그리하여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 (나야나)

그래서 그런 말이 있는 거겠지, 사랑하라,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다른 이야기 같겠지만, 같은 결이라고 생각한다. 참 우습게도 사랑에 상처받았다는 이들은 자신의 상처가 너무 크다고 아프다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방법이 1차원 적이다. 자신의 상처에만 급급해 다른 이를 상처주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그럴 거면 만나지나 말지! 꼭 엄한 데서 상처받은 애들이 착한 사람을 울려요. 근데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을지도 몰라. 흑역사)
근데 정말, 정말 정말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꽁꽁 자신을 숨기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없다는 걸. 상처를 두려워하는 것은 나 자신을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나를 모르고, 내가 행복해지는 법을 모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고, 내 진짜 상처를 모르고.

물론 이 모든 것은 열정이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추가로 열정을 불태우는 이를 만나야 가능하겠지만. 하지만 뭐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연애의 감정만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그리하여 세상에 사랑을 베푸소서. 상처 따위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어!를 외치며.

나이가 먹을 수록 상처의 깊이는 깊어지는데 회복 속도는 느려진다고 한다. 면역력도 떨어지고 체력도 없고 어디 몸 한 군데 아프면 만사가 다 귀찮아지니까. 사실 난 아직 모르겠다. 회복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상처의 종류가 달라진다. 치명상이었던 지난 날의 상처가 지금은 생채기만도 못하다. 상처 취급도 안했던 작은 종이에 베인 생채기가 지금은 치명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덤덤하다가도 깜짝 놀라다가도 다시 또 무심해지고 왔다갔다 하는 기분. 아직 마흔하고도 하나가 오지 않아서 그런 걸까.

윤여정 선생님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최근에 영어로 윤스테이를 진행하며 그녀의 다정한 유머와 센스에 감동했는데. 훨씬 이전에 그런 말을 했었다.
'나도 이 나이는 처음이라서요. 처음 살아본 단 말이죠.'

우리 모두는 같은 시간을 건너가고 있네. 어쩌면 목적지는 같을 지도 모르겠어. 모두가 처음 가는 길이라 모를 뿐.

그건 그렇고 스물 둘에서 온통 하나하나 스물하나 서른하나를 이야기했다. 미안, 스물 둘. 결국 똑같은 짓을 하고 말았네. 어츰이라 그래. 나도 처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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