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글 스물하나
1편.
오랜 꿈을 꾼 직후였다. 긴 잠을 자기도 했고, 그립고 보고 싶은 이들이 나왔던 꿈이기도 했다.
"이제, 나갈 차례인가봐요"
"이번엔 내가 나가볼게."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번엔 제 차례인데"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를 데려가잖아. 그런 건 기억 못 할테니 너무 염려마."
"그래도.."
"래비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이번엔 꼭 밝혀야 해."
아직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찰나, 엄마와 아빠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래 아직 래비가 돌아오지 못 했다. 래비가 선택된 건, 내가 돌아온 직후였을 것이다. 추측하는 이유는 내 기억 속에 없기 때문이고 확신하는 이유는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아마 래비 또한 곧 나랑 비슷한 꼴로 돌아오겠지. 우리는 주기적으로 한 번씩 밖으로 꺼내진 후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온다. 그때는 이미 밖에서의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다. 항상 같은 향의 꽃 냄새에 범벅돼 돌아오지만 엄마는 이것이 자연의 냄새는 아니라고 말했다. 분명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냄새라고. 자연을 모르는 나로써는 알 방법이 없지만.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 여보!"
"갔다올게. 베어 잘 챙겨!!"
그 말을 끝으로 달칵, 문이 닫혔다. 쿵, 쿵, 소리와 함께 멀어져가는 아빠의 목소리.
"어디로,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고요. 래비는 어디에 있소? 그 아이를 먼저 봐야겠소!!"
언제는 래비였다가, 나였다가, 엄마였던 적도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귀를 기울이다 이내 둘 뿐인 공간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얼마나 지난 거에요?"
"아마, 일주일 정도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래비가 나가고 내가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렇다면 오늘 아빠를 데려갔으니 대략 이틀 안에 래비가 돌아올 것이다. 이제까지의 패턴이 그랬으니까.
"이제 좀 정신이 드니?"
"네. 아까보다는 훨씬 괜찮아요. 아직 다 깬 것 같지는 않지만요."
"다행이다. 무사히 돌아와줘서 고마워."
"엄마도요."
서로를 꽉 안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서로의 촉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곁에 있다는 안도감이 우리의 공간을 채울 때쯤, 으레 하는 질문과 항상 똑같은 대답을 나눴다.
"혹시 기억나니?"
"아뇨. 항상 똑같죠 뭐."
"그래. 그렇구나. 괜찮아 잘했다. 잘 돌아왔어."
그리고 찾아온 침묵. 엄마도 나도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밖으로 꺼내진 후, 아빠에게 엄마에게 나에게 래비에게 일어나는 일. 그것은 드문드문 단편적으로만 기억이 난다. 이 이야기를 차마 입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걱정이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큰 단서가 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알 수 없는 장면들, 목소리들. 하지만 전부 웅웅 거려 말하고 싶어도 그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거기다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몽롱한 채로 계속 잠만 자다보면, 그 기억조차 희미해진다.
그때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오랜만이야, 라는 으레하는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것은 낯선 경계 뿐. 이곳에서는 우리만이 이방인이었다. 다들 여기가 어딘지 몰라 낯설고 무서워면서도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우리를 고립시켰다. 정말 우리 가족 밖에 안 남은 걸까. 분명 함께 있었던 이들이 많았는데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뒤로는 평상시와 다름 없는 생활을 했다. 난 약 기운 탓인지 이 냄새 때문인지 한참을 자고 또 자고 계속 잤다. 그리고 정신이 거의 다 돌아올 무렵,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드디어 래비가 돌아왔다.
"래비야. 래비야 정신 좀 차려봐 래비야"
엄마의 재촉에도 래비는 쉬이 눈을 뜨지 못했다. 래비에게선 역시나 그 냄새가 났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그 냄새는 이미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아직 안 될 것 같아요."
"어디 몸 상한 곳은 없지? 래비야. 다행이야 다행이다"
늘 그래왔지만, 엄마는 매번 같은 반응을 보였다. 걱정하고 놀라고 염려하고 안심하고. 아무리 같은 상황이 반복돼도 엄마는 평생을 익숙해질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이제 또 다음 차례가 오겠어요."
래비가 돌아왔으니 이제 또 나갈 차례가 됐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오겠지. 아빠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을 내색 않고 엄마에게 말했다.
"제가 다시 나가볼게요"
"안돼!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니!!"
"괜찮아요. 이제 멀쩡해요. 그리고 엄마는 래비를 돌봐야해요"
엄마에겐 낫지 않는 상처가 있었다. 다리 쪽에 생긴 작은 상처가 조금씩 커져서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되도록이면 엄마는 계속 이대로 쉬게 해주고 싶은데. 그러려면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살짝 앞으로 가 있으면 될 일이었다. 한참을 엄마와 실랑이를 하는데, 멀찍이 있던 트라이프 아저씨가 시비를 걸었다.
"유난이다 유난이야. 다들 그냥 겪는 일을 그쪽 가족만 왜 그러는거야?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고 적당히 좀 해!"
원래부터 우리를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오늘 또 무슨 심기를 건드린 건지 잔뜩 골이 나 있었더. 아마 아빠가 없었기에 그랬겠지만.
"신경 쓰지 마시고 그쪽 볼일이나 보시죠. 우리가 이런다고 뭐 피해준 거 있어요?"
"저 말버릇하고는. 너네 때문에 다들 겁 먹은 거 안 보여? 굳이 요란스럽게 그래야겠어? 어차피 다 멀쩡하게 돌아오잖아. 그냥 때 되면 나갔다 들어오는 거고. 뭐 부족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 그래?"
"베어야. 가만히 있어. 죄송해요. 저희가 좀 유난이었죠. 아무래도 애들 일이다보니 예민해질 수 밖에 없네요."
"당신네들만 그런거 아니고. 다들 겪는 일이야. 여기 자식 기다리는 사람이 한 둘이야? 그래도 다 돌아와.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고 편안하게 좀 살자."
"안 돌아온 경우도 있잖아요. 플라워 할머니는 안 돌아왔다고요!"
"베어야!!!!"
내가 꺼낸 금기어에 일순간 정적이 맴돌았다. 유일하게 우리에게 친절했던 할머니였는데, 지난 봄에 나간 뒤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곧 돌아오겠지, 곧 돌아오겠지 싶었는데 어느새 우리 차례까지 왔다.
"할머니가 나간 건 봄이었다구요. 지금은 겨울이에요. 근데도 안 돌아왔어요. 영영 돌아오지 않겠죠! 근데 걱정하지 말라고요? 요란스럽다고요? 아저씨네는 형제가 많아서 하나둘은 사라져도 상관없나보죠?"
"저.. 저 싸가지 없는 것이!!!"
"베어야! 그만해!!"
소리가 커지자 주변에서 아저씨를 말리기 시작했다. 저 집 애 버릇 없는 것이 하루 이틀이냐며, 안 건드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둥 그런 말들이 오갔다. 그런 말을 엄마가 직접 듣게 하는 것이 참을 수 없었지만, 여기서 멈춰야 그나마 엄마를 덜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트라이프 아저씨는 그뒤로도 한참을 화를 냈다. 물론 내가 반응이 없자 곧 제 풀에 지쳤지만.
그렇게 조용히 며칠이 지나갔다. 한바탕 요란한 소동이 일어난 직후라 다들 몸을 사리며 행동하는게 보였다. 그 사이 또 몇 명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가 또 들어왔다. 아직은 내 차례가 아니야. 곧.
그리고 그날 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다녀올게요. 래비 잘 챙기고 있어요!"
"부디 몸 조심해라. 위험한 일 하지 말구 무사히 돌아올 생각만 해. 알았지?"
"알겠어요. 걱정마세요"
낯선 이의 손에 붙들려 밖으로 나오는 것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밖에서의 생활은 그 낯선 이와 계속 붙어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가는 곳에 함께 가고 그가 눕는 곳에 같이 눕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따라나서야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기억이 돌아왔다. 낯설기만 한 곳이 익숙하게 느껴졌고, 처음 만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알고 있었다.
"베어구나. 오랜만이네 잘 지냈니?"
눈 앞에서 나와 마주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절.. 아세요?"
"그럼 알다마다. 그러고보니 꽤 됐구나. 3주 전인가. 그때도 같은 이야기를 했지."
"제가 깜박 깜박 해요."
"안다.그 방에서 나오는 애들은 다 그렇더라고. 다들 깜박해. 왜 그럴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말이지."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내 표정을 살폈다. 마치 비밀을 말하기 직전의 래비 모습 같았다. 없던 궁금증도 솟아나게 하는 그 표정. 차라리 처음부터 말을 하지 말지, 끝내 애를 태워 발을 동동 굴려 물어보게 하는 그 모습!
"왜 그런 건데요? 어차피 말 하셨으니 그냥 다 하세요!"
"녀석 참. 똑같구나 똑같아. 그래. 너희는 잊어야하는 의무를 갖고 있고, 우리는 기억해야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존재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곧 기억하게 될거야. 지난 번에도 넌 알았으니까. 이번에도 네 힘으로 알게 되겠지."
더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가 일어서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계속 뒤를 돌아봤지만 할아버지는 그저 그 위에 놓인 차 향을 음미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뜻 모를 소리를 하는 할아버지를 뒤로 한 채, 이곳저곳을 다녔다. 가는 곳마다 처음 보는 이들이 (하지만 뭔가 익숙함을 느끼게 하는) 대화를 걸어왔다. 그들은 모두 기억해야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계속해서 퍼붓는 질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여기는 어디일까, 나는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런 의문을 갖을 순간조차 없었다. 워낙 많은 이들이 동시에 말을 걸어서 바쁘게 이쪽을 보고 저쪽을 보고 대화를 하다 또 어디론가 가곤 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그가 움직이자 않으면, 그때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숨을 고르고 오늘 만났던 이들과 나눴던 대화를 복기하는데 옆에서 무언가가 자꾸 부스럭거렸다.
"누.. 누구세요?"
"냥!"
"아.. 깜짝이야."
고양이였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처음이 아닌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지난 번에도 만난 적이 있었을까?"
"냥"
대답을 기다렸지만, 우리와는 소통하는 방법이 다른 듯 했다. 실망하려는 찰나, 엄마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 열심히 고양이를 쳐다봤다. 그때 따뜻하고 물컹한 무언가가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발이었다. 꾹꾹꾹꾹.
아, 엄마가 고양이는 기분 좋으면 꾹꾹이를 한다고 하던데, 이게 그거구나.
엄마가 설명해주던 모습을 실제로 봤다고 감탄하는 순간, 불쑥 그의 손이 튀어나왔다. 그는 고양이를 쓱쓱 어루만지며 다독이는 듯한 손길을 했다. 그러자 고양이는 기뻤는지 그르렁 그르렁 좋아하는 소리를 더 크게 내기 시작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토록 고양이한테 다정한 사람이, 우리한테는 왜 그러는 걸까. 왜 우리를 가둬두는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은 일부러 하는 나쁜 행동보다 더 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라도 알고 당하면 우리는 좀 더 괜찮았을까?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알면 안 되는 것일까. 가만 생각해보면 트라이프 아저씨네는 주기적으로 나갔고, 우리 가족은 한 계절에만 정기적으로 나갔었다. 이것은 무슨 의도가 있는 걸까? 그러다 또 플라워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 생각과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그르렁 그르렁 고양이 소리까지, 점점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이제 6일 정도. 이번에는 반드시 찾고 싶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다.
2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