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람들, 그리고

1일1글 스물셋

by melody

백수가 된지 23일째가 됐다. 아직 다 쓰지 못한 스물 하나를 빼고서는 그래도 하루에 한 개씩 (물론 제 날에 쓰지는 못 했다) 꾸준히 글(이라고 적고 일기)을 썼다. 하루에 하나라도 무언가를 해냈다니. 그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나시끼 기특해!!) 그리고 오늘은 유투브에서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 1강을 찾아 들었다. 우리는 역사를 왜 배워야하는가, 라는 인트로 느낌의 영상이었는데 다 듣고 나니 또 뿌듯했다 (나시끼 기특해!!) 문피아에도 가입해 본인인증만 하고 (그래도 기특해!) 재봉틀에 앉아 실 끼우는 법을 찾다가 재봉틀이 고장난 걸 알았다. (이건 짜증짜증)

적고보니 정말 많은 일을 해냈구나. 그렇다면 일 했을 때 나는 얼마나 위대하게 살았던 걸까. 새삼 지금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존경스럽다. 다들 하루에 수백가지, 수천가지 일을 해내면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거잖아?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인데, 아무도 자신이 대단한 것을 모른다. 그것이 참 슬프다. 여러분, 당신들 정말 대단하다니까요? 만능이라고요 엄청난 사람들이라고요.


백수가 된지 23일째다. 자꾸 이 숫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늘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다. 동시에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아직 23일 밖에 못 놀았는데 (사실 낯설어서 놀지도 못함. 더 과로함. 하지만 백수라는 타이틀이 있다). 그리고 나를 찾아주는 곳이 있구나. 불과 며칠 전에 박은석씨 이야기를 하며 글을 썼던 것 같은데, 두 번 다시 안 봐야지. 원래 한 번 토해낸 글은 다시 보는 거 아니랬어.

물론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을 쉴 거면서 징징 거렸어? 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 마음 겸허히 받고요, 쉬는 것이 독인 직업이니까요. 보통은 쉬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십오년을 달려왔으니까요. 십오년 만에 처음 쉬는 23일은 정말 이상한 나라에 톡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사실 이상한 나라는 여기가 아니라 원래 있던 곳일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곧 적응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이상한 나라보다 더 이상한 나라로 돌아가볼까, 고민이 됩니다.

두 가지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두 군데에서 이야기가 왔다. 한 곳은 추천을 하는 것 뿐이기에 기다려야 알 수 있는 일이고 (안 될 가능성이 높은 느낌), 하나는 이미 염두하고 연락을 준 것이기에 결정을 하면 되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이게 머선129. 그래서일까 다른 날보다 더 많은 것(위에 나열한)을 해냈다. 집에서 하루종일 엎드렸다 누웠다 엎드렸다 누웠다 백수질만 하더니, 갑자기 활력이 샘솟았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하는 것들이 모두 기쁨이 되었다. 일을 다시 할 가능성에 기뻐서? 아니었다. 고통을 전담하는 '일'이 생겼기에, 다른 모든 것들이 행복이 된 것이다. 어차피 일하면 힘들어, 일하면 귀찮아, 일하기 싫어 툴툴툴 그러니 다른 건 다 재밌어! 와! 이런 의식의 흐름이랄까.

그러니 궁금해지더라고. 일이 뭘까? 일이 뭐길래, 내게 자존감도 주고 자신감도 주고 심지어 돈까지 줄까. 근데 그러면서도 귀찮고 하기 싫고 최소한으로 하면 좋겠고. 왜 이런 이중적인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일까. 돈이야 지금 당장 알바라도 해서 벌 수 있는데 말이지. 자존감도 얻을 수 있는 곳이 수두룩 하단 말이지. 근데 자존감과 자신감과 성취감과 돈의 이런 콜라보 조합은 찾기가 힘들다. 돈, 돈이 문제일까. 돌아오는 대가가 돈인 것이 문제일까.

자꾸 이런 뻘소리만 하는데 너무 졸립다. 하품이 나오는 시간이네. 계속 스물 하나에 부채감을 느끼게 된다. 드디어 스물 셋까지 왔어. 오늘 스물 넷을 쓰면 난 정해진 날에 정해진 글을 쓰는 거지. 스물 하나를 꽁꽁 숨겨두면서. (지금은 스물 하나에 빚을 반 정도 갚았다. 2편을 써야함)

백수생활을 계속 할지, 작은 일이라도 할지, 아니면 아예 복귀하듯 다시 일을 할 지는 아직 모르겠다. 지나고 나서 이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려나.

이보세요, 잘 선택했죠? 힘들다고 징징 거리지 말고! 지금 마음은 어떠냐면요, 반반입니다. 백수 생활을 더 하고 싶다가도, 일을 계속 해야하나 싶다가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공부하고 싶은 것도 있고, 글도 꼭 쓰고 싶은데. 일하면서 가능할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러 꼭 다시 와야합니다. 다시 봐야 합니다. 그리고 다 가능했다고, 꼭 말해줘요. 미래의 나는 후회하지 않길 바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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