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좋은 숫자들

1일 1글 스물넷

by melody


2와 4가 사귀기로 했다며 나를 찾아왔다.
분명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는데, 서로를 똑같이 공평하게 사랑하기로 맹세했는데 그것을 깨버린 것이다.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다 내 잘못이야."

2가 가녀린 몸을 앞으로 숙이며 우아하게 눈물을 훔쳤다. 저런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벌써 4 앞이라고 저러는 것일까. 깊은 배신감과 설명할 수 없는 질투에 몸이 반으로 쪼개질 것만 같았다.

"울지마. 그게 왜 니 잘못이야. 널 많이 좋아한 내 잘못이지."

4가 내 앞에서 2를 감싸며 앞으로 나왔다. 그 꼴이 우스웠다. 잘못은 너네들이 했다면서 왜 내가 가해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걸까.

"참 사이 좋구나 너네."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화를 내고 싶었고 비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나는, 너희가 평생 함께 하자고 해서 3이 됐어. 알지?"

본디 내가 무엇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들을 믿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인데. 그래 내 선택이니 누굴 탓 할 수 있을까.

"알지. 다 알아 3아. 네가 얼마나 고심 끝에 선택한건지.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 지 몰라. 지금도 마찬가지야. 다만 이렇게 돼서, 내가 정말 미안해.."

2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2가 내뱉는 말이 다 반대로만 들렸다. 그렇다면 정말 이러면 안됐던 거 아냐? 끓어오르는 화에 한마디 하려는 순간, 4가 무언가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 와서 이러는 것도 우습지만 혹시 몰라서 가져왔어. 그 때 네가 버렸지만.. 내가 갖고 있었거든."

그것을 보는 순간, 눈 앞이 아찔했다. 오래 전, 내가 버린 나의 반이었다. 내가 이꼴을 당하려고 고심 끝에, 고통 끝에 잘라낸 나의 일부.

"이걸 지금 나보고 어쩌라고 가져왔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터지고야 말았다.그 순간,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몇번이고 나를 붙잡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기적인 것들, 자기들밖에 모르는 숫자새끼들. 너 절대 걔들 믿지마.

"그 말이 틀린 거 하나 없었구나. 내가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아 이기적인 새끼들."

내 입에서 튀어나온 욕에 2가 흠칫 놀랐다. 4는 조심스레 2를 감싸며 내게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일부러 너 생각해서 저딴 짝대기도 이제까지 쭉 보관해줬는데? 되려 고마워해야하는 거 아니야?"
"4야 그만해. 우리가 잘못했잖아.."
"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서로 좋아한 게 죄야? 그리고 우리가 언제 넘어오랬어?!"

머리 속에서 웅웅 A와 C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걔네한테 가장 중요한 건 돈이랑 시간이야. 그래서 결국 자기들끼리만 뭉친다구"
"야! 내 말 좀 들어 진짜! 지금 너랑 세상 제일 좋은 척 굴어도 결국 자기들밖에 모른다니까?! 너 진짜 후회해! 가지말라고!!!"
나를 붙잡고 펑펑 울며, 가지말라고 애원하던 그들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우린 사과했고, 안 받는 건 너야. 우리 볼 일은 끝났어. 간다."
"아, 자.. 잠깐만. 4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3아 정말 미안해. 알지 내 마음? 다음에 또 이야기 하자"

4는 2를 붙잡고 내 앞에서 사라졌다. 지난 오랜 시간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3을 택하지 말 것을 그랬나. 담아두지 못해서 이렇게 모든 것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일까. 4가 바닥에 떨어뜨린 나의 일부를 주워들었다. 살짝 녹슬긴 했지만 여전히 제 기능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다시 가도 나를 받아줄까.
희미하게 떠오르는 생각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다시 돌아갈 생각부터 하다니. 정말 얄팍하구나, 나. 이렇게 쉽게 변할 마음으로 왜 여기에 와 있는 걸까. 고향도, 친구도 다 버리고 이곳에 온 대가가 이것이라니. 아니면 벌을 받고 있는 걸까.

나조차 잊어버린 나의 이름은 B.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이기적인 숫자 시끼들!!! (주식망을 탓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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