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오?

1일 1글 스물다섯

by melody


가끔 주말이 되면 안산을 올라간다. 올라간다는 표현을 써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안산을 둘러싼 둘레길이 잘 정돈되어있어 말그대로 산책에 가까운 코스다. 한바퀴를 빙 도는 코스는 대략 2시간 전후. 예전같으면 산책을 2시간이나 한다고?! 놀랐겠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꽤 사랑스럽다. 숨을 듬뿍 들이마쉬고 힘차게 한 발 한 발 움직이다보면 자연스레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게 된다. KF94 마스크를 쓰고 걷지만 자연의 냄새는 그 마스크조차 뚫고 들어오는 기쁨을 마다하지 않는다.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평소 하지 못하던 이야기까지 나누고, 몸의 건강을 위해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까지 건강해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가기 전까지는 가기 싫다고 투덜투덜거리지만 막상 가면 세상 제일 신나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어느 나라를 여행가든 근처에 산과 비슷한 냄새를 품은 공원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가볍게 운동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에 휴식을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여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새삼 그 필요성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네. 걷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목적을 갖고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의미와 달리 '걷는다'는 자체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수행과도 같은 느낌이다. 나 자신을 위해 걷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 그것은 '걷다'의 의미 중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다'의 뜻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이 목적지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점이 요즘 내가 깨닫는 것이다.

한때 유행한 어플이 있었다. 내 걸음수를 측정해 캐시가 쌓여 대가를 받는 어플이었는데 하루에 내가 몇 보를 걸었는지 체크하고 그걸 달성하면 캐시를 줬었다. 평소 하루에 5천보를 걸었다. 여행을 가면 2만보 정도를 걸었고, 하지만 그중 나를 위해 걷는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최근에는 핸드폰에도 내가 몇 보를 걸었는지 체크할 수 있는 건강 어플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산에 갈때 확인을 하는데 안산을 한바퀴 돌면 보통 15000보를 걷고는 했다. 만 오천보, 내가 나를 위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 걸음. 그 걸음 수만큼 나는 조금 더 건강해졌고, 조금 더 서로를 알아갔으며 한층 더 세상이 아름다워보였다. 그만큼 더 웃었고 그 이상 행복했다. 그래서 (귀찮지만) 산에 가는 것이 즐겁다.

안산을 걷다보면 4분의 1 지점 쯤에 인왕산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 그곳으로 넘어가면 계단을 지나 성곽길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건데 아직 한 번도 넘어간 적은 없다. 조만간 도전해 볼 기회가 올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 두렵다. 물론 산을 다 오른 뒤에 느끼는 기쁨이야 말 할 수 없겠지만 내게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무언가를 놓고 올 수 있는 곳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가볍게 갔다가 즐겁게 돌아올 수 있는 정도, 그래서 둘레길을 만든 사람을 찬양한다. 산에 가면 왜 정상을 고집해야하는가, 그 둘레를 평온하게 즐기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다. (인왕산을 가지 않으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안산 한바퀴 코스의 중간쯤에서는 홍제동도 보인다. 그럴 때면 참 신기하다. 지하철로도 이삼십분은 걸리고, 차가 없는 밤에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도 신호가 많아 30분은 걸리는 그곳이 천천히 걷다보면 눈앞에 자리잡고 있다. 가끔은 이대로 내려가 홍제동에서 유명한 중국집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불쑥불쑥 들지만 이내 다시 산으로 눈길을 돌린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곳에서 도시의 변화를 지켜본 산은 조용히 사계절을 보낸다. 그 모습은 마치 스님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절이 왜 산에 있는지 묘하게 납득이 가기도 한다. 사람들로 북적거릴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조용하다. 걷는 사람들이 크게크게 말하지도 않고 혼자 걷는 사람, 둘이 걷는 사람, 셋넷이 걷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이상 모여서 걷는 경우가 없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고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은 원래 이렇게 조용했을까.

고요하고 조용한 산에서 나는 치유를 받지만, 이곳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얼마전의 일이었다. 그 주말에도 툴툴 거리다 안산을 걸으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아이를 봤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부 검은색 털을 갖고 있는 고양이였는데 살짝 통통한 것이 2살 정도 되어보였다. 가까이 가서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보고 싶었는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래, 잘하고 있어. 계속 경계해야 돼' 말해주고 말았다. 사람이 가장 무서운 세상이다. 그전에는 호랑이였겠지만 이제 그들을 해칠 것은 자연이 아닌 사람인 것이다. 그것이 못내 슬펐다. 다음에 보면 꼭 먹을 것을 줘야지 라는 생각으로 츄르를 갖고 다니지만 그 이후로 아직 보지 못했다. 산이 부디 그 고양이를 안전하게 품어주고 있기를, 조용히 기도해본다. 겨울의 산은 그 어느 곳보다 추울텐데, 더 많은 풍요의 손길이 산에 닿기를 어서 봄이 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구나. 지금이 아닌 오래 전에는 갖가지 산짐승들이 살았겠지. 그들을 위한 공간이 산 여기저기에 마련되어있었을 것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동굴이라든가, 몸을 뉘일 수 있는 나뭇가지들이라든가 하지만 산은 어느새 사람들만의 것이 되어버렸다. 정상까지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고, 굳이 그곳을 찾지 않더라도 산을 한바퀴 빙 두를 수 있는 둘레길이 마련되었다. 산을 걷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너희만의 것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건 오직 하늘에서 울고 있는 새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하악질을 하던 고양이 정도.

인간은 이 땅위의 모든 것을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것마냥 누리고 산다. 나 또한 그 혜택을 누리고 그 이치에 감탄하고 때로는 즐긴다. 그러면서도 그 고양이가 걱정된다. 그러니 하악질을 멈추지마. 경계하고 또 경계해서 그곳에서 꼭 살아남아주길 바란다. 네가 그 산의 주인이고, 네 집이고, 네 놀이터고 네가 치유받을 공간이니 그곳이 부디 풍요가 끊기지 않기를.

산이 많은 나라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진짜 산은 이제 그 어느 곳에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더 이상 집이 아니듯, 산에 사는 진짜 주인들이 다 사라져버린 지금, 우리는 그곳을 산이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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