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상, 종교, 사랑 그리고 희망에 대한 단상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가만히 죽은 듯이 누워있고 싶을 때가 있다. 괜스레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고 그러다 이대로 조용히 바닷속 물거품처럼, 이 세상 속에서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다. 마음 에너지 10% 미만. 고요한 어둠 속에서 빨간 불이 탁하고 켜지는 순간.
이런 때에는 정말이지 웬만한 것들로는 충전이 어렵다. 바깥에 나가 햇볕을 쐬거나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 할 힘도 없고 TV를 켜도 시끄러울 뿐이고 SNS는 독이 될 뿐이다. 책은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평소에 깔아 둔 명상앱, 다이어리앱은 실행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내 에너지로는 나를 충전할 수 없는 상태.
내가 나를 충전할 수 없다면 외적인 힘이 필요하다. 한없이 가라앉다가도 시간이 되어 출근할 때가 되면 ‘월급님’의 힘이 나를 강제 충전시켜 줄 수 있다. 생활의 최저 한계선이 나를 지탱해 주는 경우다. 하지만 마음속 괴로움을 떨쳐내지 못한 채 생활의 힘으로만 버티다가는 좀비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이런 루틴도 전혀 없다면 어떤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충전할 수 없다면, 생활이 나를 구원할 수 없다면, 결국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의 모든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고, 아무런 편견 없이 나를 받아들여주는 존재. 내 손을 잡고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는 존재. 내가 이 세상 속에서 내 자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조그만 ‘희망’이라도 발견할 수 있도록 일으켜 세워주는 존재. 누군가에는 친구나 연인이, 누군가에겐 가족이, 또 누군가에게는 신이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기대어 사는 존재다.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곁에, 마음속에 항상 있다면 에너지가 10% 미만으로 떨어지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변함없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사람도 에너지가 떨어질 때도 있고, 함께할 수 없는 상황도 있으며, 슬프게도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인간끼리만 기대어사는 세상의 끝에는 배신과 실망, 눈물과 포기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기댈 수 없다는 건 아니다. 리듬을 잘 맞춰가며, 서로가 서로의 에너지를 충전해 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물론 둘만의 내밀한 관계만이 유일한 해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안고 있는 문제의 폭이 좁고 깊을수록 이 깊이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적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만의 아름다운 리듬을 만들어주는 ‘동력’을 찾는다면 관계를 다지는 일이 한결 쉬워질 수도 있다. 함께하는 취미활동, 종교활동 혹은 다른 무언가.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해 쌓는 서로를 향한 걱정, 사랑, 우정.
인생은 길고 예측할 수 없다. 어둡고 험난한 길도 많다. 그런데 그 길을 헤쳐나가야 할 사람의 마음은 너무 가볍고 쉽게 변한다. 공기만 조금 달라져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게 사람 마음이다. 마음 에너지가 급속 충전되었다가 또 금방 방전되어 버리기 일쑤다. 내 마음 에너지가 30% 미만일 때, 20% 미만일 때, 10% 미만일 때 각각 내가 어디서 어떻게 위로를 받는지 곰곰이 잘 생각해 보자. 또 소중한 사람이 마음 배터리에 빨간 불이 켜진 채 저 밑으로 가라앉으려 할 때 어떻게 충전해 줄 수 있을지 평소에 잘 연구해 두자. 어둠 속에 갇혔을 때를 대비해 손전등이라도 쟁여두는 마음으로.
덧. 마음 에너지가 11% 정도로 떨어졌다가 다시 40% 정도 충전하고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