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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joge Aug 28. 2018

잔여 배터리 10% 미만, 충전이 필요합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상, 종교, 사랑 그리고 희망에 대한 단상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가만히 죽은 듯이 누워있고 싶을 때가 있다. 괜스레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고 그러다 이대로 조용히 바닷속 물거품처럼, 이 세상 속에서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다. 마음 에너지 10% 미만. 고요한 어둠 속에서 빨간 불이 탁하고 켜지는 순간.


  이런 때에는 정말이지 웬만한 것들로는 충전이 어렵다. 바깥에 나가 햇볕을 쐬거나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 할 힘도 없고 TV를 켜도 시끄러울 뿐이고 SNS는 독이 될 뿐이다. 책은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평소에 깔아 둔 명상앱, 다이어리앱은 실행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내 에너지로는 나를 충전할 수 없는 상태.


  내가 나를 충전할 수 없다면 외적인 힘이 필요하다. 한없이 가라앉다가도 시간이 되어 출근할 때가 되면 ‘월급님’의 힘이 나를 강제 충전시켜 줄 수 있다. 생활의 최저 한계선이 나를 지탱해 주는 경우다. 하지만 마음속 괴로움을 떨쳐내지 못한 채 생활의 힘으로만 버티다가는 좀비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이런 루틴도 전혀 없다면 어떤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충전할 수 없다면, 생활이 나를 구원할 수 없다면, 결국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의 모든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고, 아무런 편견 없이 나를 받아들여주는 존재. 내 손을 잡고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는 존재. 내가 이 세상 속에서 내 자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조그만 ‘희망’이라도 발견할 수 있도록 일으켜 세워주는 존재. 누군가에는 친구나 연인이, 누군가에겐 가족이, 또 누군가에게는 신이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기대어 사는 존재다.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곁에, 마음속에 항상 있다면 에너지가 10% 미만으로 떨어지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변함없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사람도 에너지가 떨어질 때도 있고, 함께할 수 없는 상황도 있으며, 슬프게도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인간끼리만 기대어사는 세상의 끝에는 배신과 실망, 눈물과 포기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기댈 수 없다는 건 아니다. 리듬을 잘 맞춰가며, 서로가 서로의 에너지를 충전해 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물론 둘만의 내밀한 관계만이 유일한 해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안고 있는 문제의 폭이 좁고 깊을수록 이 깊이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적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만의 아름다운 리듬을 만들어주는 ‘동력’을 찾는다면 관계를 다지는 일이 한결 쉬워질 수도 있다. 함께하는 취미활동, 종교활동 혹은 다른 무언가.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해 쌓는 서로를 향한 걱정, 사랑, 우정.


  인생은 길고 예측할 수 없다. 어둡고 험난한 길도 많다. 그런데 그 길을 헤쳐나가야 할 사람의 마음은 너무 가볍고 쉽게 변한다. 공기만 조금 달라져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게 사람 마음이다. 마음 에너지가 급속 충전되었다가 또 금방 방전되어 버리기 일쑤다. 내 마음 에너지가 30% 미만일 때, 20% 미만일 때, 10% 미만일 때 각각 내가 어디서 어떻게 위로를 받는지 곰곰이 잘 생각해 보자. 또 소중한 사람이 마음 배터리에 빨간 불이 켜진 채 저 밑으로 가라앉으려 할 때 어떻게 충전해 줄 수 있을지 평소에 잘 연구해 두자. 어둠 속에 갇혔을 때를 대비해 손전등이라도 쟁여두는 마음으로.


  덧. 마음 에너지가 11% 정도로 떨어졌다가 다시 40% 정도 충전하고 쓴 글.


그림 :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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