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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joge Apr 19. 2017

고통의 무게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다큐<볼링포콜럼바인> 함께 읽고 보기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리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슬픔, 분노, 두려움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더 그렇다. 고통이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고통은 그 이유가 다 달라서 무게를 쉽사리 잴 수 없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통찰력 있는 말을 남겼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슬픔, 분노, 두려움, 수치심 기타 등등 이름 붙일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정의 감정들이 마구 뒤섞인 압도적인 무게의 고통 덩어리가 수 클리볼드를 강타했다. 수 클리볼드는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수 클리볼드가 1999년 4월 20일과 그 직후, 그리고 이후 17년 동안 자신을 강타한 엄청난 무게의 고통 덩어리를 풀어 쓴 책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버티며 살아가는 일이고, 몇 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내 아들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중에서


  수 클리볼드가 고통 속에서 익사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버티며'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찌꺼기처럼 남은 삶의 에너지를 긁어모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에 답을 찾아보려 애쓰고, 결국은 책까지 출간하다니, 참 대단하다. 어쩌면 거대한 고통 덩어리를 완결된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내는 일이 그녀가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수 클리볼드는 '내 아들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다가 지금은 뇌 건강 문제 연구자, 자살 예방 활동가가 되었다. 스스로는 너무 늦게 깨달은 사실-치아 관리, 영향 균형, 용돈 관리법을 가르치듯 아이들이 스스로 뇌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다른 부모들이 일찍 깨닫고 사전에 불행을 막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다.


수 클리볼드와 종이 접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딜런 클리볼드

  

  마이클 무어는 콜럼바인이 안긴 충격과 고통을 풀어보려고 <볼링포콜럼바인>이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수 클리볼드가 아들의 마음, 뇌를 파고들었다면 마이클 무어는 미국 사회 구조를 파고든다. 마이클 무어는 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이 손쉽게 총을 구해 학교 친구를 쏘는 불행한 사건이 유독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찾는다. 그리고 명확하게 말한다. 공포를 조성해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미국 정치와 기업, 미디어가 굳건히 버티는 한 이런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감독이 근거로 제시하는 각종 인터뷰와 자료 화면(계좌를 만들면 경품으로 총을 주는 은행, 미국의 기나긴 침공 역사, 흑백 갈등을 조장하는 TV쇼와 뉴스 보도 등)을 보면 꽤나 설득력있다. 콜럼바인이 우연히 터진 개별적인 비극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거대한 폭력의 흐름 가운데 있다는 데 충분히 동의할만큼.


  <볼링포콜럼바인>에서도 마이클 무어의 다른 작품들에서 한결같이 볼 수 있는 '헬아메리카'에 대한 슬픔, 분노, 수치심을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다. 마이클 무어 작품의 특징은 감독의 거침없는 인터뷰와 행동 그리고 나레이션인데, 직접 '행동'하고 '말하지' 않고서는 '헬아메리카'에 대한 슬픔, 분노, 수치심을 견딜 수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큐의 말미에서 마이클 무어가 미국 총기 협회장 얼굴에 초등학교 친구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여자 아이의 사진을 들이밀때는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마이클 무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웃지 않는다면 미쳐버릴만큼 감독의 분노 게이지가 (혹은 정의감이) 높아서 그런 것일지도!


미국 총기 협회장을 찾아가 끈질기게 질문하는 마이클 무어. 미국 총기 협회는 비극적 총기 사건이 벌어진 직후 해당 지역에 찾아가 집회를 열고 총기 소지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볼링포콜럼바인>은  두 명의 학생이 벌인 총기난사 그리고 무고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죽음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압도적인 고통 덩어리를 각각 다른 관점으로 풀어낸다. 이 정도의 고통이라면 어떻게든 풀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게 '정상'일지도 모른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전국민이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사회가 고통으로 마비되었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295명의 무고한 학생과 교사 시민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다 죽었고 9명은 아직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압도적인 고통을 풀어내기 위해 유가족들이 울고 싸우고, 수많은 시민들이 마음을 모았지만 무엇이 '왜' 이런 죽음과 고통을 만들었는지 3년이 지난 오늘도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하면 이런 고통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있는지 확신도 없다.


  고통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고 그 무게도 다 다르다. 하지만 콜럼바인이나 세월호 같은 압도적인 고통을 풀어내지 않고 잊을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미쳐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고통을 풀고 어려운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지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모이고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이제 지겹지 않냐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자. 벌써 그 커다란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게 '비정상'이라고. 답을 찾을 때까지 지치지 말고 계속 질문해야 한다고.


신이 정말로 지상의 우리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타인의 행동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156쪽      



덧글. 독서모임 <트레바리> http://http:/trevari.co.kr 에서 책 한권 다큐멘터리 한 편을 패키지로 읽고 보는 <북큐멘터리> 클럽 파트너로  활동중입니다. <북큐멘터리> 4월 모임에서 읽은 책과 다큐멘터리를 소개합니다.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http://m.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blio.bid=10823555

다큐, <볼링포콜럼바인>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5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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