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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타령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삶

by bojoge

용기가 필요한 순간,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건 '사랑'이다. 사랑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너에 대한 사랑, 나에 대한 사랑(사랑하던 너를 떠날 수 있는 용기는 나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아름다움(예를 들면 예술)에 대한 사랑, 약한 것(예를 들면 동물)에 대한 사랑, 절대적인 것(예를 들면 수학)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기타 등등.


사랑은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바라고 욕심내는 욕망과 다르다. 가령,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의 차이는 그것을 둘러싼 행위에 내어주고 희생하고자 하는 용기가 수반되는가에 따라 구분된다.


내어주고 희생하는 용기를 발휘할 때에는 어느정도 고통이 따른다. 따라서 무엇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삶은 고통이 없는 무감각한 삶이고, 죽어있는 삶이다. 죽어있는 삶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삶은 경외를 받고, 죽음은 애도를 받지만 죽어있는 삶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다.


사랑없이 죽어있는 삶은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면, '공백'이다. 무엇인가의 대한 사랑은 덜어내는 고통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삶의 공백을 채운다. 우리 모두가 크든 작든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을 원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아버지는 스무살에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지금의 나이가 될 때까지 약 40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하셨다. 스무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꿈은 '직업으로서의 시인'이었는데, 결혼 후 아이가 다섯이 되자 그 꿈은 포기하셨다. 하지만 '시에 대한 사랑'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일곱식구의 가장으로 남보다 두세배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지고서도 아버지 마음 속에 있는 시에 대한 사랑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회사생활을 하며 문단에 등단하고 세 권의 시집을 내고 지금도 거의 매일 시를 쓰신다. 시에 대한 사랑 못지 않게 산에 대한 사랑, 야생화에 대한 사랑도 크신데, 자식들이 대충 다 크고나니 아예 지방 발령을 받아 지리산 가까운 곳으로 가셨다.


요즘은 주로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올리고 계신데 아버지의 포스팅을 볼 때마다 속으로 감탄한다. 글과 사진 자체에도 감탄하지만 아버지의 삶 밑바닥에 깔려있는 수많은 희생의 시간들과 그 속에서도 온전히 지켜낸 아버지의 시에 대한 사랑에 감탄하게 된다. 돈이 많지 않아도 아버지의 삶이 결코 가난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공백이 생길 틈없이 꽉꽉 들어찬 시에 대한 사랑때문이다.


아버지의 시에 대한 사랑을 보면 내 공백을 채워주고있는 사랑은 어떤 것들일까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사랑하고 있고,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 사랑이 있는지! 내어주고 덜어내지 않고 꾸역꾸역 채우려고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은 용기가 필요한 순간, 용기를 낼 수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용기를 가지면 행동하게 되고 행동하면 변화가 찾아온다. 따라서 변화를 가져오는 건 사랑이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라고 믿고 싶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은 나도 모르게, 처음부터 어쩔수없이 '생겨날' 수도 있지만, 열심히 찾고 노력해서 서서히 '깨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타령이 진부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사랑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다. 죽는 순간까지 우리 삶을 살아있게 하는 건 사랑이니깐.




지리산솔침

김인호

뒷산 바위 위에 구부정히 자란 소나무 마음에 들어 집에 모시려다 한쪽 눈을 찔려 눈물 흘리고 눈이 멀지 않을까 걱정하다 이틀째 문득 정신이 들었다

제 밖의 것을 제 안에 들이려는 탐욕에 대한 일침, 지리산 솔침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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