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다산책방)
조해진 작가의 소설 『여름밤의 무무 씨』는 잃음과 병, 그리고 고독 속에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품은 김은희와 함수연, 두 여성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 각자의 상처와 사연이 교차하면서 인물들은 서서히 서로의 내면으로 스며든다. 이러한 다층적인 시점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인물들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하며, 삶이라는 거대한 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지탱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김은희는 사랑하던 연인 무무 씨(한상무)를 심장마비로 잃은 뒤, 생애 두 번째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다. 무무 씨는 은희보다 먼저 럭키빌라 402호에 살던 수리공이었다. 은희는 그 방에서 세탁기 소리를 ‘파도 소리’로 상상하며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작은 해변’을 기억 속에 품는다. 이 장면은 일상의 소음조차 추억과 상상으로 변주되는 순간을 통해,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치유와 희망이 머무를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은희가 병원에 머무는 동안, 그 집에 새로 들어온 함수연은 은희의 고양이들을 돌보며 그녀의 자취와 기억을 더듬는다. 두 여인은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사물과 공간, 편지와 마음을 통해 조용히 연결된다. 그들의 관계는 피보다 느슨하지만 오히려 진정한 위로의 온기를 품고 있다. 이처럼 낯선 이들이 마음을 주고받으며 만들어 가는 정서적 연대는 상실의 고통을 덜어주는 따뜻한 매개가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내 삶 속 특별했던 인연들을 떠올렸다. 면접 자리에서 8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쌓았던 짧지만 깊은 시간, 편의점 사장님과 ‘이모님’이라 부르며 쌓아온 사장님과 딸과의 인연, 우연히 알게 된 화가 선생님과 제자로서의 시간, 병원에서 만나 함께 베트남 여행까지 갔던 친구, 도자기 수업에서 만나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언니까지. 모두 예상치 못했지만 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삶의 빛이 되어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은희와 함수연의 이야기가 내 경험과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평범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마음과 마음의 연결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주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여름밤의 무무 씨』는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상처를 껴안고도 여전히 살아가는 이들의 용기를 그린다. 암과 죽음, 가난, 노동,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의 그림자 속에서도 인물들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은희와 함수연,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엮어 보이지 않는 인간의 연대를 나타냈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 속에도 불현듯 찾아올 법한 이야기다. 잃음 가운데서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 사소한 정성이 다시 삶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 조해진 작가는 잔잔하면서도 단단한 문체로 그 믿음을 전한다. 상처받은 존재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치유와 공명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 나누는 조용한 이야기와 진심 어린 공감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연대의 온기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