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서랍장

어린 날


가끔 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몸은 땀에 젖어 눅눅하고, 온몸이 누군가의 강한 힘에 눌리는 듯 무겁게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에 꼼짝할 수 없다. 간신히 눈만 깜빡이며, 어린 시절의 내가 무거운 밥 바구니를 들고 팔이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에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미친 듯이 “외삼촌!”을 부르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장면은 내 악몽의 근원이다.


외삼촌은 인부를 고용해 집을 짓고, 그 집을 팔아 돈을 벌었다. 잠시 우리 집 근처에서 일하시던 외삼촌을 위해, 어머니는 나보다 어린 동생 셋을 돌보며 외삼촌의 식사를 챙기셨다. 그리고 그 무거운 밥 바구니를 외삼촌에게 전달하는 일은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예닐곱 살 된 내 몫이었다. 어린 내가 안쓰러웠던 것일까, 외삼촌은 다섯 남매 중 유독 내게만 용돈을 주셨고, 성인이 되어서도 “현희야, 현희야. 하며 예뻐해 주셨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다. 작은 꼬마가 자기 몸만큼 큰 밥 바구니를 들고 간다. 바구니를 놓치면 외삼촌의 식사가 엉망이 될까 봐 온 힘을 다해 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울면서 외삼촌을 부르는 것뿐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내게 ‘깡’이라는 것을 심어준 것일까. 흔들릴지언정 결코 주저앉는 법을 모른다. 웅변 한번 해 본 적 없는 내가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누구의 도움 없이 원고를 쓰고 반 대표로 교내 웅변대회를 나갔을 때도, 중학교 캠프에서 강물에 빠져 수영도 못하는 내가 악착같이 혼자 나왔을 때도, 뮤지컬을 보다 느꼈던 감동으로 무작정 뮤지컬 오디션을 보았을 때도, 어린 현희의 힘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생활하면서 위기가 오거나 정서적으로 불안감이 느껴질 때 어린 날의 내가 밥 바구니를 들고 있던 장면이 그려질 때가 있다. 어머니께서 주요 장기에 작은 담석이 퍼져 위독하셨던 때도,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 수술을 하고, 4개월간의 힘겨웠던 병원 생활을 했던 때도, 결혼이 무산됐던 순간도, 남들은 동정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그 일들은 나무의 옹이처럼 흔적으로 남았지만, 어린 시절 심부름이 끝났을 때 외삼촌이 쥐여주던 청포도 사탕처럼 내 가슴 한편에는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고통의 산물이 살아가며 좋은 거름이 되어, 달콤한 열매를 맺은 셈이다.


그래서일까. 친구나 지인들이 아픈 일을 겪을 때면, 어설픈 조언 대신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그들의 슬픔이나 아픔이 얼른 사라지고 밝게 웃을 수 있기를, 나라는 사람이 그들의 웃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나는 삶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업도, 돈도 없다.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도, 자식도 없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한다. 그동안 좋은 씨앗을 뿌리고, 다양한 양분을 주며 살아왔으니, 내 삶의 열매를 잘 맺으리라 확신한다. 어린 시절, 울면서도 결코 멈춤 없이 외삼촌께 밥을 전하던 그 꼬마처럼, 지금의 나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