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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얼굴이 행복해야 딸들이 다른 꿈을 꿀 수 있어요

by 곰고미

'폭삭 속았수다'를 보며, 동생은 그렇게도 울었다.

눈물을 쏟았다는 반응이 꽤나 많은 건 우리네 삶이, 부모들의 삶의 모습이,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나 애쓰는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일 거다.


시골에서 답답해하고 고생만 하는 엄마가 어쩐 일인지, 서울로 같이 올라왔다.

삼시 세 끼 밥 차리고, 집안일에, 농사일까지 일이 고되고 힘들 때마다

서울 혹은 세종으로 - 자식들 있는 곳으로 '도망' 가겠노라고 아빠에게 협박(?)을 하던 엄마는, 늘 말뿐이었는데.


지난달에 시골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같이 올라가서 놀다 오자'는 내 제안에, 엄마가 웬일로 흔쾌히 오케이 하시더니. 서울에서 4박 5일 동안 있다가 내려가셨다.


"엄마가 행복해야 딸들이 다른 꿈을 꿀 수 있어요."


지난달에 엄마가 올라오셨을 때, 소장님을 만나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다.

소장님의 말씀에 울컥, 올라오는 걸 보니 엄마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은 게 내 삶에 진짜 큰 부분이었구나를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됐다.


부모님이 덜 힘들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학창시절에도 열심히 공부했고

<금강경>을 시작으로, 내게 도움이 됐던 -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던 책들을 집으로 보내곤 했었다.

나랑 비슷하게 자주 여기저기 아픈 엄마를 좀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어서 EFT를 시작으로 온갖 걸 배우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슈퍼에서 하루 종일, 365일 20년을 넘게 일했던 엄마 아빠의 삶을 '삶'이라고 인식하기보다 '슈퍼에 갇혀있다'고 인식했던 나는, 부모님을 슈퍼 밖으로 '탈출' 시키고 싶은 게 오랜 꿈이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여정이 그러한 소망 혹은 결핍에서만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엄마가 행복하게, 즐겁게, 맛있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 나만의 소망은 아니겠지 싶었다.


남들에겐 '그게 소망이라고?!' 할 만한 것들 -

엄마랑 카페에 앉아, '쓴커피'와 달달한 케이크를 먹으며 수다 떠는 일(엄마는 꼭 쓴커피라고 표현한다 ㅋㅋ)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동안 못 먹어봤던 쌀국수나 초밥 같은 새로운 음식들을 먹어보는 일,

생에 처음으로 연극을 보러 가는 일,

아차산에 올라가 한강을 내려다보며 '치, 서울 별거 아니네' 하며 같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참 오래도록 꿈꿨었는데


그걸 직접 해 보고 나서야,


'아, 이게 사는 거였지.'

'나 이거 하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거였지' 싶었다.


별거 아닌 일인데,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허탈한 웃음과 함께,

가슴 속에서 꽉 차게 차오르는 무언가를. 말로 다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밤마다 엄마와, 동생과 술 한잔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는 엄마의 말에 같이 울었다.

부모님과 같이 있을 때.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게, 눈물 나도록 감사하고 참 다행이다 싶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엄마가 서울로 올라와 며칠씩 동생과 나와 같이 있다가 시골로 내려가시기로 했다.

오늘, 두 번째로 엄마가 올라오시는 날이다.

3월 한 달 동안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서 계속 기다렸던 날이다.

이 소중한 날들을 더 잘 보내기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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