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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철 Jan 13. 2019

<브라질 팔도유람>
01.2 바이아, Bahia

깐돔블레, Candomblé

깐돔블레, Candomblé


남산타워가 열리면 그 안에 로봇 태권브이가 있어서 전쟁이 나면 출격을 한다는 실없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 이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듯이 “진짜로?”라고 물어보곤 했었다. 

외계로부터의 침략에 “빰빠라밤~”하고 서울의 상징인 남산타워가 열리고 우리를 지켜줄 로봇이 출격한다는 허황된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를 지켜줄 수호천사에 대해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 그리고 어려서부터의 그것에 대한 교육은 이런 이야기가 당연한 거짓말같이 여겨지지는 않게 한다.

또한, 이런 이야기는 왠지 영화에서 많이 봄 직하다. 

그리고 세계의 어느 도시나 이런 이야기에 어울릴 법한 곳이 항상 있을 테고 브라질 역시 그런 곳이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은 다양한 영화에서 단골로 사용되어왔다. 

또 다른 장소로 그럴듯한 곳이 바이아의 사우바도르의 지키 두 토로로의 오리샤 조각상들도 후보지 중의 하나이다.

지키 두 토로로는 도시의 중앙에 있는 커다란 호수이다. 사실 이곳은 자연적인 호수는 아니고 과거 식민시절에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우리나라의 의림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부터가 토로로(tororo)의 저수지(dique)이다. 토로로는 인디오 투피족의 말로 토로로마(tororoma)란 말에서 왔는데, 그 말뜻은 ‘물로부터’란 뜻이 된다.

이 호수는 주위는 잘 정돈이 되어있어서 많은 사람이 산책하고나 여가를 즐기는 곳이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월드컵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폰치노바 경기장이 위치해 있다.

이 호수의 특징은 중앙에 8개의 사람 형태의 큰 조각상이 원을 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들은 조각상이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출중해서 마치 ‘어벤저스’


처럼 도시가 위급해지면 출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시의 수호천사들처럼 말이다.




이 8개의 사람 형태의 조각상은 오리샤(orixá 혹은 orisha)들이고 그들의 이름은 오슘(Oxum), 오굼(Ogum), 오쇼시(Oxóssi), 샹고(Xangô), 오샬라(Oxalá), 이에만자(Iemanjá), 나나(Nanã ) 그리고 이앙사(Iansã)이다. 

오리샤는 아프리카에서 유래된 아프로 브라질 종교인 깐돔블레의 정령들이다.

깐돔블레는 모든 것에는 정령이 있다고 믿는 종교이고 이런 정령은 오리샤로 대표된다. 즉 강의 정령인 오리샤가 있고 불의 정령인 오리샤가 있다. 무지개가 뜨면 무지개의 오리샤가 나타난 것이다. 어찌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포세이돈이나 아프로디테 같은 혹은 힌두교 같은 다신교 같지만 깐돔블레는 사실 올로룽(Olorum)이란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다. 

이 올로룽과 인간과 자연 사이에 정령들인 오리샤를 숭배하는 종교이다.

오리샤들은 인간의 존재와 가까운 특성이 있다. 그들은 각각의 외적인 의상이나 물건들, 색깔들, 성질들, 관장하는 것들, 상징하는 것들, 음식들, 감정들, 음악과 노래들, 주술들, 요일 같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고유의 오리샤(들)이 있다. 사람에 따라 하나의 오리샤나 혹은 여럿의 오리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두 개의 오리샤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각자의 오리샤가 사람의 얼굴이 되었을 때면 그 오리샤의 성격이나 성질 등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평온하나가 화가 나면 불같아지는 사람이라면 평온할 때의 오리샤가 화가 날 때의 오리샤로 바뀌는 셈이 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사상 오행설처럼 우리의 외모나 성격과 성질에 따라 추론할 수 있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오리샤를 알고 싶다면 우리의 점술에 해당하는 부지오를 봐야 한다.


깐돔블레를 행하는 곳, 기독교식으로 교회라 할 수 있는 것은 테헤이루, terreiro라고 부르는데 원래 그 말은 큰 땅이란 뜻이다. 이 테헤이루는 바이아 지역에 정말 많이 있다. 특히 1975년 이후 법적인 보호를 받기 시작하면서 많은 테헤이루는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그리고 많은 새로운 곳이 더욱 생기기 시작했다. 

페데라썽 지역의 깡투아 Cantois, 까불라지역의 일레 아쉐 오포 오폰자 Ilè Axè Ofonja, 엔젱뉴 벨류 지역의 가장 오래된 테헤이루인 까사 브랑카casa branca, 같은 지역의 오슈마레의 집Casa de Oxumaré 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고 유명한 테헤이루들이다.

프랑스 출신의 사진가이자 인문학자는 피에르 베제는 바이아를 소재로 멋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오슈마레의 집의 신도이기도했던 그는 당시 깐돔블레와 테헤이루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깐돔블레의 의식을 찍으면 사진에 나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여전히 깐돔블레의 장면은 사진 촬영이 허가되지 않는다. 


테헤이루를 관장하고 있는 사람은 여자면 마이 지 산투스 mãe de santos 혹은 이야로리샤 iyalorixá 라고 부르고 남자인 경우는 파이 지 산투스 pai de santos 혹은 babalorixá라고 부른다. 오직 이들만이 부지오를 볼 수 있다.

이런 부지오는 자신의 오리샤를 아는 것뿐 아니라 이런 오리샤를 통해서 액운을 막고 행복을 빌기도 한다. 그건 마치 우리의 기복신앙과 같다.

마이 지 산투스와 파이 지 산투스는 이런 부지오를 통해서 사람을 조정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고도 알려졌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흑마술도 일종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사실 영화나 미디어는 이것에 관한 이미지의 편견을 조장해 오기도 하였다. 


바이아 지역에서는 언제나 존경받은 마이 지 산투스와 파이 지 산투스가 존재해왔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브라질 사회의 리더였다. 

메니닝야, 마이 스텔라 지 오쇼시같이 존경받은 마이 지 산투스는 바이아에선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서울이 하느님께 봉헌된 도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바이아가 오리샤에 봉헌된 도시라는 것에 대해서 바이아 사람은 그들의 종교가 무엇이건 간에 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바이아의 주지사나 사우바도르 시장은 거리의 커다란 광고판의 형식으로 존경받는 마이 지 상투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하기도 한다.

바이아는 깐돔블레이고 깐돔블레는 바이아이다.

바이아의 모든 것은 오리샤로부터이다  

모든 것은 오리샤가 있다는 믿음, 자기 곁에 오리샤가 있다는 믿음은 바이아 사람에게 큰 안도와 힘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하였던 우리의 어머님의 마음과도 다른 것 같지 않다.


깐돔블레란 말은 아따바끼(북)의 춤이란 뜻의 ‘깡동베’와 집이란 뜻이 ‘일레’가 합쳐진 말이다.

즉 북을 연주하며 춤을 추는 집이란 뜻인데 깐돔블레의 의식은 그렇게 북을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진행이 된다. 그래서 이런 의식 혹은 예배를 축제라는 의미의 페스타(festa)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따바끼란 북은 크기에 따라서 훔(rum), 훔피(rumpi), 레(le)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아고고(혹은 강) 그리고 쉐케레(xequere)란 악기와 함께 하나의 연주 밴드가 구성된다.

이렇게 4명에서 5명의 사람이 함께 연주하고 보통 아라베(alebê)라고 불리는 사람은 가장 큰 북인 훔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끌고 간다. 이 아라베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함께 합창으로 답 노래를 부른다. 이 음악에 맞추어 바이아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은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의식이 무르익어지면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은 오리샤의 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데 이는 원 밖에서 의식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런 트랜스의 과정은 사실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영험한 굿의 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발작 증세를 일으키는데, 깐돔블레 성직자들은 능숙한 솜씨로 마치 영을 잡는 듯이 손바닥으로 등을 잡는다. 그러면 이런 발작 증세는 조용해진다.

그리고 오리샤의 영을 받은 사람은 오리샤를 위한 방으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이들은 모두 오리샤의 옷으로 입고 각자의 오리샤 춤을 추면서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돌고 돈다.

바이아 전통의상을 입고 시작한 페스타는 어느새 오리샤의 세상으로 변해버린다. 음악은 한층 더 빨라지고 강해지고 깐돔블레 페스타의 에너지는 뜨거워진다.


깐돔블레의 이런 초현실적인 광경은 익숙하지 않고 너무나 강해서 이교나 악마의 종교 같은 편견을 낳기도 했다. 우리가 부두교란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이미지 같은 것 말이다.

어찌 보면 깐돔블레는 우리의 무당의 굿판과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오리샤들도 과거의 우리 천지신명이나 삼신 같은 우리 민속신앙, 무교, 토속 신앙과 유사하다. 

또한, 우리가 제를 올린다는 표현도 축제란 의미가 있고 이것은 깐돔블레에서 그들의 의식을 페스타(축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깐돔블레는 브라질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 중에는 깐돔블레 종교의 성직자들이 있었으며 이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브라질에 정착했다.

이런 아프리카의 오리샤들은 브라질 뿐 아니라 흑인 노예를 수입한 국가에는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쿠바의 산테리아, 아이티의 부두교가 바로 그것이다.

브라질의 깐돔블레는 어찌 보면 아프리카보다 더 잘 보존된 아프리카의 문화이다. 역설적으로 아프리카의 많은 문화는 많은 종족 간의 전쟁으로 사라졌다. 오히려 이들은 노예가 되어서 브라질로 이주가 되어 전파되었다. 이런 노예 수입은 엄청난 규모로 계속되었고 이런 형태는 거의 20세기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런 아프리카의 것들은 식민지 시대에는 엄격하게 금지가 되었다. 브라질로 건너간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를 지속하기 위해 보통 2가지 방법을 써서 자신의 종교를 지속해 나갔다. 

하나는 낮의 사용되는 방법이고 공존해야만 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밤의 방법이고 그들만의 방법이기도 했다. 

첫 번째는 일요일 낮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백인 주인들의 종교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들은 예배에 공존해야 하는 방법으로는 가톨릭의 성인들에게 자신의 오리샤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대입했다. 즉 예수님은 오샬라, 성 조지는 오굼, 성세바스챤은 오쇼시, 성녀 마리아는 이에만자로 대입해서 교회에서 기도를 드렸다.

백인 신부와 백인 주인이 인도한 교회에서 가톨릭 성인들에게 기도하고 있지만, 흑인 노예의 마음에는 그와 비슷한 의미의 아프리카에서 온 그들의 오리샤들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교회의 백인 주인들과 예수님과 많은 성인과 함께 오리샤들은 흑인 노예의 기도를 들어주었다.

또한, 아프리카의 오리샤들은 분명 가톨릭의 성인들로 위장되었지만, 그것은 점차 혼재되었다. 사실 이런 과정에서 흑인 노예들은 가톨릭의 종교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십자가의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통, 온아한 마리아의 모습은 그들의 현실적인 고통과 대비되어 위안해주었고 실제로 가톨릭의 종교 역시 그들의 믿음의 한 부분이 되었다. 

어찌 보면 그들의 종교 깐돔블레는 오리샤와 함께 가톨릭의 성인 또한 받아들일 것이다.


두 번째는 주인이 잠이 든 한밤중, 몰래 자신들의 의식을 치르는 일이다. 그들은 주인이 잠이든 한밤중에 모여서 그들의 방식, 즉 북을 연주하고 오리샤를 불러내어서 춤을 추고 제물을 바치는 방식으로 오리샤를 숭배했다. 바로 자신들 고향의 의식을 타향 브라질로 옮겨왔다.

낮의 육체적인 피곤과 고통은 한밤의 이런 의식을 통해서 해방되었다. 어찌 보면 마치 다음 날 더욱 힘들어 같지만, 그들은 더욱 생생해졌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한창 젊은 시절에는 좀 놀았던 피곤한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에 밤새워서 노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있다. (심지어 매일 노는 사람도 있다) 

육체노동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예들은 젊었고 그 고통의 시련을 이길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고 활기가 있었다. 노예들의 나이는 젊음의 에너지로 충만된 나이였다.

사실 이런 에너지를 통해서 브라질의 문화의 근간이 이루어졌다.

삼바, 까뽀에이라, 카니발 등은 모두 이런 근간을 통해서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덧붙여서.

 깐돔블레는 아프리카의 지역과 언어 즉 기원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이런 기원을 나라라는 의미로 나썽, Nação 이라고 한다. 위의 사용된 용어는 가장 많은 수의 나썽인 ‘Ketu’를 기반으로 썼다.

또한 ‘Angola’, ‘Jeje’ 같은 나썽도 존재하고 용어나 방식 등의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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