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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철 Jan 13. 2019

<브라질 팔도유람>   
02.1 미나스 제라이스

골드러시

골드러시


예전에 브라질 내부 깊숙이 “싸바라부쑤”라는 산이 있었다. 이 산은 일명 “휘황 찬란산”이라고도 불리었는데 그곳에서는 에메랄드 같은 귀금속이 가득 있다는 전설의 산이었다. 얼마나 많은 보석이 있는지 해가 뜨면 산에서 보석의 광으로 빛이 난다고 하여 “휘황 찬란산”이라고 불리었다. 하지만 전설의 산이라 이 산이 어디 있는지는 몰랐고 미나스 제라이스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있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많은 용기 넘치는 사람들이 그 산을 찾아서 떠났었다. 당시 법적으로 브라질 땅의 발견되는 귀금속은 모두 포르투갈 왕의 소유였다. 하지만 귀금속을 발견하는 자는 부는 물론 귀족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브라질 내륙으로 귀금속 혹은 금을 찾으러 떠나곤 했었다. 이런 무리를 반데이란치라고 불렀다.

페르낭 지아스는 이런 반데이란치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상파울루 출신의 그는 벌써 많은 내륙 원정을 통해서 명성과 부를 쌓았다. 그의 명성은 상파울루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왕에게도 자자하였다.


그 당시인 17세기 중반의 식민지 브라질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북동부의 사탕수수 경제가 네덜란드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네덜란드는 17세기 초반 브라질을 침략해서 페르남부쿠를 지배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서인도 제도의 다양한 섬을 지배했는데 그 섬의 사탕수수를 재배해서 유럽에 수출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사탕수수는 더 싸고 더 질이 좋았다. 포르투갈의 식민지 브라질의 사탕수수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의 사탕수수 경쟁에서 지고 말았다.


포르투갈은 식민지 브라질에서 사탕수수 외에 무언가 다른 아이템이 필요했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아이템의 제일은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귀금속이었다. 넓고 넓은 브라질에서 이런 탐사를 하는 깃발 원정대는 존재는 중요했고 포르투갈도 이 원정대를 지원하였다.

브라질 국왕은 당시 최고인 페르낭 지아스에게 임무를 내렸다. 그 임무는 당시 가장 값비싼 보석인 에메랄드 탐사를 위한 내륙의 탐험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60살이었고 그는 자기에게 마지막 도전이 될지도 모르는 임무를 승낙한다.

많은 준비 기간과 대규모의 대원을 합류시킨 그의 원정대는 전설의 산 “싸바라부쑤” 일명 ’휘황 찬란산‘을 찾아 떠난다.

그 뒤의 일화는 영화에서 봄 직한 이야기들이다. 고생과 고생, 대원들의 이탈과 죽음, 그리고 반란 등으로 모진 풍파를 겪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태양이 어느 날 아침, 저 멀리서 이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빛에 번쩍이는 산에 도착하게 된다. 바로 그렇게 찾던 “싸 바라 부쑤"산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들뜬 마음에 산 아래까지 한걸음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사는 인디오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전설을 듣게 되었다. 그곳에 사는 부족 마파쇼스의 전설이었다. 

이 산 아래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 그곳에 ‘위아라’라는 여신이 산다고 한다. 이 여신은 보름달이 뜨면 호수 위의 꽃 위로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곳의 젊은이들이 이 노래에 홀려서 자꾸 호수에 내려가서 다시는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제례를 지내고 인디오의 신인 마카세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인디오 신인 마케세라는 그녀를 호수 아래로 잠재웠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하길 그녀가 깨는지를 잘 살피고 그녀가 깨는 일을 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녀가 잠든 후에 마을도 더는 젊은이들이 사라지는 일이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이 위아라는 아주 긴 녹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은 호수 아래에 진흙처럼 길게 흩어져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파쇼스 부족은 그녀를 깨우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페르낭 지아스에게 경고하였다.

페르낭 지아스는 그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그 후 그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땅속에 있는 녹색의 돌을 발견했다. 마파쇼스 부족의 경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놀라움 속에 그 녹색의 돌을 캐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그토록 원하던 에메랄드 보석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설 때문이었을까? 그 에메랄드라고 생각한 그 돌은 그녀의 녹색 머리카락이었을까? 그래서 그녀 ‘위아라’를 깨운 것이었을까?

그는 그곳에서 갑자기 고열의 열병에 걸렸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그가 발견한 것이 에메랄드라고 굳게 믿은 채 말이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어쩌면 위아라의 머리카락 일 수도 있는 이 녹색의 광물은 값어치가 없는 전기석의 일종이었다.

의지의 화신 페르낭 지아스는 그렇게 마지막 도전을 끝을 냈다. 그의 도전은 허망하게 끝이 났다.

자연과 어떤 영혼의 힘 앞에서는 인간의 힘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와 원정을 함께한 그의 사위 보르바 가투가 그가 죽음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 오늘날의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벨랴스강에서 드디어 상당량의 금을 발견하였다. 그때가 1695년이었다. 

드디어 브라질에서도 금이 발견된 것이다. 이 금의 발견은 곧바로 브라질의 골드러시를 가져다주었다. 

아마도 그가 금을 발견했을 때는 금빛의 전설이나 또 다른 위아라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심청이와는 반대의 전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가족의 사랑은 사람의 눈을 뜨게도 했지만, 이 금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브라질은 골드러시 시대는 이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18세기는 바로 브라질에는 골드러시의 시대이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이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가져왔다면 골드러시는 아프리카 노예뿐만 아니라 포르투갈과 대서양의 도서에서 많은 이민을 가져다주었다.

금이 발견되고 약 60년 동안 60만 명의 인구가 브라질을 찾았다. 금이 있는 곳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금을 채굴할 사람뿐만 아니라 소농, 성직자, 상인, 매춘부, 투기꾼 등 다양한 계층에서 그야말로 브라질로의 러시를 이루었다.

골드러시는 정말 뜨거웠다. 단숨에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황금에 눈이 먼 자들은 미나스 제라이스를 비롯한 브라질 내부로 모여들었다.


이런 골드러시는 그야말로 사탕수수 농업에 타격을 입혔다. 사탕수수에 기반을 둔 산업은 외부의 요인과 내부의 요인으로 점점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갔다. 이제 많은 노동력은 금이나 광물을 채굴에 열을 올렸다. (그래도 여전히 사탕수수는 계속됐고 여전히 브라질은 현재에도 세계 제일에 사탕수수 수출국이다.)

이제 산업은 사탕수수들의 농장이 흥하던 북동부에서 남동부로 이전하였다. 


이 골드러시로 인한 많은 인구의 이동은 내륙에 많은 도시를 만들었다. 금의 채굴하는 곳에는 다양한 경제가 일어났다. 또한, 이 지역은 금 외에 다양한 광물이 많이 있었고 많은 광산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름도 광산(광물)이 많다는 의미의 미나스(광물) 제라이스(일반적인, 많은)가 되었다.

많은 인구의 유입은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켰고 주위의 농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곳의 좋은 기후와 많은 산은 낙농업이 발전하는 데도 이바지했다. 

브라질의 경제의 중심은 북동부에서 남동부로 바뀌었다. 노예 수입과 이민, 금의 수출입은 내륙의 미나스 제라이스에 가까운 항구 리우데자네이루의 몫이 되었다.

결국, 1763년 식민지 브라질의 수도는 바이아의 사우바도르에서 리우 데 자네이루로 옮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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