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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철 Jan 13. 2019

<브라질 팔도유람>
02.2 미나스 제라이스

오루 프레투, 시코 그리고 시카

오루 프레투, 시코 그리고 시카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주도 벨로 오리종찌에서 차로 1시간을 넘게 구불구불한 산세를 달리다 보면 오루 프레투란 도시가 나온다.

내가 처음 이 도시에 갔을 때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도시 초입에서부터 이 도시는 그냥 시골 도시가 아니었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고 뿌연 안갯속에 보이는 도시는 마치 신기루 속에 있는 도시 같았다. 오래된 건물들만 존재하고 도시의 빌딩이나 현대적인 도시의 느낌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마치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세트장 한복판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아스팔트도 없고 신식 건물도 없다. 폭풍 속에서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래된 건물들, 유럽풍의 바로크 시대의 건물들, 많은 교회, 광장과 영웅들의 조각들. 거기다가 오래된 차들까지 

이 도시를 걷고 있노라면 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와 반바지가 어색할 지경이다. 왠지 중절모의 멜빵바지의 남방의 구두를 신고 걸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시에는 많은 언덕이 있다. 그 언덕을 헉헉거리고 올라가다 보면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언덕이 있는 곳에 도시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많은 오르막 때문에 무척 건강할 것이다. 

각 언덕에는 아주 고풍스럽고 한눈에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콜로니엄풍의 교회들이 있다. 모든 건물이, 정말로 모든 건물이 그렇다. 모두 과거의 건물들 양식을 하고 있다.


오루 프레투는 골드러시 시대에 만들어진 도시이다.

오루 프레투는 우리말로 치면 검은 금이란 뜻이다. -사실 그 옆에는 오루 브랑쿠, 즉 백금이란 도시도 있다.



옛날에 이곳을 지나던 한 물라토가 이 근처를 지나던 강에서 물을 마시다 검은 돌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알고 보니 금이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펼쳐나갔고 사람들은 이내 이 검은 금을 찾으러 이 도시에 개미 떼처럼 모여들어 검은 금 도시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친구들이 발견한 검은 돌이 진짜 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도시는 삽시간에 세워졌다.

18세기에 절정이었던 골드러시의 열풍은 이곳을 브라질에서 가장 부자인 동네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빌라 히카, 즉 부촌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주도가 되었다.


금색은 정말 사람의 눈을 멀게 하나 보다. 이 눈이 머는 현상은 가장 확실한 선택과 집중을 가져왔고 모든 것이 단숨에 이루어지게 하였다.

정말 단숨에 말이다. 모든 것이 단숨에 이루어졌다. 단숨에 제일 부자 도시가 되었고 단숨에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되었다. 

골드러시로 달려온 사람들로 오루 프레투의 전성기 때 인구는 11만 명에 달했다. 

당시 가장 브라질에 큰 도시는 사우바도르와 리우 데 자네이루였는데 그 도시의 인구는 약 4만 명 정도였고 미국의 뉴욕의 인구는 5만 명 정도이었다고 한다.

오루 프레투는 골드러시 시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금에 대한 욕망은 사람을 환장하게 했다. 그리고 거칠어지고 야만적으로 되었다. 브라질의 골드러시는 미국이나 호주의 골드러시에 비교해 1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많은 지역에서 인구가 유입되었고 특히 많은 흑인 노예 역시 유입이 되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흑인 노예를 사서 대규모로 광산에 투입했다. 


예술은 돈이 지나간 자리에 꽃을 피우는지 이런 풍부한 금의 뜨거움이 지나가자 화려한 예술들이 꽃을 피웠다. 

식민시대에 돈이 있으면 가장 먼저 화려하고 커다란 교회를 짓는다. 어쩌면 우리 인간이 가진 탐욕과 죄악이 극대화가 되어 돈과 황금으로 변신이 되면 그 돈과 황금으로 그 탐욕과 죄악을 씻어줄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교회를 짓는다. 그 탐욕과 죄악이 크면 클수록 교회는 그 크기만큼 커지고 화려해진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곳에서 일요일마다 구원을 받고 다시 탐욕과 죄악을 계속 채워나간다. 

이곳 오루 프레투 세워진 교회들은 역시 금의 도시답게 그야말로 금칠로 치장한 바로크풍으로 하나둘 지어졌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는 아름다운 예술혼의 작품 등이 탄생했다. 

그 속에서 브라질 최고의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알레이자지뉴가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알레이자지뉴의 본명은 안토니우 프란시스코 리스보아이다. 그는 어렸을 때 질병으로 다리가 불편하였다. 알레이자지뉴는 절름발이, 앉은뱅이란 뜻이 있다. 

알레이자지뉴는 포르투갈 건축가와 흑인 여성 노예 사이에 태어난 물라토였다. 그는 어려서의 얻은 병 때문에 최악의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불구자였고 거기에다 험상궂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육체적인 것은 그의 예술을 향한 정신에 제약이 되질 않았다. 그는 도구를 잡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도구를 손에 묶어 가면서 조각을 했다. 

알레이자지뉴는 이곳, 오루 프레투에 멋진 조각품과 교회를 건축했다. 특히 그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상프란시스쿠 아시스 교회를 30년에 걸쳐서 건축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 독특함에 숨이 턱 막힐 정도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앉은뱅이의 작품이라 할 정도로 그의 오리지널리티가 생생하다.


금은 어떤 이에게는 – 비록 그것이 아주 소수이긴 했지만- 천국을 가져다주었다면 대다수 사람은 지옥을 선물했다. 

그리고 이 중에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간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은 아프리카 콩고 출신의 왕인 시코 헤이(시코 왕)였다.

콩고의 한 부족의 왕이었던 시코 헤이와 그의 가족은 포르투갈의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서 브라질에 노예로 끌려왔다. 그의 가족뿐 아니라 그의 부족에 많은 사람이 노예로 잡혀 왔다.

그의 왕가와 부족이 노예 사냥꾼에 잡힌 이 비극은 전조에 불과했다. 그들은 마달레나라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가진 노예선을 타고 브라질로 향했는데 대서양 한가운데서 커다란 폭풍을 만났다. 

폭풍 잠재우기 위해서 바다의 신께 여자 제물이 바치기로 했다. 바다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한 제물은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 배에 타고 있던 가장 높은 신분의 여자, 즉 여왕과 공주가 바다의 신의 제물로 바쳐졌다. 바로 시코 헤이의 아내와 딸이었다. 

그렇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절망과 슬픔을 가지고 브라질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루 프레투의 광산에 금을 캐기 위해서 투입이 되었다.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노동, 지하 갱단의 어둠과 무자비한 폭력 속에 그리고 질흙 같은 절망의 순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두운 암흑에서 금의 반짝임은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는 계속 금을 찾았고 일요일까지도 쉼 없이 밤새도록 일을 했다. 그리고 그는 몰래 머리카락 속에 금을 숨겨가면서 노예 생활을 했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결국 그는 몰래 모은 금으로 자유를 샀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노예로 끌려온 자신의 부족 사람들을 위한 자유까지 사버렸다. 마치 그들은 노예 협동조합 인양, 이 부족은 더 나아가서 광산까지 사들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왕이 되었다. 그들은 노싸 세뇨라 두 호사리우 교회를 세우고 이 교회가 세운 날이 되면 축전을 벌였다.

교회의 미사가 시작하기 전 그들의 전통적인 다양한 북을 연주하고 춤을 연주하면서 행진을 했는데 그것이 브라질 리듬 '콩가두'의 원형이 되었다. 

이 콩가두는 마라카투등 브라질의 아프리카에서 온 다양한 리듬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실 시코 헤이의 이야기는 브라질 공식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은 구전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오루 프레뚜에 가면 그가 일했던 광산이 있다.


<콩가두를 연주하면 행진하는 축전의 그림>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알포히아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알포히아는 일종에 엽서 같은 종이인데 그것은 노예 주인이 이 사람은 이제는 노예가 아니라는 증명을 해주는 증서 같은 것이었다. 노예들은 주인에게 돈을 내고 국가에는 세금을 내면 이 증명원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많은 노예가 이 증명원으로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은 신데렐라 같은 이도 있었다.


시카 다 시우바는 노예였지만 그녀는 다이아몬드 탐사가 한창일 때 잘 나가는 포르투갈의 남자를 만났다. 비록 노예 신분이었지만 남자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 후 그녀는 알포히아를 사서 노예 신분을 벗어났다. 당시 노예와 백인 간의 결혼은 불법이어서 정식 결혼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 사랑의 계약(?)을 맺었고 자녀를 14명이나 두었다.

시카 다 시우바는 당시 지역사회의 상류층으로 살면서 비극적인 결말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시카 다 시우바는 여전히 브라질의 신데렐라 같은 실존 인물이고 여러 이야기와 전설이 섞여서 전해진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 소설을 통해서 많이 소개되었다. 

시카 다 시우바는 신분 상승과 알포히아의 대명사의 미담처럼 소개된다.

이 제도가 어찌 보면 무언가 패자부활전의 느낌도 나고 희망적인 좋은 제도 같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노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런 제도로 희망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증명원의 대가는 엄청 비싼 돈이었다. 주인으로서도 이 제도는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노예로 산 돈보다 몇 배의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돈으로 새로운 노예를 더욱더 많이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주인들은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사유 재산을 얻을 기회를 주기도 했다. 

아프리카 노예는 주인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고 또한 자신의 자유를 사기 위해 또 뼈 빠지게 일했다. 그리고 그 돈을 다시 주인에게 주고 자유를 사기도 하였다. 조금 더 많이 생각해보면 화가 많이 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것은 현재의 이야기가 아닌 옛날 시대의 이야기이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현재에도 넘쳐난다. 그리고 설마…. 하지만 나 자신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모든 게 다 돌고 도는지 모르겠다. 이런 골드러시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도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등의 광풍으로 여전히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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