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첫 공항은 1936년, 당시 브라질 수도 리우 데 자네이루에 개장된 산투스두몽 공항이었다. 산투스 두몽은 비행사이자 비행기 발명가이다. 예전의 지폐에 그 얼굴과 그의 비행기가 새겨질 정도로 그는 브라질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실 우리는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만들고 비행에 성공했다고 알고 있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세계 최초의 비행기와 비행은 바로 당연히 산투스 두몽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산투스 두몽을 모르는 것처럼 많은 브라질 사람은 라이트 형제를 모르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유럽에서도 첫 비행과 비행기 하면 산투스 두몽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브라질에서 공항의 첫 이름은 산투스 두몽의 몫이었다. 그는 브라질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비행기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모든 브라질의 비행기 조종사는 조종사가 되기 전에 그에게 선서한다.
산투스 두몽은 브라질의 미나스 제라이스의 부유한 커피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일찍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프랑스에서 자신이 만든 비행선과 비행기로 여러 차례 비행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비행기는 그에게 불행을 안기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비행기를 조종하다 사고를 당하였고 그 뒤로는 비행기 조종을 하지 않았다. 사고의 여파로 다발성 경화증을 알았고 그것은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제1차 대전에 발발하고 그가 만든 비행기가 사람을 죽이는 용도로 사용하자 크게 낙심하여 배를 타고 브라질로 돌아왔다. 그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 그가 만든 비행기가 추락하여 전원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기도 하였다.
그는 그가 처음으로 비행 법을 알려준 최초의 여성 항공기 조종사를 사랑했는데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산투스두몽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아주 가슴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다. 한 예로 세계 역사에도 유명한 장면인 에펠탑을 비행하고, 그것으로 받은 엄청난 상금을 프랑스의 걸인에게 나뉘어 버리고 남은 돈은 자신을 위해 일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의 엄청난 실패와 노력 끝에 성공한 이 비행 기술들은 프랑스의 비행 산업이 가져가 버렸다. 그는 결국 거의 쫓겨나다시피 프랑스를 떠났다.
아마 이렇게 된 것은 그의 심성 탓일지도 모른다. 그가 생각했던 비행기의 상징성은 미래로 향한 비행 그리고 모험과 여행의 낭만 같은 것이었다. 그것과 대치되는 전쟁에 사용되는 전투기, 폭격, 인명 학살 같은 것에 비행기가 쓰이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이런 무거운 현실을 가슴 아파했고 결국 프랑스에서 당한 배신감과 자신이 만든 비행기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괴로워하다 결국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투스 두몽으로 인해서 프랑스와 브라질은 세계 항공 산업 분야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에어버스는 세계 두 번째의 항공기 제작사이고 브라질 항공사 엠브라에르, Embraer는 4대 항공기 제작사이기도 하다. 산투스 두몽과 그의 비행기는 브라질의 큰 자부심이 되었다.
이런 비행기는 언제나 현대의 시작을 의미하고 미래를 상징한다.
브라질이 수도를 이전하기로 하고 브라질리아를 건설했을 때 비행기 모양으로 도시를 만든 것은 그들의 미래의 의미로 당연했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의 멋진 일을 될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브라질의 대부분은 도시는 모두 해양에 접해져 있었다. 과거 식민시대의 브라질에 사람들은 유럽에서든 아프리카에서든 바다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생산한 원자재는 배를 타고 유럽으로 향했다. 그러다 보니 항구의 기능을 하는 도시가 발전했었는데 이런 항구 도시가 일색인 것은 브라질의 큰 땅에 비교하면 너무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보니 국토의 불균형이 심화하여 내륙으로 진출하는 것은 브라질 미래에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사실 브라질의 수도를 내륙으로 한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되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특히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도모할 때면 어김없이 내륙으로 수도 이전의 이야기가 나왔다.
브라질 독립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인 중 한 명인 주제 보니파시오는 브라질 독립 이후 얼마 안 되어서 식민시대의 잔재 청산과 독립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새로운 수도 건설을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그 이름을 ‘브라질리아'로 해야 한다고 처음 이야기했다. 그것은 19세기 말의 일이었다.
공화정이 수립된 이후 공화정 헌법에 국토 중앙으로 수도 이전을 한다고 명시화했다. 하지만 언제 이전을 한다는 것은 명시하지 않았다. 1922년에는 지금의 브라질리아 근방에 부지를 선정하고 표석까지 설치했다. 하지만 수도 이전은 미래의 일이었고 그 미래가 현실이 되지는 못했다.
이 수도 이전은 1950년대 브라질의 국부가 되고자 했던 제툴리우 바가스가 자살로 그의 신국가 혁명의 독재가 끝이 나면서 현실화가 된다.
당시 정치는 항상 그렇듯 혼란스러웠지만, 브라질은 자신감과 새로움이 넘쳐났다. 월드컵 우승과 산업화, 그리고 새로운 보사노바의 문화는 브라질의 에너지를 뜨겁게 만들었다. 브라질은 과거에서 그야말로 현대로 넘어갔다.
당시 50년대는 사탕수수와 바나나 그리고 녹색의 밀림의 앵무새와 아마존의 원숭이 같은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땅의 이미지에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제작하는 산업의 이미지가 더해졌다. 또한, 열정적이고 쿨한 젊은이들은 새롭고 멋진 문화 예술을 전 세계에 내놓았다. 아름다운 자연, 산업화 그리고 핫하고 쿨한 문화를 앞세워서 브라질이 세계의 이상향이 될 것 같은 것이 멀지 않아 보였다.
의사 출신의 정치가 주셀리노 쿠비체크는 일명 Jk(조따 카)는 브라질의 미래를 이름으로 브라질리아의 건설을 공약으로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50년을 5년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보사노바의 대유행으로, 그는 보사노바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신속하게 브라질리아 건설을 이행하였다.
1956년 신수도 건설위원회가 설치되고 위원장에는 세계적인 건축사 오스카 니어마이어가 취임한다. 신수도 건설은 도시 설계사인 루시우 코스타의 진두지휘로 브라질 내부 한가운데 고이아스주의 브라질 고원에서 브라질리아는 건설된다.
루시우 코스타는 처음으로 지금의 브라질리아 중심에 십자가를 긋고 길을 만들고 이 십자로를 중심으로 비행기 형태의 도시 계획을 발전시킨다.
그는 비행기 조종실 부근에 국회의사당과 대통령궁을 배치하고 몸통 축과 날개축으로 나누어서 도시를 건축했다.
그리고 오스카 니어마이어는 기이한 콘크리트 건물로 도시를 채워나갔다.
브라질리아는 높은 브라질 고원에 있는 맨땅이었다. 브라질리아는 상파울루에서, 바이아에서, 아마존에서, 그리고 당시의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적당한 거리에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은 맨땅이라서 아무런 제약 없고 다양한 이해관계도 없는 그래서 과거가 발목을 잡지 않고 미래로 향할 수 있는 장소였다.
새로운 브라질은 과거 항구까지만 도달할 수 있는 배가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는 미래의 비행기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그렇게 발명된 도시는
브라질리아란 이름이 되었다.
브라질 고원의 맨땅에 첫 십자가를 그린 이후, 그들은 새로운 심장, 브라질리아를 가지게 되었다. 대통령궁도, 국회의사당도, 정부청사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모두 브라질리아로 이전했다. 모든 입법, 행정, 사법기관의 중심이 브라질리아에 있는 것이다.
브라질리아는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는데 선정된 도시 중에 가장 최근에 생긴 도시였다. 이 브라질의 수도는 불과 4년 만에 만들어졌고 그것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브라질리아는 여전히 미래에나 있을 법한 풍모를 가지고 있다. 50년대 사용된 차가운 콘크리트의 건물들은 너무나 기묘하다.
브라질리아의 주소는 무척 낯선 데 ‘W3 SCN 210’ 같은 식의 주소는 정말 공상 과학의 미래도시를 느낌을 주는 것에 한몫한다. 이것은 내가 장난으로 쓴 것이 아니라 정말 주소가 이렇다.
모든 것이 인공이다. 주위의 거대한 호수 역시 인공이다. 그 호수는 너무나 거대해서 이 많은 물을 다 어디서 가져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풍모의 도시는 전 세계에 오직 브라질리아가 유일하다.
이런 도시를 짧은 시간에 만들기 위해서 브라질 전역에서 이 건설현장으로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특히 북동부 지역의 세땅에서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일자리를 찾아서 브라질리아의 건설현장에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외부에서 이곳으로 온 사람들을 깐당구라고 불렀다.
브라질이 역사가 모두 그렇듯 브라질리아 역시 모두 외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이런 깐당구들은 브라질리아가 건설이 끝나고 나서 브라질리아 외부로 반강제 이주를 당했다. 브라질리아의 미관과 도시 관리를 위한다는 이유였다. 브라질리아에 거주하고 일해야 하는 브라질 엘리트들과 함께 공존하는 것은 여전히 힘든 것이었나 보다.
원래 브라질리아는 40만 명 정도의 도시를 계획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브라질리아의 인구는 250만 정도이니 여러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처음 브라질리아는 신호등이 없이 설계되었다. 지금은 신호등이 있지만, 여전히 그 수는 적다. 그만큼 브라질리아에서는 차가 없이는 살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해서 설계된 도시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또한, 브라질 사람들은 브라질리아를 브라질 영혼이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도시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이 도시에, 행정, 사법, 입법을 위한 이 도시에 브라질 문화적 전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것은 20세기 발명된 콘크리트 풍의 신기루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브라질리아를 가장 비난하는 말은 브라질의 가장 큰 도둑놈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입법, 행정, 사법기관이 모여 있고 가장 많은 수의 정치인들과 함께 언제나 따라다니는 부정부패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이러한 놀림이나 비하에도 브라질리아는 브라질과 브라질 미래의 자부심이다. 또한, 거대한 땅덩어리의 브라질에서 내부 중앙의 수도는 효과적인 국토개발을 가져왔다.
세계의 많은 계획도시나 신도시에게 브라질리아가 준 영감은 엄청나다. 우리나라에서도 행정도시 건설과 수도 이전 부분을 이야기했을 때 역시 브라질과 브라질리아의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왔었다.
사람들은 브라질을 ‘미래에만 머물러 있는 나라’라고 이야기를 한다. 언제나 미래 지향적이고 발전적이지만 항상 한계적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을 조롱하는 이야기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멋진 비행기 모양의 브라질리아.
이 비행기는 과연 이륙하는 것일까 아니면 착륙하는 것일까? 아니면 날아가고 있는 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