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가 나의 입 속으로 들어가 얼마만큼 즐거움을 줄지는 나이프와 포크를 잡고 첫 칼질을 할 때부터 느낄 수 있다. 튀김이 잘 튀겨져서 얼마나 바삭할는지도 돈가스가 썰리며 전해지는 손의 촉감으로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굳이 미각을 사용하지 않아도 그동안의 경험으로 인해 그 맛을 알 수 있고 음식만 떠올려도 입안에 군침이 돌기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하나보다.
식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식욕이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욕구여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식욕이 경험에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맛있게 먹어본 음식에 대해 몸이 강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그러했다. 식욕은 심리적 영향과 학습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처럼 외국에 살 때는 가끔 '모르는 맛'이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그 맛을 외국에서는 느끼기 어려우니까 그냥 궁금증으로 다음을 기약하면서 넘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의 살아있는 입맛은 많은 음식이 유혹의 대상이다.
며칠 전에도 난 그 유혹에 빠져서 아이들을 데리고 택시를 탔다.
오늘의 메뉴는 왕돈가스!!!
싱가포르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그곳에 가면 한국에서 먹어 본 왕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일 년에 몇 번씩은 꼭 찾는 곳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식 돈가스였지만 이곳에 살면서는 특별한 외식이 되었다. '한국식'이라고 앞에 단어가 붙으면 정말 한국에서 먹는 맛과 비슷한지를 꼭 확인하게 된다. 그 맛과 정서를 느끼고 싶어서 일까?
처음 이 곳을 왔었을 때 우리 식구는 테이블에 앉아 돈가스를 먹으면서 서로에게 확인을 했었다.
"이거 한국에서 먹는 거랑 거의 비슷하지?"
"우리가 자주 갔던 돈가스 클럽이랑 90프로 이상 똑같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서로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이곳에서 먹었던 왕돈가스는 맛과 그리움이 뒤범벅되었었다.
음식...사람... 고향...추억에 대한 그리움
쇼핑몰에 도착하여 식당 쪽으로 향했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졌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눈길은 식당 앞으로 갔다.
가면 늘 줄을 서야 하는 이 곳.
그날도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줄을 향해 가면서 대략 앞에 몇 테이블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기다리는 줄을 서 본 사람은 안다. 그 순간만은 음식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는 것을. 그때는 이 세상에 세 부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 음식을 먹고 나온 사람과 음식을 먹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
드디어 테이블을 안내받았다. 이제 주문하면 몇십 분 내로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면 우리가 주문한 것은 언제쯤 나올지 기다리면서 우리보다 바로 앞에 들어간 사람들이 주문한 메뉴를 받으면 그다음에는 우리 음식이 나올 건가 하는 기대감에 식욕이 고조된다.
주방에서의 분주한 움직임 뒤에 큰 접시를 든 종업원이 우리 테이블 쪽으로 오면 우리의 메뉴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아이들과 나의 표정은 더 밝아진다.
외식을 자주 하는데도 왜 매번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이리도 좋을까?
그동안 못 먹은 것도 아닌데 매끼가 이리 반가울 수가 있다니...
이 왕돈가스가 주는 매력은 첫 번째는 양이다. 그야말로 왕이라서 커다란 접시를 가득 채우는 양에 먼저 만족한다. 맛있는 음식을 배가 고플 때 먹으면 음식의 양이 모자랄까 봐 긴가민가 할 때가 있는데 왕돈가스는 넉넉한 양에 안심이 되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게 하니 그것이 매력이다.
두 번째는 돈가스 위에 부어져서 나오는 소스다. 단맛과 새콤한 맛의 중간 정도의 비율로 튀김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며 균형을 잘 맞춰주는 소스가 매력이다.
세 번째는 변하지 않는 구성이다. 돈가스 한쪽에 나오는 단무지와 양배추 샐러드 위에 살구빛 소스, 캔 옥수수와 콩 그리고 밥. 그게 매력이다.
바사삭 거리며 씹히는 맛을 느낄 때쯤 바로 치고 들어오는 튀김옷 안에 부드러운 고기의 맛, 그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소스가 버무려진 맛! 이 맛이 왕돈가스의 맛이다. 고급스럽진 않지만 멈출 수 없는 손을 부르는 맛!
얼마 전 '유퀴즈'란 프로그램에서 과학자가 나와서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것과 찍어 먹는 것 중 부어 먹는 것이 과학적으로 맞다고 얘기를 한 것을 흥미 있게 본 적이 있다. 한국식 왕돈가스는 소스가 부어져 나와는 부먹인데 너무 맛있다. 갓 나오면 튀김의 바삭한 맛도 느낄 수 있고 3분의 1 정도 먹으면 튀김의 바삭함은 없지만 소스가 밴 돈가스의 맛을 즐길 수 있으니 좋다. 나는 부먹이든 찍먹이든 맛있으면 아무래도 좋다.
맛있는 음식은 과학일 수도, 기술일 수도, 손 맛일 수도, 요리하는 사람의 노하우나 감일 수도 있지만 맛있는 튀김은 과학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기름의 온도, 튀기는 시간, 육즙을 튀김옷 안에 머무르게 하는 반죽의 정도... 충분히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비가 올 때는 튀겨지는 소리가 빗소리와 같아서 좋고, 맑은 날에는 화창한 날씨처럼 바삭거리는 느낌이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