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윗 홈

개미의 집이 불러온 집의 의미

by 수리스타 KM


‘이건 또 뭐지? 곤충 알 같기도 한데 손가락으로 누르면 진흙 가루 부서지듯 부서지는 이것의 정체는 뭘까?’

나는 며칠을 궁금해했다.


이사를 오고 난 이후라 하루 이틀 청소하면 없어지려나 생각하면서 그 정체모를 가루들을 매일매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항상 붙박이 책장 주위에만 떨어져 있던 정체불명의 가루들. 그 가루의 양이 감당이 되질 않았다. 그 양은 하루에 수차례 청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눈 내리는데 빗질하는 격이랄까? 어찌 그렇게 잘 쌓여 가는지 정말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지 너무 궁금했다.

관찰이 일주일이 지날 때쯤에도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사진을 찍어 집주인에게 보냈고, 집주인도 정확히는 모르겠다며 패스트 전문업체를 연결해주었다.

며칠 후 패스트 컨트롤러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나서야 나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이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나무 가루였다. 나무가루가 어떻게? 라고 나는 의문을 가졌지만 나의 의문이 이내 해결됐다. 나무에 사는 개미가 나무를 갈아서 톱밥처럼 되고, 그것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그들은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나무로 가구를 만들 때 나무를 충분히 말려야 하고, 그 안에 사는 벌레들을 없애기 위해 여러 차례 살균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안에 사는 개미나 곤충들이 그대로 살고 번식하면서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설명을 하였다.

우리는 이사를 오면서 자연스럽게 개미와의 동거를 시작한 셈이었다.

패스트 컨트롤러는 붙박이장에 아주 작은 구멍을 내고 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약을 뿌리고 가면 이틀 정도는 괜찮다가 다시 책장의 장소만 바꿔가면서 똑같은 가루들을 쏟아냈다. 그럴 때마다 다시 그들이 와서 약을 뿌렸고, 올 때마다 더 많은 양을 뿌렸다. 그 냄새가 너무 독해 그 방을 며칠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개미들은 쉽게 죽지 않았다.

개미들은 그들의 집인 그 공간은 절대 빼 길수 없다는 듯 그 넓은 공간에 약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계속 가루를 쏟아냈다.

6개월 정도 약을 뿌리고 지켜보는 일들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아이가 겁에 질려 자는 나를 깨웠다. 방에 가보니 성충이 된 수십 마리의 개미들이 날아다니면서 천장과 벽에 붙어있었다. 개미들이지만 그 행동들은 공격적이었다. 날면서 사람을 향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마치 너희가 그동안 나의 집을 공격했으니 이젠 우리가 너희를 공격하겠다는 느낌이었다. 징그러운 개미가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이 날개 개미는 좀 애벌레 비슷한 형태로 생겼다. 남편과 나는 스프레이 약을 뿌리고 책장을 스카치테이프로 철갑 하였다. 그 개미들이 다른 장으로 옮겨가면 집안에 붙박이로 되어있는 모든 가구에 번식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밤새도록 그 개미들을 모두 잡았다.

이게 자다가 웬일이란 말인가!!!

새벽 3시에 개미 잡기 소동이 벌어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남편과 나와 아이는 수십 마리의 개미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장 안에 있는 개미들을 밖으로 못 나오게 하고 장 밖으로 나온 개미들은 모두 잡아야 된다는…. 날이 새고 새벽이 됐다. 그 후 패스트 컨트롤러가 다시 왔고 그들은 최후의 방법을 얘기했고 그것은 결국 철거였다.

개미가 장밖으로 나와 벽에 붙어있는 모습


내 생각보다 개미는 생명력이 강했으며 책장의 모든 곳이 자신의 집이었기 때문에 약을 피해 숨을 곳이 많았다. 더군다나 그들은 너무너무 성실했다. 나무를 가는 일을 한 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개미와 베짱이란 이야기를 통해 어렸을 때부터 개미는 성실한 곤충이라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목격하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그 장을 철거했고, 그 안에 살고 있던 개미들의 보금자리 또한 자연스럽게 철거되었다.

나는 속 시원하게 그들과의 동거를 끝냈다.

그 후

우리 집은 온전한 우리 식구만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개미가 그 넓은 공간에 영토를 넓히며 공간에 집착하며 사는 모습이 현대인이 집에 대해 가지는 생각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개미가 말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너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집의 의미는 단순히 거주만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집은 나의 기억에 배경이 되어주는 곳이다.

집이 곧 고향이 되는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 맺혀 있기도 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아련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면 나이가 들듯이 집은 사계절을 품고 있고, 그것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다르게 저장되고 있다.

해외에 살다 보니 집은 마치 고향 같은 의미로 느껴지기도 한다.


학창 시절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 가지 필수요소라고 하면서 배운 적이 있다. 그렇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집은 필수 요소이다. 우리는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소유욕이 따른다. 그래서 집 또한 소유하고 싶어지나 보다. 소유하고 나니 좀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지고 그러면서 집은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제 집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재테크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현실이 되었다.




13년 전 아파트의 가격이 급격히 오르던 때였다. 2년마다 전세로 3번의 이사 후 나와 남편은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굳이 얘기하자면 남편의 결정이었다. 고지식한 나는 대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남편은 집을 사야 된다고 해서 집값의 40프로 이상의 대출을 받았다. 그 시기에는 대출이자 이율이 높았기 때문에 우리는 금리 변동으로 인해 금리가 더 오를까 봐 고정금리 6.5프로를 받았다. 지금 기준으로는 어마하게 높은 금리이다.

시부모님은 집을 왜 무리해서 사느냐고 반대를 하셨고, 앞으로는 집값으로 시세차익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하시면서 집을 산 우리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많은 액수의 대출은 어깨의 무거운 짐이었지만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은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이사를 하는 것조차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내 집이 있는 것이 이렇게 좋구나!'

홈 스윗 홈~~~


그러나 높은 이율에 대출금은 늘 마음 한 켠의 부담이었다.

매월 30일 대출금 갚는 날은 월급날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대출금을 낸 다음 날이 마음이 제일 편했다.

그렇게 우리가 대출금을 갚는 동안 집값은 계속 올랐었다. 우리가 산 금액보다 몇 천만 원 더 올랐고 그것은 집값의 20프로 정도가 오른 셈이었다.


최고점을 찍은 후로 조금 꺾인 가격에서 우리 동네 집값은 몇 년간 안정세를 유지했다.

나는 그곳에서 둘째를 낳고 큰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비교적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다.

내 집안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홈 스윗 홈을 누렸다.


집값은 그 시기부터 서서히 하락하고 있었다.


아파트 뒷 뜰에서... 아이의 추억이 있는 집



집은 내가 그곳에 머무를 때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어느 집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고, 또 어느 집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힘든 기억으로 남아버리곤 한다.


2013년 남편이 싱가포르로 직장을 옮길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집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다. 부동산에 들려 집값을 문의했더니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동산에 문의했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4년 초 우리는 싱가포르로 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나니 내놓은 집이 나가지 않을까 봐 불안해서 매물 중 최저의 가격으로 금액을 조정했다.

내가 아파트를 구입한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낮췄다.

큰 손해였다. 대출이자까지 감안하면 더 큰 손해였지만 싱가포르로 거주지를 옮기면 집 관리가 안되니 팔라는 어르신들의 말씀도 있었고, 돈도 필요했다.

그 해 4월 어느 주말부터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그 전에는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아예 없었는데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오기 시작한 2주 만에 집을 구입하기 원한다는 계약자가 나타났다.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그들은 집을 본 후 그날 바로 계약을 하고 대구로 내려가겠다면서 내놓은 가격에서 500만 원만 더 깎아달라고 했고, 우리는 부동산의 말대로 그렇게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았다.

그리고 우리는 해외이사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몇 천만 원 단위로 오르면서 매물이 없는 현상을 거듭하고, 그러면서 또 오르고, 나오면 보지도 않고 산다는 말도 듣고…

2015년 무렵부터 부동산은 꿈틀대고 있었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믿기지도 않는 가격과 부동산에서 하는 말들을 놀라움을 실제 체감했어야 했다.

계약금부터 무조건 걸라고 한 경우도 있고, 매물을 보여 줄 수 없으니 계약하고 나서 보라고 했으며, 계약하러 간 당일날 매도인이 8천만 원을 더 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계약 못하고 온 경우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경우였지만 우리로는 어쩔 수 없었다. 방학중 한국에 간 것이라 2주 정도만 집을 알아보고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집의 재구매는 너무 어려운 현실이 되었었다.


5년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기에 기동성이 없는 나는 팔고 나서 오르는 집값을 바라만 보는 신세가 되었었다.

매물이 나와도 예전의 가격을 알기에 너무 많이 오른 거에 상투 잡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있었고, 이런저런 이유가 발목을 잡았었다.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갈 때면 집이 없는 마음은 불안함을 너머 서글프게도 만들었다.

인천공항서 친정집까지 가는 길에 수천 개의 아파트들. 그 어디에도 없는 나의 집.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밤에 한강을 비추는 그 수많은 아파트 불빛 안에 내 불빛 하나 없는 공허함은 생각보다 컸다.

그 아파트를 팔지 않았더라면…. 후회와 자책은 옛 집에 대한 그리움을 더 키웠다. 예전에 집에서 홈스윗홈을 느꼈던 그때로 돌리고 싶었다.

어느덧 내가 판 아파트는 내가 판 가격의 2배가 되었다.


싱가포르로 돌아와 있으면 마음이 콩밭에 있는 사람처럼 걱정이 되었다. 이제 싱가포르에 거주한 기간보다 더 짧게 싱가포르에 있을 텐데 그러고 나서 한국 들어가면 어디에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었다.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다가 그 이듬해 나는 한국에 들어가면서 몇 년 후 우리가 살 집 하나는 있어야 된다는 강한 생각에 아파트를 무조건 계약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단호하게 얘기해 이것을 실행해 옮겼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살던 아파트를 팔고 나서 6년 후에야 다시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같은 아파트는 아니었으나 6년 전 시세 대비 2배도 넘는 금액을 주고 구입했다.

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였나


집은 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을 담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나의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보상의 시간이 나에게도 오리라 기대해본다.


더 꿀 떨어지는 홈 스윗 홈~~~의 시간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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