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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을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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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Mar 16. 2018

을의 연애 3

#을은 갑의 잘못을 애써 무시한다.


복희는 누구에게도 이런 사정을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개차반인 인간을 만난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기에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아주 가까운 친구에게까지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많았다. 복희는 그와 헤어질 마음이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버리면 친구들은 계속해서 만나는 것을 말릴 게 뻔하니까. 친구들의 입에서 주환이와 헤어지라는 말이 나오면 복희 자신이 더 비참해질 테니까. 마지막으로 언젠가는 그가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갖고 있었으니까.


미련한 그녀는 이런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고, 그러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그녀는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외로움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 남자가 이상하고 쓰레기 짓을 하는 게 분명한데, 복희 혼자만 모르고 있었다. 아니 본인이 그런 대우를 받을 만 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복희와 주환이 길을 걷고 있었다. 복희는 갑자기 급하다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주환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복희는 그 곳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술집 손님들이 사용했고, 남녀공용이었고, 너무나도 더러웠으니까. 그 술집을 가는 날이어도 웬만하면 그 화장실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 곳을 복희가 싫어한다는 것쯤은 그 쓰레기도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쓰레기는 멀리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와 본인이 귀찮게 더 걷기 싫다는 이유로 복희에게 그 화장실을 쓰라고 했다. 복희는 조금만 더 걸어서 지하철 역 안에 있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주환은 한숨을 쉬며 알겠다고 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갑자기 그는 본인의 말을 안 듣는다며, 오늘은 이만 집에 돌아가자고 말했다. 복희는 그 새끼의 머리털을 다 뽑고 싶다는 표정을 애써 숨겼다. 그렇게 감정적인 복희가 침착한 척을 하며, 왜 갑자기 집에 가자고 하는 거냐며 물어봤다. 그는 복희에게 자신의 말을 안 듣는 여자랑은 시간을 보내기 싫다는 말 같지도 않는 소리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복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게 진짜 자신이 잘못한 일인지, 이게 둘이서 싸우고 데이트가 중단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 의아해 했다. 복희도 주환이 좋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했다. 이 상황이 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녀는 검열에 나섰다. 동네 친구를 불러냈다. 그러곤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복희는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며, 애써 남자친구가 유리한 쪽으로 포장했다. 이야기를 들은 뒤, 그 친구는 바로 복희의 남자친구가 이상하다며, 어떻게 여자친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복희는 자기가 평소에 남자친구 말을 너무 듣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터진 것 같다고 변명을 해댔다. 친구는 복희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복희는 애써 무시했다.


집으로 돌아온 복희는 한동안 생각했다. 사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자기가 봐도 주환이이상한 거니까. 자기도 알고 있으면서 애써 무시하고 있는 거니까. 자기가 애써 남자친구의 행동을 포장하고,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이런 미련한 짓을 계속했다.


이런 비슷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복희는 일찍 일어나 약속 시간에 맞춰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골라 입었다. 복희가 주환은 새끼를 만나려고 연락을 하면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약속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 나중에 연락이 닿으면, 피곤해서 잤다는 말 한마디와 성의 없는 사과 한마디로 넘겼다.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아주 조금만 감정적으로 복희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그는 피곤해 죽겠는데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이때도 그녀는 이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곤한 그를 닦달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자신을 자책할 뿐이었다.


점점 강도는 심해졌다. 반복될수록 복희를 이해하지 않는 주환을 원망했다. 그러면서도 복희는 자신이 이상해서 남자친구가 변한 것이라고 세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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