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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을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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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Mar 09. 2018

을의 연애 2

반년 만에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주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빠 생활을 그만뒀다. 복희에게 예쁜 걸 많이 사주고 싶다는 핑계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엔 그녀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상처를 준 것 같다는 말로 끝을 냈다. 하지만 복희의 입장에서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단지 본인보다 잘 생기고, 키가 큰 애들만 불려 나가다 보니 그는 돈 벌 기회가 없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복희는 헤어질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주환이 복희를 위해 그만뒀다는 말 한마디에 그래도 완전 쓰레기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합리화시켰다. 그저 헤어지기 싫어서 그녀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전역 후 첫 여행을 떠났다. 그가 군인이었을 때 갔던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겨우 반년 만에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전역하기 6개월 전, 그들은 사귄 뒤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버스에서도, 잠깐 들르는 휴게소에서도, 주환의 관심은 오로지 복희였다. 그녀가 조금만 표정이 굳거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으면, 곰신인 그녀의 눈치를 살폈고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그는 복희와 모든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복희 역시 그랬다. 그녀에겐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고, 같이 떠난 여행이 꿈같이 느껴졌다.


그 둘이 연인관계가 된 이후,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에서는 그어디로 놀러 갈지 골랐고, 숙소를 예약했다. 가는 법도 알아봤고, 복희에게 너는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믿음을 주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식에게 의지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복희가 아무 생각 없이 한 장난에 주환은 귀여워 미치겠다는 듯이 복희를 쳐다보며 어떻게 그런 장난을 칠 수 있냐고 말하며 사랑스러워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그에게 복희는 본인이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애써 좋은 감정을 숨기며 “괜히 오버하지 말라”는 소리를 했다.


그 자식은 복희의 주크박스 같았다. 도착할 때까지, 그녀에게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러줬다. 그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본인을 이렇게까지 사랑해 줄 남자는 이 사람뿐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의 노래는 마치 행복을 전해주는 주문이었다. 그 둘은 완전히 서로의 시간을 공유했다. 세상에 둘만 남겨진다 하더라도 전혀 당황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온전히 둘의 시간을 누릴 수 있어 차라리 더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6개월 후엔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마치 그들의 첫 여행이 꿈이거나, 가상이거나, 누군가의 상상이었다고 말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복희는 애초에 그런 일은 없었다고 믿고 싶어 했다. 고작 반년 만에 주환의 눈빛에선 달달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엔 복희 혼자 여행을 가자고 재촉했고, 그는 여행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복희도 주환이 여행을 내켜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며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달랐다. 복희 혼자 여행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펜션이 있으면 사진을 바보처럼 하나하나 캡처해 남자 친구에게 보냈다. 링크를 보내면 클릭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주환은 “응, 다 좋네”라는 무미건조한 대답만 할 뿐이었다. 복희는 혼자 다 찾아보고 결정하는 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따지지도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다 풀고 돌아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버스를 타자마자 그의 눈은 핸드폰으로 향해 있었다. 마치 복희의 목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복희는 상상 속에서 주환의 핸드폰을 집어던져버렸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있을 뿐이었다. 복희의 예상과는 달리 여행지에 도착해서까지 그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물론 핸드폰을 쳐다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스킨십할 때나 그가 심심하지 않을 때만 핸드폰을 내려놨다.


분명 같이 있는데, 복희는 본인이 혼자 남겨져 있다고 느꼈다. 차라리 혼자여서 외로움을 느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미련하기 짝이 없는 그녀는 외롭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괜히 말을 잘못 꺼냈다가는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을 테니. 싸움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녀는 그의 입에서 헤어지면 되지 않냐는 대답이 나올 걸 뻔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복희는 서운한 게 있어도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남자 친구의 감정이 식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지만 본인이 을이라는 점은 외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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