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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을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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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Feb 25. 2018

을의 연애

을은 백 번을 줘도 단 한 번을 못 받아요



복희는 연애 시작부터 곰신이었다. 그녀는 곰신이 여자에게 손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차라리 더 애틋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날마다 주환이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봉투에 1번, 2번 숫자를 매겼다. 백 번째의 편지를 보낼 때까지 복희는 단 한 통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 처음엔 “조금만 기다리면 오겠지”하던 마음이 편지봉투에 100이라는 숫자를 쓰던 날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백 한 번째의 편지는 편지지에 쓰지 않았다.  그녀는 화가 났는지 A4 용지에 그동안과는 다른 화가 난 글씨체로 마구마구 휘갈겨 보냈다. 그 편지를 받은 주환은 복희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너무 바빴었다며 바로 답장을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바보 같은 복희는 화가 눈 녹듯이 풀려버렸다. 


아주 나중이 되어서야 복희는 주환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받기만 할 줄 아는 사람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이때는 정말 몰랐다. 아니, 어쩌면 주환이를 너무 좋아하는 마음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정말 그가 바빠서 답장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1. 정말 나중에, 전역을 하고 나서 복희는 주기만 하고 그녀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을 때. 가령, 그녀는 그의 생일날 선물을 사고, 편지도 쓰고 기쁘게 해 주려고 좋은 곳을 예약해 놓으면 정작 그녀의 생일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축하한다는 말도, 편지도, 선물도) 없었다거나,

2. 밸런타인데이에 복희 직접 만든 초콜릿을 손도 대지 않고 책상 위에 올려놔서 몇 달 뒤에 그녀의 손으로 다 상한 그 초콜릿을 버렸다거나,

3. 주환이 복희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그녀는 자신의 일도 다 제쳐두고 달려 나갔다면, 그녀가 정말 너무나도 외로워서 미쳐버릴 때 그는 롤에 빠져있어서 연락이 두절됐다거나,

4. 둘의 기념일, 1년, 2년, 3년, 밸런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등 복희 챙겼다거나.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점점 복희는 깨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에게 챙김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차라리 복희에게 이 일만 일어났었다면 다행이었다. 남자가 군대를 전역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자가 을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주환이 전역하자마자 아주 자연스럽게 복희는 을이 됐다. 주환은 호빠에 출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 시점은, 전역을 한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쯤이었다. 그녀를 눈치를 보지도, 감정을 살피지도 않았다. 그저 그 더러운 곳에서 일하겠다는 말을 당당하게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복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주환의 이야기를 초점 없는 눈동자를 한 채로 듣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 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 상황에 그녀는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복희는 아주 소심하게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표현했지만, 그녀의 예상대로 주환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첫 출근 날, 그녀는 그를 만났다. 카페에 앉아 핸드폰을 들고 검색창에 호빠를 입력했다. 호빠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녀의 표정은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그 모습을 앞에서 보던 주환은 그녀의 핸드폰을 뺏어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복희는 내심 주환이 “네가 그렇게 걱정되면 이 일을 하지 않겠다”거나, “그렇게 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다니는 곳은 이 정도는 아니다.”라고  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주환은 자 앞에서 ‘이딴 기사’를 읽는 그녀에게 의도를 물으며 화를 냈다. 대화는 점점 불가능해졌고 싸움으로 번다. 출근을 한다 나가는 주환의 팔을 붙잡고, 복희는 울며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동안 예쁜 말만 할 줄 알았던 주환의 입에서 상스러운 욕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이었다. 그 길로 그는 출근을 했고, 그녀는 멍한 상태로 집으로 갔다. 집으로 도착한 복희는 한숨을 내쉬며 앉아있었다. 때 주환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미안해. 정말 너한테 좋은  사주고 싶어서 돈 버는 거야. 다른 의도는 없


문자를 읽은 그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헤어질 수 없었다. 헤어질 수 없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그녀는 거짓말을 읽고도 심일 것이라고 합리화다. 전역할 때까지 다 기다렸는데 헤어지는 건 너무 손해만 보고 끝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복희는 그때 헤어졌어야 했다. 이후로 그녀는 더 큰 손해만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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