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을의 연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희 Sep 30. 2017

1 prologue. 을의 연애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은 다 이유가 있다.

“넌 발가락까지 예쁘네”

지금 내가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어이없다 생각하고 넘겼을 말이다. 4년 전 이 말을 들었다. 그땐, 내 몸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영화 Yes or No에서 사랑은 ‘몸 안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대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그가 건넨 말 한마디에 그 느낌을 알아버렸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사랑이었는지 집착이었는지 뭔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날 이렇게 좋아해 줄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연애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엔, 세상에서 날 이렇게 괴롭게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우린 친구였다. 왜 저러고 사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그저 그런 남자 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커져버렸다. 그렇게 여느 커플과 다를 것 없는 연애를 시작했다.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같이 붙어있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곰신으로 작했다는 것. 그 아이는 군대에 있었고, 난 기다렸다. 그때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군대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편지를 썼고, 기념일도 챙겼다. 주변 사람들이 군인은 기다리는 거 아니라고 했지만 난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는다는데, 내게 그 순간은 전역 이후에 찾아왔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는 진리였고, 나는 뭔가에 씌어 지금껏 듣지 못했던 것라는 걸 깨달았다. 그 남자애는 제대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알아본 일자리는 ‘호빠’. 기가 찼다. '뭐 하는 짓이지? 헤어지자는 말 못 하니까 지금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헤어지면 그만이었지만 난 멍청했다. 그런 곳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울고 불고 매달렸다. 이제껏 예쁜 말만 했던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년아. 너 때문에 지각하게 생겼잖아. 아, 진짜! 울고불고 지랄이네 좀 꺼져!!” 그의 눈엔 울고 있는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각할까 걱정하는 모습뿐.


충격이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난 너랑 즐겁게 보낼 시간만 생각하면서 기다렸는데 어째서 시작이 이래?’라는 생각 하나뿐. 진짜 미친년이었다. 그때 헤어졌어야 했지만


“욕한 거 미안해. 난 너한테 좋은 거 사주고 싶어. 그래서 빨리 돈 벌 수 있는 걸 찾은 거야.”

이 말에 헤어지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사과를 받지 못했더라도 헤어지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걜 그렇게 좋아해서 못 헤어진 건지. 나름 긴 기다림의 끝이 다른 사람들의 예상처럼 되어버려 억울해서 못 헤어진 건지 가늠이 안 간다. 이런 미래를 나만 빼고 다 알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호빠에서 2개월 동안 일했다. 난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 친한 친구 단 한 명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군인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내가 기다리는 이 남자애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기다렸는데 '남들이 많이 하는 말엔 다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 마음을 다 짓밟아놓고는 다른 애들에 밀려 초이스를 받지 못해 큰돈을 벌지도 못했다. 그곳에서 일할 땐 커플링을 빼더니, 그만둘 땐 내 핑계를 두고 그만뒀다.


그 때라도 헤어졌다면, 난 아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을 겪고 바로 헤어졌냐는 질문을 한다면, 아니! 나는 4년이나 더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