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을의 연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희 Apr 27. 2018

을의 연애 7

#데이트 폭력의 시작

처음이었다. 주환 복희에게 폭력을 행사한 건. 그가 복희 가슴에 대못을 박고 호빠에 출근할 때쯤의 일이다. 별 일도 아니었다. 그 날은 그녀와 주환 그리고 두 사람의 중학교 동창이었던 친구와 셋이 술을 마셨다. 복희는 그 친구에게 주환이 호빠를 다닌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소연을 해댔다.


“야, 재정아. 들어봐? 아니 내가 군대를 기다렸잖아. 그래 내가 물론 다 기다린 건 아니지. 그래도 나 8개월 동안 기다렸잖아. 근데 얘가 지금 이렇게 호빠 다니는 게 맞는 거야? 아니 진짜 최주환 얘는 생각이 없다니까? 다니고 싶으면 자기 친구들한테는 말을 하질 말든가, 왜 친구들한테까지 다 말을 해? 그럼 나는 뭐가 돼? 그렇지 않냐? 얘 친구들은 날 뭘로 생각하겠냐고. 호빠 다니는데도 계속 사귀는 미친년 아니냐? 나는?”

“아 복희야. 근데 나는 잘 모르겠어. 너희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 같아.”

“에휴. 너도 최주환이랑 똑같네. 그래 말을 말자.”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도 복희에겐 위로가 되질 않았다. 그녀는 창피해서 자기 친구들한테 주환이 그런 곳을 다닌다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어, 그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말이라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복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주환과 친구를 쳐다보던 복희의 눈은 테이블 바닥으로 향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가자.”

“그래 가자. 재정아 집에 조심히 들어가.”

“응. 너네도 잘 들어가.”


주환은 복희를 데려다 주겠다며 그녀의 집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바로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주환에게 집 주변 골목길에 있는 벤치에 조금만 앉아 있다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복희는 입을 열자마자 주환이 싫다고 말할 줄 알고 있었다. 매번 그랬다. 그녀는 거절당할 줄 알면서도 물어보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왜? 왜 안 되는데? 조금 더 같이 있자.”

“아니 나 내일 출근하잖아.”

“지금 밤 12신데?”

“그니까 늦었다고.”

“너 지금 집에 가겠다는 이유가 정말 출근 때문이야?”

“응.”

“네가 출근을 아침 9시에 해? 네가 직장인이야? 그럼 이해를 하겠는데 너 출근 오후 6시잖아.”

“제발 좀. 나 집에 가서 빨리 자고 출근해야지.”

“아니, 너 지금 이 시간에 집에 간다 해도 너 안 잘 거 다 알아. 그리고 출근이 오후 6시면서 대체 왜 출근 타령이야? 이해를 못 하겠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복희도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계속해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아 진짜 싫어. 내가 그 호빠보다 못해? 응? 내가 호빠보다 못한 년이야? 너는 왜 그렇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내가 무슨 하루 종일 같이 있자고 했어? 나는 네가 부르면 항상 바로 달려 나가고 5분대기조처럼 네 스케쥴에 다 맞추는데, 넌 왜 항상 그렇게 이기적이야? 너는 피곤하면 그냥 가서 자야 되고, 손해 조금도 보는 게 싫지? 넌?”

“아. 김복희. 진짜 짜증난다. 나 집에 갈게.”


그렇게 그는 자기를 잡고 있는 복희 손을 뿌리치곤 가버렸다. 복희는 가만히 쳐다보다 화가 난 표정으로 달려가 붙잡았다.


“넌 진짜 성격에 문제 있다. 기분 나쁘면 그냥 집에 가는 게 특기세요?”

“아, 진짜 놔라. 잡지 말라고 했어. 아 짜증나게 하네.”

“야, 말을 끝내고 가든지. 너 솔직히 출근은 핑계잖아. 그냥 나랑 있는 게 시간이 아깝다고, 재미없다고 말해.”

“그런 거 아니라고.”

“아니면? 아니면 대체 뭔데? 아니면 너 친구들 만날 때는 밤까지 새가면서 술 마시고 놀면서 왜 대체 나는 안 되는데? 왜? 나랑은 같이 있는 시간조차 아까워?”

“아, 진짜 제발 그만해. 너 술 너무 많이 취했다.”

“아니, 나 술 안 취했는데. 나 술 취해서 이러는 거 아닌데? 아니, 네가 직장인이라서 출근이 아침 9시면 이해를 하겠다니까? 근데 너 오후 6시잖아. 지금 잔다고 해도 오래 잘 수 있고 일어나서도 엄청 오래 쉬다가 갈 수 있는 시간 아니야?”

“아, 씨발!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잡지 마. 나 갈 거야.”


주환의 대답에 복희는 두 손을 귀로 가져다 댔다. 그러곤 눈을 흘겼다. 그녀는 자기의 가슴을 퍽퍽 쳐댔다. 조용하던 골목길은 그녀의 울분으로 가득 찼다.


“나도 너랑 말 안 통해. 핑계를 대지 말라고 하는데 왜 자꾸 출근 핑계만 대는 건데? 솔직하게 그냥 말을 하라고! 나랑 있는 게 시간 아깝다고, 집 가서 게임 해야 되는데 나랑 이렇게 언쟁하는 것도 지겨워 죽겠다고 말을 해 제발. 이 나쁜 새끼야!”

“미친년.”


주환은 욕만 하고 그대로 또 가버렸다. 아까처럼 복희는 따라갔다. 그는 잡지 말라고 하다가 나중엔 신경질적으로 복희의 손을 뿌리쳤고, 나중엔 그녀의 손등의 살점이 뜯어져 피가 났다. 복희는 고통이 느껴질 만큼 자기의 머리를 잡아 뜯었다. 그러곤 엉엉 흐느껴 울었다.


“씨발. 야! 손에서 피난다고! 이 미친놈아. 너 무슨 분노조절 장애 있냐?”

“너 진짜 내가 따라오지 말라 그랬어. 진짜 한번만 더 따라와 봐. 끝이야.”

“아, 나 진짜 억울해. 내가 진짜 너한테 왜 이딴 취급을 당해야 되는데? 나 진짜 억울해 진짜 죽어버리고 싶다.”

“그니까 미친년아 내가 따라오지 말랬잖아. 말을 들으면 될 것이지, 지랄이야.”

“아니? 나는 말 제대로 할 때까지 계속 너 괴롭힐 거야. 그니까 제발 출근 핑계대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그냥! 왜 매일 싸울 때마다 되도 않는 핑계대면서 사람 피를 말려? 제발 솔직해지라고!”


주환은 자기 네 번째 손가락을 만졌다. 그 손엔 복희가 반지공방에서 만들어줬던 커플링이 끼워져 있었다. 그러더니 빼서 던져버렸다. 그걸 보고 있던 복희는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야! 너 진짜 미쳤어? 뭐하는 거야?”

“내가 분명 따라오지 말랬지? 미친년. 너랑은 끝이야.”


그는 그렇게 또 가버렸다. 이번에 복희는 따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은 차분해진 얼굴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곤 핸드폰을 꺼내 손전등을 켰다. 어두운 길을 비추며 반지를 찾기 시작했다. 없어진 반지를 찾지 못하면 그녀는 자기의 인생에서 영영 주환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는지 ‘찾아야 돼. 진짜 반지 꼭 찾아야 돼’라고 중얼거렸다.  

“하. 다행이다.”


찾은 반지를 자기 엄지손가락에 끼우곤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최주환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단 한 통도 받지 않았다.


그 다음날이 돼서도 주환은 복희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침,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자기 손을 보곤 ‘지금 내가 하는 게 연애가 맞을까’ 생각했다. 부재중 하나도 찍혀 있지 않은 핸드폰을 보곤 ‘나 이렇게 연애해도 되는 걸까’ 생각했다. 그 생각은 억울함으로 번졌고, 먼저 연락을 하게 만들었다.


“나 손 아직도 아파.”

“미안해.”

“진짜 미안한 거 맞아?”

“응. 맞아.”

“그런데 어떻게 먼저 연락 한통 없어?

“하려고 했었지.”

“반지는 대체 왜 버린 건데?”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반지 어떡하지?”

“내가 찾았어.”

“아 진짜? 다행이다. 이따 잠깐 보자.”

“응.”


복희의 예상과는 달리 주환의 표정은 너무나도 담담했다.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눈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았다. 복희가 그의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 갑자기 그는 웃기 시작했다. 정말 미안한 마음은 하나도 없다는 듯이. 복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호빠에 입고 갈 옷을 자랑했다.


“나 정장 맞췄어.”

“왜?”

“호빠에서는 정장 입어야 돼.”

“그럼 넌 오늘 일어나서 정장 맞추러 갔다 온 거야?”

“응.”

“할 말이 없네. 너 전혀 나한테 미안한 것 같지 않아.”

“아 왜 그래~ 진짜 미안해.”


복희의 표정은 점점 더 굳기 시작했다.


“야. 주환아. 너는 어떻게 매사에 이렇게 장난식이야? 여자친구 손에서 피나게 해놓고 너는 정장 맞추러 갔다 오고. 사과도 제대로 안하고.”

“내가 뭘 사과를 제대로 안했는데? 미안하다고 아까부터 하고 있잖아. 전화로도 했었고.”

“미안한 사람이 연락은 하지도 않고 정장을 사러 가? 난 진짜 이해가 안 가.”

“이것 봐. 너는 싸움을 더 크게 만든다니까? 제발 그만 좀 해. 사과하면 받아주고 너도 그만 해.”

복희에겐 그 말이 ‘너 계속 따지면 진짜 헤어질 줄 알아’처럼 들렸다.

“그래. 내가 예민했나 보네. 알았어. 출근 잘하고”

“응. 나 다녀올게, 잘 가!”


그는 자기의 행동에 놀랐을 복희를 보고도, 그녀의 상처받은 표정을 보고도, 자기가 망가트린 복희의 손을 보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미안함이라는 게 어떤 감정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본 복희는 분명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뻔뻔하리만큼 당당한 그를 보고 이런 사람도 있는 건가, 하고 넘어가버렸다.


이게 시작이었다. 시작은 손톱에 뜯어져 생긴 작은 생채기였지만, 이 다음의 결과는 피멍이었고, 그 다음엔 뼈에 이상이 생겼다. 그때 복희는 몰랐다. 이게 폭력의 시작이라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을의 연애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