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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Jun 07. 2018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찌질한 위인전

사람은 누구나 찌질하다

사람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선행을 하던 연예인이 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비정상적인 발언을 하면 팬들은 크게 실망을 하거나 돌아선다. 정상적인 행동과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연예인을 보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팬들은 그를 보고 ‘회전문’이라고 표현한다.  보이는 모습이 괜찮다 하더라도 모든 모습이 완벽하진 않다. 누구나 그렇다. 그 누구엔 나도 포함된다. 몇몇 친구들은 나를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에게 나는 게을러서 매일 지각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는 않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사람일 뿐이다.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찌질한 위인전>을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생전에 위대한 업적을 세운 멋진 사람들의 이면을 인터넷에서 보곤 했었다. 1.독립운동가 김구가 아내를 팔아서라도 밥을 얻어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여성혐오적인 발언이나 2.평화주의자라고 알려진 간디가 알고 보니 소아성애자에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것. 이런 글을 읽을 때면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위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나의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이 책에는 1.김수영 2.빈센트 반 고흐 3.이중섭 4.리처드 파인만 5.허균 6.마하트마 간디 7.어니스트 헤밍웨이 8.넬슨 만델라 9.스티브 잡스가 나온다. 작가는 이들의 알려진 모습과는 다른 찌질한 모습을 폭로한다. 


나는 이 책을 순서대로 읽지 않았지만 처음에 등장하는 김수영을 제일 먼저 읽었다. 그는 아내를 때렸다. 그것도 자기 어린 자식이 보고 있는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 말이다. 사람들이 놀라서 몰려올 정도로 우산으로 아내를 두들겨 팼다. 때렸다는 글을 읽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구나’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몇 장 더 넘겼을 때는 김수영에게 감정을 이입했다. 물리적 폭력을 가한 건 맞지만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이 먼저 정신적인 폭력을 가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하지만, 김현경은 김수영의 가까운 선배인 이종구와 불륜을 저질렀다. 전쟁통에 김수영의 생사를 몰랐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김수영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 그 불륜 현장을 보고도 ‘가자’라고 했지만 김현경은 거절한다. 그렇게 1년 동안 김현경은 이종구와 함께 살다 헤어진 후 다시 김수영에게 돌아간다. 사랑해서 돌아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랑했다면 김수영이 가자고 했을 때 거절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이후로 김수영은 아내에게 주기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김수영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김수영은 아마도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던 일을 잊을 수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더군다나 본인과 친했던 선배와 그랬으니 배신감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로 괴로웠을 것이다.


그게 그렇게 괴롭고 용서가 되지 않으면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왜 받아줬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김수영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아내를 용서하기 어렵지만 그것보다 어려웠던 것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 그녀가 자기 곁에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쉽게 말해 애증. 짜증나고 밉고 용서가 안 되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관계.


스티브 잡스는 어렸을 때 자기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라고 인식한다. 그는 양부모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과는 본질적으로 분리된 존재임을 자각했으며, 성장할수록 자신이 양부모보다 똑똑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특별하다’는 인식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버림받았다’와 ‘특별하다’는 인식의 상호작용으로 양쪽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그의 전 여자친구 티나 제리나는 잡스와 헤어진 후 우연히 정신의학 서적을 읽다가 자기애성 인격장애에 알게 됐는데, 이것의 징후가 잡스의 성격, 행동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잡스가 제록스의 아이디어를 훔치고도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놓고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차세대 OS인 윈도에 GUI를 구축했을 때에는 애플의 기술을 훔쳤다고 분개했다. 저작권 문제와 관련해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법적 소송까지 제기했다. 애플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그런 아이디어는 쓸모없다고 평가해놓고 그 다음날 그 아이디어를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떠들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상사가 후임의 아이디어를 자기가 낸 것처럼 훔쳐가는 일은 흔하니까. 찌질한 꼰대 그 정도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몇 장 더 넘겼을 때는 또 욕이 나왔다. 잡스는 20대 초에 크리스앤 브레넌과 사귀었다. 그녀가 잡스의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잡스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며 아마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잤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 문제는 양육비 소송과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이 지난 후에 DNA검사를 하면서 잡스의 아이일 확률이 94.41%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잡스는 인터뷰에서 미국 남자가 리사의 아빠일 확률이 28%라는 헛소리를 해댔고 딸과 엮이려고 하지 않았다. 더 찌질한 건 다른 남자의 자식일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아이 이름을 리사라고 짓는 데에는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유명한 사람들의 찌질한 모습을 보여준다. 남의 허물을 보고 위로를 받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요새 자괴감에 빠져있던 나는 이 책을 보고 조금은 위로를 받았다.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찌질한 모습도 있구나, 누구든지 완벽할 수는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과 함께 이 책을 낸 함현식 작가의 찌질한 모습도 궁금해졌다. 몇 장 읽지 않았을 때는 남의 찌질한 모습을 왜 이렇게까지 알리려고 할까, 이 작가도 참 찌질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너도 나도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찌질한 건 마찬가지니까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의도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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