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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May 17. 2018

사표의 이유

퇴사는 항상 타의적이다.

사실 누군가가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굳이 읽었을 것 같진 않았던 책이다. 이 책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를 생각하면 좋지 않은 소리를 한다.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곳이거나, 툭하면 야근을 시켜 개인 시간은 가질 수가 없는 곳이거나,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이라고 이직을 해도 또라이는 항상 있는 곳이거나, 출근 시간이 다가오면 짜증나지만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즐거운 곳이거나. 일터란 우리에게 썩 달갑지 않다. 일요일 밤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월요일을 끔찍하게 저주한다. 지금 자고 눈을 뜨면 바로 월요일이라는 게 싫어 억지로 잠을 참아가며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딱히 회사생활에 관련된 책은 읽어보지도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표의 이유>는 작가가 퇴사한 11명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고소득 전문 직종의 엘리트 직장인 4명, 문화, 창의 직종의 열정노동자들 6명, 보조 사례 1명의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회사생활에 대한 인터뷰어의 언급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즉, 아무런 의문 없이 바로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겪어 봤을 일들.



p.69 내가 하는 일이 회사에서 되게 중요한 일은 아니구나, 이런 느낌이었던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 내 일이 회사에 무슨 영향이 끼치는 것도 아닌 거 같고, 개인적으로 발전이 되는 것도 아닌 거 같고....., 물론 회사 일이 엄청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은 아니라서 신선하고 재미는 있었어요. 그런데 이걸 계속해서 10년, 20년을 간다고 했을 때, 결국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잖아요. 별로 멋있어 보이지가 않는 거예요.



고소득 전문 직장인이었던 윤재훈 씨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가 나와 되게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나와의 성장과는 거리가 멀거나, 회사에게도 영향이 크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그만뒀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취직한 곳은 전공과 관련이 있는 잡지사였다. 그 곳에선 기자로 일했다. 마감기간이면 야근을 했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내가 쓴 글이, 내가 찍은 사진이 인쇄가 되고 잡지로 만들어진다니. 생각만 해도 뿌듯했다. 첫 회사에서 여섯 권의 잡지를 만들었다. 여섯 번의 마감기간동안 항상 새로웠고 잡지 나오는 날이 기다려졌다. 내 적성과 너무나도 잘 맞았다.


하지만, 갑자기 대표는 잡지를 더 이상 발간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나오게 됐다. ‘아 남의 회사에서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봤자 돌아오는 게 없구나. 회사한테 나는 그냥 대체 가능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나는 아르바이트만 했다. 전공과 아무 관련 없는 곳에서 정말 그냥 돈을 벌었다. 이력서를 보고 전화로 면접안내를 해주는 일, 도시락 가게에서 포장을 하는 일, 카페에서 음료를 만드는 일, 복사나 인쇄를 해주는 일을 했다. 내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이었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야근도 할 필요가 없었다. 즐거웠다. 번 돈으로 미술, 도자기, 영어를 배웠고 내 시간을 온전히 보냈다.


그러던 내게 어이없음 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 내 전공과 관련 없이 마지막으로 일했던 회사였다. 앞서 일했던 곳처럼 그냥 생각 없이 하라는 대로 일하고 시간만 채우면 될 줄 알았다. 월급도 쥐꼬리만큼 줬다. 하지만, 그 회사의 실장은 내가 기자출신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가 써야 할 글을 내게 넘겼다. 그 실장은 내게 글 쓰는 법을 알려준다며 되도 않는 수업도 했다. 진짜 웃겼다. ‘그렇게 글에 자신 있으면 지가 쓰면 될 것을.’ 나는 그때마다 ‘글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요? 다 틀렸는데요. 저한테 안 알려줘도 될 것 같은데요’하고 맞받아쳤다. 심지어는 자기가 마시던 컵을 아침마다 씻으라고 했다. 그 실장은 나보다 겨우 3살이 많았다.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엄청 대단한 줄 아네. 나를 자기 아랫사람 인 줄 아나? 대체 나를 뭘로 보는거지?’


나의 고정휴무는 수요일이었다. 그런데 그 실장은 일부러 수요일에 회의를 하자고 했다. 참던 게 터졌다. ‘내가 대학까지 나와서 고작 3살 많은 쟤 컵 씻어주고 글 써줘야 하나?’


“저 그만둘게요.”


실장은 황당해하며 나를 붙잡았다. 새로 올 사람에게 인수인계까지 해달라고 했지만 나는 싫다고 말했다. 나도 들어와서 인수인계 받은 게 없는데 무슨 인수인계. 그랬더니 실장은 평일에 시간이 안 되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나와 인수인계를 하라 그랬다. 못 지킬 약속은 절대 하지 않는 나라 “싫어요. 실장님이 직접 하시면 되겠네요”하곤 나와버렸다.


이후론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내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이젠 관련 없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돼버렸다. 그렇게 난 다른 잡지사에 들어갔다. 첫 회사처럼 하는 일이 즐거웠다. 그 곳에 있던 또라이만 제외한다면.


그 또라이는 국장이었다. 잡지사였지만 편집장은 없었다. 편집장과 영업사원 둘의 월급이 아까웠던 대표 때문이었다. 월급을 아끼기 위해 편집국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편집장 일과 영업 일 두 개를 시켰다. 그 사람은 글을 써본 적도 없기 때문에 기자들의 글을 봐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기자들을 자기 밑에 두고 감시했다. 나와 같이 입사한 기자와 트러블이 잦았는데 눈의 가시였는지 그 기자를 해고했다.


글쓰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툭하면 회의를 한다고 불러댔다. 부르면 기자들에게 잔소리만 쏟아냈다. 잔소리도 아닌 잡소리라 하는 게 더 적합한 말들. 분명 다 말했는데도 기사를 어디까지 썼냐고 물어봤고, 매일같이 업무일지를 쓰라고 했으며, 주간 업무일지도 쓰라고 했다. 정말이지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다른 기자들이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 소리를 질러댔다. 그럼 다른 기자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지켜보던 나는 같이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왜 그렇게 멋대로 하시려고 하시냐고. 회의 때마다 나와 국장은 소리를 지르는 횟수가 잦아졌다. 처음엔 국장같은 꼰대와 싸우는 게 지겨워서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큰 소리를 냈던 날이 잦아질수록 곧 ‘나도 잘리겠구나. 그냥 기다리자’ 생각했다. 예상대로 난 해고당했다. 아마 잘리지 않았더라도 나는 몇 달을 못 버텼을 것 같다. 이제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너무 거슬려도, 업무가 나의 전공과 흥미에 맞지 않아도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사람이 돼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빌 언덕이라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부모님. 폐간으로 첫 회사를 그만두게 됐을 때, 엄마는 내게 매달 백만 원 씩 용돈을 줬다. 어린 나이에 내겐 굉장히 큰돈이었다. 지금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명목상 일을 한답시고 월급을 가져간다. 내가 하는 일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돈이다. 이외에도 프리랜서로 기자 일을 하고 있다. 이건 돈을 벌기 위한 수단보다는 내 능력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느끼기 위해서 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기자’로서 크진 않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그 점 때문이다.


<사표의 이유>를 읽으면서 여기 나온 사람들이 퇴사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그들이 미혼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들이 만약 결혼을 해 아이가 있다거나 배우자를 책임져야 할 상황이라면, 아마도 일을 쉽게 그만두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퇴사의 이유 중 ‘미혼’이 컸다면, 내겐 ‘부모’가 큰 이유였다. 만약, 우리 집이 가난했다면 상사가 아무리 꼰대같이 군다고 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참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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