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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May 11. 2018

당신이 만약 슈퍼마켓에서 살인자를 마주친다면

나중엔 그 살인자와 사랑에 빠진다면? <레이버 데이>

                                                     

레이버 데이


아델은 이혼을 한 후,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다. 아들 헨리와 장을 보러 간 그녀는 그곳에서 다리를 다친 프랭크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 남자는 아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이상한 기운을 느낀 그녀는 거절한다. 하지만, 남자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살인자이며 탈옥을 한 상태였다. 다리만 다 나으면 집을 떠나겠다고 약속한 그 남자는 생각 외로 가정적이었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고장 난 곳을 고쳐주고, 같이 요리를 하고, 아델의 아들과 함께 야구를 했다. 아델에겐 남편의 빈자리를, 그녀의 아들에겐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처럼 보였다.


웬만해선 함께 살며 이러한 시간을 함께한다면 사랑에 빠질 것이다. 남자가 살인자라는 점을 빼면 말이다. 하지만, 프랭크가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사랑에 빠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사이는 깊어졌다. 다리만 나으면 나가겠다고 하던 프랭크도 더 이상 떠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공개수배중인 그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녀의 집에서만 생활했고, 갑자기 이웃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치기라도 할 때엔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결국 둘은 아들과 같이 멀리 떠나기로 결심한다.


떠나기 며칠 전, 헨리는 도서관에서 어떤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둘은 속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중엔 그 여자아이가 그 집에 살인자가 살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이 여자아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프랭크가 살인자이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떠날 준비를 하면서 불안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아빠의 집을 찾아가 편지를 두고 온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경찰을 마주치고, 경찰은 헨리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차를 타라고 한다. 집에 프랭크가 있다는 사실을 걸릴까 두려웠던 나머지 거절했지만, 경찰은 협박 아닌 협박으로 헨리를 태워서 집 앞까지 데려간다.


떠날 준비를 하던 아델은 경찰차를 보고 흠칫 놀라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 경찰을 본 프랭크는 집에 숨어 몰래 지켜본다. 하지만, 경찰은 프랭크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간다. 아델과 프랭크의 사랑을 응원하던 나는 이 장면에서 프랭크가 있다는 걸 걸리게 될까봐 가슴을 졸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게 다행이네라고 느끼던 나는 이내 슬픔에 잠겼다. 고요하던 그녀의 집 마당은 사이렌 소리로 가득 찼다.


끝내 누가 언제 신고를 했는지 나오지는 않았다. 사이렌 소리가 막 울리자마자 나는 그녀의 아들이 신고를 한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해볼 수 있는 후보들은 많다. 떠날 준비를 할 때 프랭크 혼자 집에 있다가 갑자기 맞닥뜨린 이웃이 신고를 한 건지, 뭐라고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헨리의 편지를 읽은 아빠가 걱정이 돼서 신고를 한 건지, 헨리와 며칠 간 썸을 탔던 시크한 여자아이가 신고를 한 건지. 아니면, 그 여자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해서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신고를 한 건지.


영화 속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동안 그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음을 예감하며 나도 함께 울었다. 불안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며 떠나려던 날, 그렇게 프랭크는 원래 있던 감옥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차라리 마지못해 집으로 데려온 날 잡혀갔다면 이렇게 슬프진 않았을 텐데, 아니 차라리 슈퍼마켓에서 잡혀버리지라는 생각을 했다. 떠나는 날 잡히도록 설정한 이유도 아마 관객이 더욱 더 아쉬움을 느끼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 둘을 응원하던 나는 더 이상 아무생각 없이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니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영화에서 시간은 많이 흘렀고 프랭크의 석방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아델의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아마도 네 엄마는 지금쯤 재혼을 했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 아직 혼자라면 편지를 써도 될지 네가 물어봐줬으면 좋겠구나. 약속하는데 아델에게 슬픔을 주느니 차라리 내 손을 자를 거다.’

그가 쓴 편지 내용의 일부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 둘은 재회하게 된다. 같이 지낸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기다렸다는 점이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요즘같이 금사빠가 널리고 널린 시대에 이런 사랑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어서 그럴지도. 평소에도 느낀 거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관계에서는 시간의 길이보다는 시간이 깊이가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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