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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Jun 21. 2018

철학적으로 널 사랑해

사랑은 대체 무엇일까? 

난 가끔 제대로 읽지 않은 책을 반납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납일은 다가왔고 연체료는 낼 생각이 없으니까. 물론 반납일 전에 대출 연장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연장일은 내게 별로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5년 전 도서관에 들렀을 때, 핫핑크색으로 된 책의 표지가 내 눈길을 끌었다. 책의 제목은 <철학적으로 널 사랑해>였다. 사실 그때 나는 아주 열정적으로 썸을 타다가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었을 때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과 색깔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대로 빌렸던 것 같다. 그때 자주 만나던 친구가 이 책이 내 책상 위에 있는 걸 보고는 신나게 날 놀려댔다. “야~ 김복희. 최주환이 그렇게 좋냐? 이제 책도 그런 거 읽냐?”며. 



그렇게 단순한 호기심으로 빌렸다가 도무지 쉽게 읽히지 않아 반납해버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때의 연애가 끝났고 난 혼자가 됐다. 또 이 책을 빌리러 갔다. 이 책이 나의 연애와는 무관하지만 그 사람과의 연애의 시작, 끝, 이 책을 빌린 시기는 우연히 겹쳤다. 어쨌든 이번엔 읽었다.


사실 읽었다기 보단 눈으로 훑었다고 해야 될까? 몇 장 넘기지 않아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맞다. 난 또 실수했다. 이 책이 어렵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제목과 디자인에 깜빡 속아버린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이 사람이라면 “너의 이름과 외모는 사랑하지만 너의 내면까지는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다. 1부인 <사랑을 말하다>에서는 유혹, 욕망, 금욕, 결혼, 이혼, 쾌락, 사랑, 섹스. 2부인 <사랑을 배우다>에서는 ‘사랑하는 상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사랑에 열광할까?’, ‘왜 사랑은 고통스러울까?’, ‘사랑이 식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수 있을까?’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난 보기와 다르게 사랑에서는 겁이 많다. 때문에 ‘연애의 시작과 끝에선 항상 사랑이 식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아름다운 연예인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어쨌든 헤어졌으니까. 따라서 이 책에서 내가 유심히 본 부분은 <사랑이 식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까?>일 수밖에 없었다.


p.357 두 사람이 즐겁게 보내는 시간 외의 나머지 시간들이 차츰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들 각자가 다시 사회와 엮이고, 각자의 친구들을 만나고, 상대방 외의 다른 것들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되고, 또 같은 방 안에 있는데도 스킨십 없이 처음에는 몇 분, 그 후에는 좀 더 오랜 시간, 마침내 며칠이 지나도 상관없게 되는 그런 시간이 반드시 오는 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 상대를 향한 특별한 흥분과 감동, 강렬한 황홀함은 필연적으로 약해진다. 그렇게 될 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드디어 별빛이 꺼졌음을, 첫 데이트 때의 특별한 감정들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되었음을 깨닫고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상대의 신비함이 사라지고, 상대의 내밀한 것들을 점점 더 알게 됨에 따라, 사랑이 싹트던 순간에 상대에게 느꼈던 그 눈부신 욕망, 만족할 줄 모르던 욕망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p.364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랑은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사랑은 두 사람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욕망하고, 두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즐기며, 받기보다는 주고, 상대를 욕망의 무한한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주제를 다룬 부분의 처음에서는 사랑이 식지 않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사랑과 욕망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랑은 죽지 않는다(p.364)고 말한다. 사랑이 식지 않는 방법은 없다는 점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마지막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이득을 취하기 위해 감정 없이 만나는 사이 말고는 대부분 진정으로 사랑해서 만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책의 주장대로라면, 식어서 헤어진 모든 커플은 단 한순간도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는 의견이 될 수도 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이더라도 마음이 식으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바람을 피웠다거나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면 마음이 식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도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었다고 바라볼 수 있을까? 책의 내용대로라면 둘이 사랑했던 시간까지도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은 시간으로 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소유하고 있는 것을 욕망하라고 말했다. 이 말은 상대방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바라는 것이 아닌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을 욕망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만난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의 단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틀린 맞춤법이 귀여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니 무식해 보인다거나, 통통한 배가 귀여웠는데 이런 모습이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곤 한다. 처음에는 아예 없었던 단점이 생겼다거나. 혹은 상대방이 자기의 단점을 숨겨서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돼버렸다든가. 그런 상대의 모습을 보고도 무한한 대상으로 볼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후에도 식지 않는 사랑은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랑은 무엇일까 가볍게 생각하며 읽으려고 고른 책이었는데 내가 어리석었다. 감정은 언제나 어렵다. 그래도 나처럼 ‘사랑은 대체 무엇인지?’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읽어볼만 하다. 이 책을 읽고 머리가 더 어지러울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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