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은 4명이다. 내가 선택한 남편과 우리가 낳은 쌍둥이 아들들 2명까지 해서 우리 4명은 주민등록등본에 한 가족으로 묶여 있다. 이 집에서의 어른은 나와 남편이다. 같은 배를 타고 같이 노를 젓고 있다.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는 우리의 아가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밝게 성장할 수 있도록 바다 위에서 힘차게 항해하는 것이다. 힘찬 바람과 파도에 대처는 어떻게 할지, 방향을 어디로 틀고 어느 목적지를 향해 갈지 배의 항해와 모든 사무를 책임지고 통솔하는 최고 책임자는 나와 우리 남편이다. 모든 주도권은 쥐고 있기에 어른이 된 느낌이다.
나는 부모님의 배에서 20대 후반 나의 배로 옮겨 탔다. 나의 첫 배에는 엄마와 아빠, 나보다2살 많은 오빠가 있었는데, 나의 어린시절 눈에 남겨진 우리 가족의 분위기는 도란도란 항상 행복하게만 기억되지 않는다. 오빠는 중학교 시절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새벽녘 종종 발생되던 오빠의 반항을 엄마는 당해내지 못했고, 나는 주무시고 계시던 아빠를 깨우러 울며 뛰어가던 날들을 기억한다. 오빠는 학창시절 내내 내게 불친절 했고, 나는 그런 오빠가 불편하고 어려웠다. 오빠의 행동에는 그 시절 상황적 심리적 이유가 있었을테고, 그 나이 때의 자연스러운 성장통 이었겠으나, 어릴 쩍 내 마음에 쌓인 오빠에 대한 벽은 성인이 된 후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성장 과정 중 자연스런 화해의 타이밍은 놓쳐버렸고 각자의 가정이 새로 생겨남에 따라 서로는 뒷순위로 밀려났고, 난 오빠와의 관계에 연연 해하지 않게 되었다. 뭔가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덮어두고, 가족들과 종종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엄마는 천상 소녀 같은 분이다. 23살의 어린 나이에 아빠와 결혼하고 오빠와 나를 낳았다. 엄마는 팔방미인이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초등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엄마의 예쁜 외모에 친구들은 감탄했고, 나는 예쁜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중학교 시절 내내, 엄마는 항상 3개 이상의 반찬을 새벽마다 만들었고 보기에도 정갈하고 이쁘게 싸 주었다. 난 점심시간 도시락 통을 열때마다 우쭐했다. 엄마는 오빠와 내가 엄마 인생의 전부인 양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셨다. 지금 내 나이 마흔에 엄마의 마흔을 돌이켜보면, 나보다 10년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낳아 키웠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엄마는 엄마의 젊은 시절을 쏟아 부운만큼, 나와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과 많은 걸 함께 하고 싶어 하신다. 엄마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고 있으나 난 엄마에게 성인으로서, 한명의 다른 인격체로 존중받는 느낌이기 보단, 한 단계 미성숙한 딸 자식으로만 여겨지는 느낌에 종종 답답함을 느낀다. 성인 대 성인으로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아빠는 말수가 적으시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아빠 엄마를 나의 부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고 헤아려 생각만 해 볼 뿐, 직접 대화를 나누기는 쑥스러워 피했다. 아빠와의 추억은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 성장하는 과정 내 아빠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진 못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손에 꼽지만, 그러나 내 머리 속 아빠의 사랑과 든든함이 느껴지던 몇몇 순간들이 저장되어 있다. 아빠의 진심을 느낀 순간들이고 종종 뜬금없이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곤 한다. 애틋함이 있다. 나는 지금도 여든이 코 앞인 아빠가 여전히 내 옆에서 든든히 서 계신 느낌을 받는다. 난 아빠 삶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왠지 나는 나의 성격이 아빠와 비슷하다 넘겨짚는다.
지난 주 가족 모임이 있었다. 가족들이 서로 모여 음식을 해 먹으며 아이들 노는 것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회사 생활은 괜찮은지, 아이들은 잘 커가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던 여느 날의 가족모임과 별반 차이가 없었는데, 그러다가 문뜩, 우리 가족들이 서로를 얼마나 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회 속 가장 소중한 관계라 지칭되고, 이런 코로나 시대에도 만나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는데.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잘 알까.
가깝고도 먼 당신은 가족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서로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사이가 바로 가족 사이인 것 같다. 부모님의 배에서 시작되었지만, 자식들은 장성하여 각자의 배에서 항해를 시작하며 차차 서로 다른 길을 간다. 서로 다른 경험들을 겪으며 서로 다른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고, 추구하는 지향점은 달라진다. 내 삶 하나도 건사하기 쉽지 않고 뭐든 쉽사리 충족되지 않는 현실이기에 서로의 삶의 녹록함과 힘듦을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가족들과 만나면 옛 추억이 소환된다. 부모님은 기억 속 어린아이들로 우리를 맞이하고, 난 부모님 앞에서, 어색한 오빠를 마주하며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40의 중년임에도, 가족 앞에 가면 어린애스럽게 발현되고 취급되는 나의 모습이 나 스스로 불편하여 벗어 던지고 싶으나 쉽지 않다.
늙어가시는 부모님은 자식들이 걱정할까, 자식들은 부모님 걱정하실까 고민 이야기는 쉽사리 꺼내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온전한 나만의 세계가 형성되어 어렸을 때 당연하게 흡수했던 것들에 대한 다름과 판단이 생겨났음에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계 속 형식 및 분위기에 휩싸여 언쟁이 높아질까, 존중받지 못할까, 가족들의 판단을 피하고자 입을 닫고 그저 웃는다. 이에 몇시간이 지나면 사실 대화는 지루하고 고단해진다. 집에 가고 싶어 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이러면서도 우리는 계속, 지속적으로 만난다.
부모님 혹은 형제들 간의 갈등과 문제들은 여타 다른 관계들처럼 문제가 웅덩이에 고여 썩게 나두기기 보단, 강으로 바다로 그냥 흘러 가게 나둔다.
어려움이 닥치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가족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어떤 문제가 있고, 관계에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님의 배는 나의 근원지이고, 현재의 내 모습에 바탕이다. 가족이기에 서로의 다름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면서도, 가족이기에 서로 용서를 하고 의지하게 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심리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다.
답은 단순한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부모님의 무조건적 사랑과 희생을 바탕으로?
나는 선택권이 없이 엄마 아빠 배에 오빠와 함께 태어났다. 주도권을 가지고 나의 첫 배, 노를 지시던 부모님은 현재의 늘어난 우리 가족의 모습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계실까.
현재 내 배에 타고 있는 우리 쌍둥이는 훗날 나와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게 될까.
이 글을 쓰는 과정 내내, 가족관계에 대한 내 생각과 마음을 살짝 드러내는 것이 왠지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 같은 느낌, 죄책감이 들어 새삼 놀랐다.
나의 가족은 겉으로 항상 행복하게만 비춰 보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글을 쓰는 내내 나를 살짝 주저하게 만들었다.
가족 관계에 대한 책을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