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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다시금 초심을 생각하며

by 사십대 소녀

자신감이 잦아든다. 다시 4년 전 퇴사 전으로, 아니 퇴사 하기 전 우울했던 희망이 안보이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 다니기 싫네 노래를 부르며 다녔던 어두컴컴했던 시간들. 그러다 꿈 같은 결단을 내리며 퇴사를 한 후 그리도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기분이다. 머리는 돌덩이에 글은 잘 쓰이지 않고,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 대신 조급함만 남아 있는 듯.


온라인 셀링은 여차 저차 작년까지는 잘 굴러가더니, 올해는 거의 꼬꾸라진 상태이고, 철학 전공공부는 이제 마지막 한학기가 남았다. 박사를 하며 관련된 상담 공부를 계속 이어가야 할지, 석사로써 끝내야 할지 또 다시 터널 앞에 서있다. 울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다. 다시 또 선택의 기로이고, 불거져 다가오는 불확실함, 어둠의 터널 앞에 또 서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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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움 아래 이제껏 씩씩하게 걸어왔다. 갈라진 갈림길에서 오롯이 나의 지향성에 따라 선택을 하고 열심히 걸어왔다. 그럼에도, 열심히 걷다가도 눈길을 주지 않으면 금세 시들어 버리는 꽃처럼, 조금이라도 정신이 흐트러져 게을러지는 나날들이 지속되면 마음은 전쟁이 난 마냥 복작거린다. 화려하게 핀 꽃들은 아마도 마음이 평온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지속할 수 없을 테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이 진심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요새이다. 하고 싶은 일이었다 치더라도 막상 할라 치면 그것에 확신을 갖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일이라는 일 자체에만 주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치 결혼과 비슷하다. 뭣 모를 때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말처럼, 일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금전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전망은 어떻고 수입은 어떤가. 일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여러 면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세상에 완벽한 일이란 없다. 결국 감수, 감내의 영역, 희망과 뚝심의 영역인데 그럼에도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릴 줄 모르는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있는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들고 수그러지지 않으니 결정이 힘들다. 욕심을 떼어 내기가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애초 회사생활이 나에게 적합한 직업이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적당히 회사 생활하면서 글 쓰면 됐잖니. 적당히 월급 받고 적당히 인정받고 즐기면서 적당히 글 쓰고. 안정적으로 자아 실현하는 삶. 현명해 보인다. 요즘 또 다시 나의 눈길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 가 있다. 후회가 나를 좀먹도록 그대로 나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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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과거 3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작년부터 약간 헤이 해졌다. 그러나 헤이해진 과정 역시 자연스런 삶의 흐름이다. 어찌 매일 눈에 힘주며 살아갈 수만 있겠나.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라 볼 수도 있다. 온라인 셀링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느낌과 감정, 배움과 성찰이 있었음에도, 시간은 멈춤없이 흘러가고, 나이는 한 살 두살 늘어가고. 어쨌든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가느다란 희망에 대한 확신이다. 문제는 해가 뜰 것은 확신하면서도 어둠이 좀 지겨워졌달까. 출발선 앞에서만 주구장창 계속 서 있었던 느낌에서 몰려오는 피곤함에 자꾸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회사는 매달 월급을 주고, 연봉상승과 직급 승진, 그나마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주며 안도감을 확보해주는데, 퇴사 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빙글빙글 끝없이 맴도는 느낌. 사실 이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오늘처럼 왠지 우울한 날이면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보통 글을 써서 올리는 날들에 내 정신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는 날들, 그러나 글을 쓰지 않는 날들에 내 정신의 날씨는 대부분 우중충하다. 회색 빛깔의 구름이 짙게 껴 있다. 그러다가 비가 온다. 그리고 다행이건 비 온 후 맑고 청명해지는 날씨처럼 회복된다. 회복되기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걸리냐의 문제이지만, 어쨌든 변덕쟁이 날씨처럼 반복되는 여정이 삶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비가 많이 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반복되는 여정의 흐름에 대한 이해, 그 안에서 희망을 본다는 것, 빛을 볼 수 있는 능력의 향상. 찬란한 해님이 어떤 모습으로든 드러날 것을 안다, 아침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있지만 말이다. 조건은 항상 따라붙는다.


새로운 일을 하는 과정 안에는 분명 깨달음과 배움이 있다. 그러나 그것 위에 벽돌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지 않으면, 즉 꾸준함과 실행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깨달음과 배움의 생각은 그저 바람처럼 날아가 버린다. 날아가 사라진다고 말하기엔 이전과 분명 조금이라도 달라진 게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헤아리기 쉽지 않다. 행동으로 차근차근 쌓아 올리지 않은 한 생각은 그리 생산적이거나 건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느낌적으로만 있을 뿐이다.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나를 바꾸지 못한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은 오히려 부정적으로 삶을 갉아먹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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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 둘만하니 그만두었다.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남들의 말을 잘 믿지 않는 나의 성격을 감안해본다면 회사 퇴사는 어쩔 수 없는 옳은 선택이었다. 나의 운명이다. 그런데, 만약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지 않다면 그냥 지금 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들의 정의는 무엇인지 체크해봐야 하고, 혹시 현재의 마음이 그저 현재의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자신을 설득하고자 하는 자기 기만은 아닌지 직시해봐야 한다. 세상에 손쉽게 얻어지는 일이 결코 없는데, 그것을 모르는 무지함에서 오는 부푼 희망은 아닌지 철저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꾸준한 노동의 힘이 얼마나 거센 것이고 강한 것인지를 깨닫고 있다. 이제서야 감사함이 밀려온다. 단, 조건이 있다. 최선을 다했을 시에만 이를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최선을 다할 시 그것의 보상은 명확한 시야이다. 뭐든지 대충하면 뿌옇다. 대충함이 끌고오는 불명확함은 어둠 속 교훈과 깨달음이 길을 잃게 만든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도 내가 직접 경험해 봤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진정 체험하여 느껴 봤기에 이렇게 떠들 수 있는 거겠지. 그러니 사실 후회는 불필요하다. 하지 않았으면 몰랐기 떄문이다. 따라서 모든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삶의 방식에 있어 100%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겸손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어떤 길을 선택했다면 욕심을 버리고 남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배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겸허히 주어진 현재에 충실히 몰입해서 살아야 한다는 오직 한가지의 정답만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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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갔다 거리며 과거를 자꾸 곱씹는 이유는 여전히 욕심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뭐든지 다 가지고 싶은 욕심. 하나라도 놓고 싶지 않은 욕심꾸러기.


자꾸 망각하지 말자. 인생을 모험처럼, 재미있게 두 눈빛을 반짝 반짝 거리면서 살자. 그러고 싶은 게 나의 초심 아니였니. 한살 한살 먹어가는 나이에 소심해지지 말고, 사회의 거품 속에 휘둘리지 말자.

오늘 하루도 충실히 잘 보내자. 나에게 빛을 주자 어둠을 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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