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자존심은 얼마나 중요한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짓누르면서까지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것일까?
자존심을 지킨다는 것은 어찌보면, 밖으로 드러나는 나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시선, 그리고 나의 견고한 이미지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
그런데 이미지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거실 벽에 붙어 있는 한 폭에 그림과도 같다.
고정되어 있는 상태,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변화없는 상태.
그런데 인간이 변화없이 고정된 모습으로 살 수 있는가?
한 폭의 완벽한 이미지, 완벽을 꿈꾸는 이상향,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로도 볼 수 있지만,
과연 현실과의 간극을 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한가?
온갖 다양성의 장, 발전과 성장의 가능성이 사라진 밋밋한 그림 한장에 왜 자신을 쑤셔 넣는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 햇빛을 만나 반짝이는 별들을 촘촘히 만들어 낼 때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잔잔히 흘렀다가 거센 물살을 만들어 내보였다가
흘러흘러 바다로 흘러가며 깊은 미지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인간의 임무인 것 같다.
더 깊고 넓게 확장해 나가야 하는 임무.
그러나 전체를 보는건 불가능하다.
단지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에 감사해야 할 뿐.
고여있는 웅덩이에는 올챙이도 개구리도 산다. 복작복작 재미도 있겠지만.
평생 웅덩이 안에서 흐르지 않고 가만히 머문다.
갈수록 메말라가는 물, 순환되지 않아 오염되는 물을 탓할 뿐, 그 곳에 머물러 있는 자신은 보지 못한다.
왜 흐르려 하지 않는가?
그만큼 인간의 시야는 부분적이다. 그리고 자기 보호적이다.
온갖 핑계를 만들어 대며 자기 합리화를 해댈 뿐, 정작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다.
성찰하기에 피곤한 세상. 익숙함에 길들여드니 갈수록 새로움이 두려워진다.
그래, 요즘 너무 편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아침 늦게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책을 잃다가 산책을 하고 띵가띵가 티비도 보고.
예전 같으면 늦게 일어나면 죄책감, 아무것도 안하면 시간을 허비한 양 불안하고 했는데
그 동안 너무 열심히 달렸던가, 요즘 좀 마음이 헤이해진 면이 있다.
우물 안에서 딩까딩까 발장구를 치고 논다.
그런데 너무 안이한 삶에, 너무 긴장 없는 삶에 놓여 있으니 새로운 도전이 두려워진다.
예전에는 뭐든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을까 과연? 의심이 꽃피워진다.
자존심은 한폭의 그림처럼 유유히 거실 벽에 걸려 있는데,
그 그림과 갈수록 동떨어지는 모양새다.
진심을 다해 무엇인가를 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요즘이다.
도전하는 것, 몰입하는 것, 나아가는 것, 시도하는 것
단지 희망찬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성취의 과정일 뿐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이다.
나를 알게 해주는, 현재의 나 뿐 아니라 나의 가능성 마저 열리게 해주는 소중한 도구들.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어떤 물질적 가치를 위함이 아니라
나란 사람 자체,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면, 나를 장미처럼 예쁘고 꽃피우고 싶다면,
그렇다면 열심히 살 수 밖에 없다.
'열심히' 안에 수많은 반짝임이 들어있음을 요즘들어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