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_01
때는 바야흐로 1990년.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6학년인 나는 눈앞에 버티고 서있는 뜀틀을 넘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전에도 뜀틀 수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넘기에 성공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에 이불더미를 쌓아놓고 연습도 해보았었다. 이불은 넘을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 단단한 뜀틀을 넘을 수는 없었다. 공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뜀틀에 세게 부딪히거나 넘다가 고꾸라질 것만 같은.
그날도 뜀틀을 향해 돌진하다가 발구름판에서 멈추기 일쑤였고 그렇게 몇 바퀴 돌고 나자 과업을 달성한 대다수의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 구경을 하고 나를 포함한 낙오자들만 시행과 착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날은 더웠고 담임선생님은 아마도 짜증이 났을 것이다. 뜀틀을 향해 용감하게 달려들지 못하는 우리들이 한없이 한심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담임선생님의 별명은 노처녀 히스테리였다. 다소 악의적인 별명에서 예측 가능하듯이 친절하거나 다정하지 않았을뿐더러 철저한 상벌제도를 활용하여 60명이 넘는 우리 반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조련하는 능력자이기도 했지만 교사로서 바람직한 타입은 결코 아니었다. 화가 나면 아이들의 정강이를 발로 찼고 아주 가끔은 따귀를 때렸는데 화가 나는 포인트를 찾는 것이 고작 열세 살인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에 항상 긴장하며 학교 생활을 해야 했다.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돌연 날카로워졌다. 넘지 못하면 오늘 집에 못 갈 줄 알아. 거의 울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힘을 내 보았지만 뜀틀에 올라타는 것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낙오자들 몇이 구경꾼으로 지위가 상승하고 이제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었을 무렵 무거운 마음으로 뜀틀을 향해 달려가던 나를 향해 선생님이 소리쳤다. OO아, 다리에 힘을 줘! 다리에 힘을 주란 말이야! 선생님 말이라면 너무도 잘 들었던 나는 진심을 다해 되뇌었다. 다리에 힘을 주자, 다리에 힘을 줘야 해. 속도가 붙었고 발구름판에 두 발을 찍고 점프하는 순간. 그래 되네, 이거 봐 되잖아. 이번에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뜀틀을 넘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뜀틀의 정상에 두 발을 딛고 올라서 있었다.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 아마 1초쯤 입을 다물었던 것 같다. 지금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중에 높고 엉뚱한 곳에 올라서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던 순간만은 정지화면처럼 느껴진다.
정적을 깬 것은 선생님의 웃음소리였다. 하하하와 깔깔깔 중에 어느 것이 더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선생님은 웃음과 함께 '내려와 너는 이제 뜀틀 하지 마'라고 못 박음으로써 나를 뜀틀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벌써 30년도 넘은 옛날이야기라서 그 이후의 일들, 친구들의 놀림이나 그날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같은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과제와 주위의 기대 속에서 난처했던 기분과 뜀틀 면제 대상이 되고 나서의 후련함은 손에 잡힐 듯 뚜렷하다.
이후로도 막막한 과제를 만날 때면 산처럼 버티고 서있었던, 기어이 넘지 못했던 그 뜀틀을 종종 떠올렸고 조금은 기가 죽었다. 뜀틀 에피소드는 나의 몹쓸 운동신경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주 소환되었고 몸으로 하는 온갖 활동과 착실하게 거리두기를 하도록 만들었다. 이 에피소드가 내 삶에 가치 있게 쓰이기 시작한 것은 교사가 되고 나서다. 수업 분위기를 환기할 목적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 들어 마침내 뜀틀 위에 올라선 졸라맨을 칠판에 그리면 아이들은 책상을 쳐가며 하하하 내지는 깔깔깔 웃는다. 뜀틀 위에 우뚝 서있는 졸라맨은 마치 원래부터 거기가 제자리 인양 위풍당당하다. (2022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