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진실을 추억하며

1992년 그때 그 시절

by 박기복

나는 가끔 최진실을 생각한다. 명실상부 톱스타로 20년 가까이 군림한 여배우. 최진실이 세상을 떠나던 날 출근길에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던 그 뉴스도, 뒤숭숭했던 교무실의 분위기도 모두 생생하다.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을까마는 온 국민이 알만한 힘든 개인사를 견뎌내고 맞이한 비극이라 더 안타까웠다. 2008년의 일이니 벌써 14년 전이다.


특히 그녀의 자녀들이 연예 뉴스에 오르내릴 때면 기억 소환 버튼이 눌린다. 며칠 전 유튜브 검색창에 최진실 이름 석자를 쳐보았다. 이런저런 자료들 중에 한때 온 나라가 열광하며 시청했던 드라마 '질투'의 편집본도 있었다. 1992년의 그 드라마를 계기로 최진실은 독보적인 톱스타로 거듭나게 되었고 나는 최수종과 결혼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한동안 (최수종이 하희라와 깜짝 결혼 발표를 하기 전까지) 꾸게 되었다.

드라마 질투의 한 장면


웨이브에 질투 전편(16부작)이 올라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1부를 보기 시작했다. 밝고 사랑스러운 배우 최진실이 스물다섯의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이제 막 떠오른 청춘스타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모습이 시선을 잡아끌었던 데다가 반가움과 짠함이 뒤섞이는 내 마음 탓에 시청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그 드라마에는 최진실만 있는 게 아니었다. 1992년 그때 그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내가 겪어낸, 하지만 이미 기억에서 흐려진 그 시절이 그립고 애틋했다. 그리하여 응답하라 시리즈에 응답하던 그 마음으로 정주행을 마쳤다.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을 하려면 무조건 집이나 직장으로 전화해야 했고,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확하게 정하지 않으면 만남이 불발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었던 시절이다. 물건을 사면 꼭 현금으로 값을 치르고, 도로에는 주차단속 라인도 없다. 너나없이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 하는 편견 가득한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전화를 대신 받은 직장동료는 상대도 확인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서슴없이 알려준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시절로부터 30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물론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을 딛고, 그 결과 혹은 대가로 맞이한 오늘이다.


생활은 편리해졌고 어떤 면에서 사회는 한층 성숙해졌지만 과연 더 행복한 사회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 아니 모르겠다는 말조차 거짓말이다. 자살률, 출산율 같은 객관적 지표만으로도 확인이 되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아이를 낳고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상대적 박탈감의 크기 또한 30년 전과는 비교가 안된다. 모두가 열심히 달린 것 같은데 엉뚱한 지점에 도달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고 미래는 알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증명된 인류의 진보가 무색하게도 2022년 현재 세계는 역병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반전의 지뢰가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다. 대한민국의 내일이 참으로 궁금하다. (2022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