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건강검진
이제 내 안에 생명을 유지할 수단은 남아있지 않아…
누운 남편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배 위에 올려두고는 말했다. 장 속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도록 싹 비워내고 이제는 물조차 마실 수 없는, 대장 내시경 두 시간 전이었다. 입꼬리를 한껏 내리고 창밖의 마지막 잎새라도 응시하는 듯 슬픈 눈빛.
작작해라.
나는 말했다. 늘 센 척하면서 세상 겁나는 게 없는 사람처럼 굴다가도 아프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 남편의 엄살이 가끔 징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웃기거나 귀엽다. 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숨을 한껏 들이켜 몸을 부풀리고 살다가 이때다 싶으면 갑자기 고개를 떨구고 웅크리며 보호받으려 하다니. 몸살이라도 나는 날에는 팔다리 좀 주물러달라, 이마 좀 만져달라 요구가 끝이 없다.
남편은 내가 검진받은 병원보다도 더 가까운 코앞 병원에 위, 대장 내시경을 예약해두었다. 그저께부터 죽을 먹어가며 요란하게 준비를 하더니 어제 저녁부터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다가 서재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나한테까지 들리도록 앓는 소리를 냈다. 오늘 아침 수면내시경이 아님에도 기꺼이 병원까지 동행해준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이에게 던져주는 옛다 관심.
접수를 하고 이름이 불려지길 기다리는데 벌써 배가 고팠다. 남편이 들어가는 걸 보고 건물 1층으로 내려가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책을 조금 읽었고 위 몇 단락을 썼다. 독서클럽 다음 책을 결제했다. 결제가 원활하지 않아 여러 번 같은 시도를 하고 겨우 구입을 완료하고 시계를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수면 내시경도 아닌데 이렇게 오래 걸리나? 그때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용종이라도 발견된 건가? 다시 병원으로 올라갔다.
OOO 씨 보호잔데요. 한 시간 넘은 것 같은데 무슨 사정이라도 있나요? 접수대에 있는 직원분에게 말하니 대장내시경을 수면으로 하셔서 지금 주무신단다. 잉? 분명 둘 다 비수면으로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의아했지만 일단 앉아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책을 꺼내 읽으며 한참 앉아 있는데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용종이 발견돼서 수면으로 전환을 했다고 지금 회복 중이란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낼모레 쉰이라고 놀리기만 했지, 내가 건강검진을 받을 때보다 안일한 마음이었다. 종종 남편이 타박하듯 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일까? 엄살이니 뭐니, 작작하라고 구박했던 것이 미안하다. 떼어낸 용종에 대해서는 조직 검사를 해야 할 텐데. 악성일지 모르니 마음 졸이며 결과를 기다려야 하나? 별일 없겠지? 순식간에 생각이 많아진다. 남편의 어떤 엄살도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피어오른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도 일어난다. 이내 어리석은 나를 한탄한다. 귀한 것을 가까이 두고 매일 보니 자꾸만 잊는다. 귀하고 중하단 사실을. 금쪽같은 내 남편 튼튼하기만 해다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병원에서 목격한 어떤 장면 때문이었다. 함께 병원행 엘리베이터를 탄 부부의 이야기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분이 접수대에 섰는데 오래 기다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들리는 걸로 봐서 검사 예약을 않고 온 모양이다. 아마도 남편일 것이 분명한 남자분은 내 바로 앞줄 의자에 앉아있었고 아내가 와서 전하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 어떻게 한 시간을 기다려. 예약을 하고 왔어야지.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하면 어떡해. 몇 마디를 더 보태며 언성을 낮추지 않고 일관되게 '야'로 지칭되는 아내를 탓하다가 너 혼자 하고 와! 모질게 말한 뒤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씩씩대며 걸어갔다. 따라 걷는 아내는 목소리를 죽여가며 남편을 응대하고 있었다. 차라리 같이 목청껏 싸웠다면 보기가 덜 힘들었을까.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는 아내의 입장에 이입된 나는 그 공간 안에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모욕스러웠다.
결국 그 부부는 병원을 떠났다. 짝수층, 홀수층으로 구분되어 운행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느라 한참 동안 또 남자는 일처리를 운운하며 반복적으로 성을 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지는 못했다. 읽히지도 않는 책에 눈을 박아두고 인간관계에서 노력으로 좌우할 수 있는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아내를 혼내듯 몰아세우는 심성의 사람과도 노력하면 잘 지낼 수 있는 것일까. 서로를 이해하고 노력을 기울이면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상대의 인성이 일정 수준 보장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중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을 접하며 내가 인간의 선의를 무모하게 믿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의문이 일던 차라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생각을 정돈해보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위에 쓴 것처럼 내 남편의 용종이 다른 모든 상념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뭣이 중헌디.(202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