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한: 뉘우치고 한탄함
금쪽같은 내 남편의 대장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다행한 일이다. 다만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마음에 일격을 당했다. 대략 일과 관련된 것인데 구구절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사건은 벌어졌다. 해석만이 남았다. 해석의 주체는 오롯이 나여야 할 테고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일은 터닝포인트가 되거나 해프닝이 될 것이다. 하여, 오랜만의 글이다.
2009년 직접 성당을 찾아가서 자청해 세례를 받았다. 아마도 기대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를 붙들고서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 어렸을 때에는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던 부모님은 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자유를 허락했다.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부모님의 믿음이 자긍심으로 이어졌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꽉 짜인 틀이 사라졌는데 문제는 내게 비전(vision)이라는 것이 없다는 거였다. 시키는 대로 공부만 열심히 했고 그래서 얼추 만족할만한 입시를 치르고 나서는, 그다음이 없었다.
이름을 좇아 들어간 대학교였고 학과가 마침 역사교육이었을 뿐이었다. IMF 사태의 여파로 안정적인 직장이 우선시되는 분위기에 휩쓸려 친구들을 따라 임용고시를 준비했고 (대학 입시 이후) 다시 또렷해진 목표 앞에서 열심히 애쓰고 운도 따라주어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하지만 교직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비전 따위는 없었다. 승진을 해서 관리자가 되겠다거나 장학사가 되어보겠다거나 하는 욕구가 전혀 샘솟지 않았다. 심지어 정년까지 해보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그렇다고 드라마에 나오는, 학생의 삶에 한 획을 그어줄 열정적인 교사가 될 의욕 또한 (부끄럽지만) 없었다.
이것이 나의 콤플렉스다. 교직에 몸담고 있지만 이 판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이 1도 없다는 것. 잘 해내고 싶다는 의지, 뭔가 되어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기질의 문제인지 안 맞는 영역에 들어선 탓인지 확인할 생각도 없이 어느 학교에나 있는 '교사 11'쯤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건 '가르치는 일'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적절한 언어와 비유를 선택해 논리적으로 구조화시켜서 설명해내는 일. 나를 향해 집중하는 수십 개의 눈알, 잘 가르친다는 인정과 칭찬이 교사로서의 나를 지탱해주었다. 가르치는 일만큼은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은 욕심나는 영역이었다.
뭐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늘기 마련이고 이쯤이면 노련한 교사가 되었다 안심했을 무렵 삶의 헛헛함이 찾아왔다. 그때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결혼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만일 그때 미래에서 누구라도 와서 너는 서른 여섯에서야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날 거니까 그때까지는 결혼에는 신경 끄고 열심히 살거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열심히 노오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닌 것을 두고 미련스럽게 스스로를 소진하고 있었다. 원래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데 몇 번 따라준 운을 경험한 덕에 기본값이 잘못 설정된 것인지도 몰랐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맞서 '자기 착취'를 하느라 번아웃되어버린 것이 성당을 제 발로 찾아간 사정이다.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 어느 한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된 교사들, 그래서 같은 교사들을 청중으로 앉혀두고 강연을 펼치거나 책을 써내는 교사들을 보면 나는 뭐하며 살았나 싶다. 장학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관리자가 되기 위해 단계를 밟아나가는 이들을 보면, 나는 가져본 적 없는 그들의 '권력 의지'를 향해 부러움이 일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하는 일도 없이 인생을 쉽게 살아왔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눈부신 것을 보고 난 직후의 섬광과도 같은 착시현상이다. 돌아보면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쉼 없이 뜀박질을 했고, 부지런히 걸었다. 잠시 속도를 늦췄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대충 살아서 쉰 것이 아니라 쉬는 것이 최선이어서 쉬었을 것이다. 매일의 업무에, 담임 역할에, 수업에 끊임없이 최선을 다해왔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 꽤나 자주, (시대가 흐르며 매체가 늘었으니 더욱 자주) 거창하게 뭔가 이룬 사람들을 접한다. 그들의 성과는 너무도 화려한 것이라 내 것을 갖다 댈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내가 이룬 것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쉽게 폄하한다. 나의 평범함을 때로 몸서리치게 초라해한다. 몇 주 전 친구로부터 "매일 제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성취야."라는 말을 들었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착실하게 성과를 내며 살아온 친구의 말이라 놀라웠다. 과연 맞는 말이다. 하루하루가 성취다. 모욕과 위협에 맞서 나를 지키고, 좌절을 겪고도 끝내 일어서서, 일이거나 삶이거나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성취다.
세례를 받은 후로 십 년쯤 성실한 신자로 살다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성당에 가지 못한 지 한참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게 신앙이 있다고 자각하고 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에 어떤 '의미'가 있다라는 믿음, 그게 신앙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음에 난 생채기를 들여다보며 내가 당한 일격의 의미를 더듬어보고 있다. 하지만 회한은 사절이다. 나는 22년째 매일 성취해왔으니 나의 회한에는 근거가 없다. (202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