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에 산다

낙엽만 해도

by 박기복

이사가 기정사실이 되었다. 결혼한 이래 (전세 계약 기간인) 2년마다 꼬박꼬박 이사를 다녔다. 내 집 마련을 한 후에도 세를 주고 나와 직장 근처에서 세를 얻어 살고 있어 사정은 마찬가지. 2년 전만 해도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본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전세대란이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고공 행진했던 전세가는 다시 뚝 떨어졌고 심지어 요즘엔 세입자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단다. 기존 세입자로부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으니 이 집과 저 집의 전세 하락폭의 차이를 감당하느라 이사는 불가피하다.


집을 보러 올 낯선 이들을 위해 다시 분주히 청소를 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내 공간을 요리조리 구경하는 불편한 과정을 인내해야 한다. 물론 나도 새로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어색한 실례를 반복해야 한다. 벌써 지치는 기분이다. 포장 이사 업체를 정하고, 입주 청소를 예약하고, 중개비를 치르고, 새 집에 맞춰서 이것저것 자잘하게 살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사 자체만도 힘든데 요동치는 부동산 시장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커지니 스트레스는 몇 배나 가중된다.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일터에서 틈만 나면 한숨이 나왔지만 별일 없는 것 같은 말간 얼굴을 유지하려고 꽤나 애썼다.


언젠가부터 하소연을 덜하게 됐다. 같은 처지가 아니고서는 온전히 이해를 주고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아니, 처지고 입장이고 떠나서 인간이 타인을 오해 없이 공감할 수 있다는 낙관 자체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특히 돈과 관련된 것은 더 조심스럽다. 이사만 해도, 자가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내 고충이 크게 와닿을 리 없고, 어떤 이들로부터는 그래도 너넨 집이 있잖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들으며 대화가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지난주였나. 7시쯤 상쾌한 아침 운동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단지 중앙 팽나무 주변으로 미화원 두 분이 이쪽저쪽에서 부지런히 낙엽을 쓸어 담고 계셨다. 처음에는 낙엽을 왜 굳이 쓸고 계시나 어리둥절했다. 이내 그간 바닥이 항상 깨끗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몰랐지만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었을 낙엽 쓸기.


문득 저분들에게 가을 낙엽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봤다. 답은 예상할 만하다(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쓸어 담아야 할 대상, 쓰레기. 말하자면 '일거리'일 터였다. 전에 남동생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군대에서는 눈이 내리면 이렇게 말한단다. (눈을 치워야 하는 건 군인들이) "아, 하늘에서 쓰레기 내린다." 얼마 전 주말,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에 단풍 구경을 갔었다. 윤기 나는 낙엽을 밟으며 그 소리에 연신 감탄했던 게 생각난다. 개개인이 처한 입장마다 맡은 역할마다 세상은 얼마나 다른 곳일까.


차라리 인정하면 편할까. 우리는 아예 저마다 서로 다른 우주에 산다고. 그러면 서로의 우주를 짐작하기 위해서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가늠하지 못할 당신 혹은 그만의 심연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워지니까. 가을은 깊어져 가고 낙엽 쓰는 소리, 낙엽 밟는 소리 여전히 분주하다. (20221120)


동구릉에서 낙엽 밟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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