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쓰레기

합리적 소비의 끝

by 박기복

정리정돈을 좋아한다. 물건들이 필요한 개수만큼만 정해진 자리에 반듯하게 놓여 있는 모습, 같은 용도를 가진 물건들이 한데 모여 있는 서랍, 잘 개켜진 수건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평화로운 기분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정리 마법사 곤도 마리에의 책을 접하고부터 설레지 않는 옷들은 죄다 버렸고 여전히 나는 이것저것을 잘 버리는 사람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릴 때면 잘못된 선택(괜히 샀어)을 기억에서 지우는 개운함 같은 것을 느낀다. 마음에 들고 설레는 물건들로만 주변을 채우니 한결 간결하고 우아한 삶을 사는 기분도 든다.


잘 버리는 사람이 되고부터 신중하게 물건을 사는 사람이 되긴 했다. 버릴 때의 기분을 잊지 않기로 한다. 이런 걸 대체 왜 샀을까 환경을 망치는 주범이 된 듯한 후회와 다음부턴 뭐든 살 때 신중하자는 다짐이 교차하는 순간을. 이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지난 주말에 교보문고 핫트랙스를 방문했을 때도 마음에 들어 만지작거린 물건들은 많았지만 이성의 힘으로 다 떨쳐내고는 단 두 가지 만을 들고 나왔다. 갖가지 수첩과 펜들, 마음에 드는 문구류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있는 건 사지 않는다, 버릴 물건은 사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적용해 유혹을 떨쳐냈고 결국 상자를 뜯기 전까지는 내용물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캐릭터 인형과 주사위를 사 왔다. 단지 이뻐서.



그러니까 어떤 이들이 망설임 없이 '예쁜 쓰레기'라고 말할 것들을 사 온 셈이다. 그 물건들은 나의 장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장식장에 넣으려고 산 거다. 용도가 명확한 물건들은 대개 하나면 충분하지만 장식품은 어차피 용도가 없으므로 엄격한 기준(같은 용도의 물건을 중복해서 사진 않는다)을 피해 외양(귀여운가)만으로 지갑을 열게 만든 것이다.


역설적이다. 합리적인 소비를 훈련한 결과가 예쁜 쓰레기를 사모으는 것이라니. 하지만 이 말에는 어폐가 있으니 내게는 그것들이 절대 쓰레기 일리가 없다. 수년에 걸쳐 장식장에 하나씩 모아놓은 장식품들은 나의 감성과 취향을 반영하고 볼 때마다 일종의 영감을 준다. 아끼는 사진을 끼워둔 액자, 힘든 시기에 조립한 레고 자동차, 여행 가서 사 온 작은 보석함들. 기능적 쓸모 따위 상관없이 단지 존재만이 그 목적인 것이니 장식장을 향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 한 앞으로도 눈길을 사로잡은 장식품을 거절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이 문장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유를 댈 수 없지만 그냥 좋은 것, 그런 사람, 물건, 행위들을 더 많이 허용하며 살고 싶다. 일상을 할애해 글쓰기를 하는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이겠지. 여하튼 쌓여가는 글 목록을 보면 기분이 좋다. 장식장을 바라볼 때처럼. (2022020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술은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