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줄곧 전교 1등 자리를 지키던 아이였다. 50명이 넘게 꽉꽉 들어찬 학급이 무려 15개. 매년 S대를 10명 내외로 보내던 여고에서 전교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니 분명 탁월한 학생이었다. 같은 반인 적도, 안면을 튼 적도 없는 내가 그 이름과 얼굴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만큼 당시 우리 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A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솜털 같은 잔머리가 삐져나오긴 했어도 항상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던 그 아이를 둘러싼 몇 가지 풍문이 있었는데 'A는 생선을 먹지 않는대. 생선가시를 발라내는 시간이 아까워서.'라든지 'A는 거실에서 공부한대. 자기 방까지 걸어 들어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라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A가 얼마나 시간을 쪼개어가며 열심히 공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진위 여부를 가릴 수도 가릴 필요도 없는 실없는 소문이었지만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식사 시간 가리지 않고 늘 책을 파는 A에 대한 시기나 선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당시 나에게 A는 선망의 대상은 아니었다. 어차피 전교 1등 자리는 내 것이 아니라 탐낸 적이 없어서 그랬을까? '뭘 저렇게까지 유난을 떨면서 티 나게 공부를 하나? 나도 저렇게 하면 전교 1등 하겠다. 그렇지만 나는 저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라는 식으로 A의 노력을 평가절하했다. 시험날 아침이면 서로 얼마나 공부를 덜했는지를 강조하면서 덜 공부하고도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던 시절이었다. 대충 하는 것 같은데 신기하게 성적은 좋은 아이들이 더 빛나 보였다.
게다가 A는 수능보다 내신 성적이 잘 나오는 타입이었다. 200점 만점이던 수능이 고3 때 400점 만점으로 바뀌며 판도가 바뀌었다. 전설적인 불수능이기도 했다. A가 어떤 입시 결과를 얻었는지는 모르겠다. 들었는데 잊었을 수도 있고 내 귀에까지 결과가 전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아마도 S대 합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빛을 잃은 영웅 같은 느낌으로 A에 대한 기억은 일단락되었다.
교직에 있으면서 많은 아이들을 본 탓인지 시간의 흐름을 타고 A는 내게서 재평가되었다. 영특함이 반짝여서 적은 노력으로도 높은 효율을 내는 아이보다 또래에 비해 유난히 성실한, 주변 상황이 어떻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끈기 있게 해내는 아이에게 눈길이 갔고, 그런 아이를 보면 자연스레 A의 모습이 겹쳐졌다.
결과에 상관없이 지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대단한 재능이 아닐까 싶다. 포기할 이유, 오늘만 쉴 이유, 적당히 시늉만 할 이유가 수만 가지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제자리에 붙잡아 놓고 노력을 기울이는 게 최고의 재주임을 알겠다. '내가 작정만 하면'이라든지 '나도 할 수 있지만 안 해'라는 말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소리일 뿐이라는 것도.
두 달 가까운 방학을 보내면서도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게을러서는 아니었다. 재능이라든가 목표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아득해졌다. 무엇을 하려고 쓰는가, 글쓰기를 지속할 재능이 있는가 하는 조급한 질문들에 덩달아 열등감과 조바심 같은 것들이 피어올라 동기가 슬며시 사그라들었다.
고작 좋아하는 일도 꾸준히 하지 못하면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하기 싫은 일은 꾸역꾸역 때맞춰 해내면서 좋아하는 글쓰기를 미루는 것은 스스로에게 정말 잘못하는 거 아닌가. 나의 평범함을 수용하고 힘 빼고 즐기면서 쓰면 될 텐데. 스스로를 향해 한탄일지 꾸중일지 모를 생각을 이어가다가 결국 내게 필요한 오직 하나의 재능은 글재주가 아니라 묵묵히 노력을 지속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성실, 인내, 끈기처럼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들어서 닳고 닳아버린 가치들이 사실은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결정적 근력일 터다. 근육은 키워야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2023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