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들려오는 첫마디, '여보세요'라는 네 글자로, 떨어져 지내는 친정 엄마의 안부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다. 목소리의 높낮이, 빠르기, 크기, 떨림의 유무 등이 현재 엄마의 컨디션을 그대로 반영해 주니 거의 바로미터 수준이다.
며칠 전 전화기 너머 들려온 여보세요는 지금 엄마의 컨디션이 1부터 10중에 2,3 수준으로 떨어져 있음을 알려주었다. "엄마, 어디 안 좋아?"라는 질문에 이어지는 응답은 구구절절했으니, 버스를 타고 단체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길에 마신 박카스가 발단이 되어 속이 뒤집어졌고 그 후로 소화도 통 안되고 어지럽고 여러 가지로 힘들다는 이야기.
속이 상했다. 70대인 엄마가 현재 앓고 있다는 사실과, 이렇게 내가 먼저 전화할 때까지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한 속상함에 보태어 내가 전화를 좀 더 자주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사실 내가 엄마의 상태를 안다 한들 크게 도움이 될 것도 없었다. 나는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에 잠시 공감하는 척하다가 늘 그렇듯 따뜻하게 찜질을 해라, 따뜻한 물을 마셔라, 죽을 먹으면 어떨까, 양배추가 위에 좋다던데 하면서 지친 엄마를 붙들고 이거 해라 저거 해봐라 지시를 하고 있었으니까.
엄마가 편찮으시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남편이 한약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제야 전화로 진료 예약을 잡고 엄마에게 통보를 했다. 엄마는 만사 귀찮다고 했지만 나는 고집을 부렸고 승낙을 받아냈다. 몇 년 전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된 그곳은 한의원이 아니라 한약국이었다. 한의사가 아닌 한약사가 진맥을 보고 약을 지어주는데 진맥을 하도 잘 본다기에 처음 가게 되었고, 그 후로 엄마와 남편을 데리고 몇 번이나 방문을 해서 그때마다 톡톡히 효과를 보았었다.
친정에 들러 엄마를 차에 태웠다. 남편은 조수석에 앉은 나에게 엄마와 나란히 뒷좌석에 앉으라 했다. 무심한 것 같은 사람이 이럴 때는 참 세심해서 고마웠다. 평소와 달리 기운이 없고 말수도 적은 엄마를 보는데 마음이 짠했다. 치열하게 애쓰며 살아온 젊었던 엄마를 생각했다.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게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대놓고 떼를 쓰진 않았어도 따지기 좋아하는 딸이었다.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많아진 내가 아픈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약을 지으러 가고 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늦지 않으려 서둘렀다. 약속 시간인 11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이어 엄마 차례가 되었다.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미 여러 차례의 방문이라 선생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몸은 좀 어떠시냐는 질문에 엄마는 좀 전까지 기운 없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청산유수로 소화 불량의 배경부터 시작한 스토리를 조곤조곤 읊어나가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진실한 표정과 눈빛을 유지하면서 엄마의 강물처럼 쉼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꼼꼼히 메모를 했다.
나는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엄마는 몸의 고통을 호소했는데 선생님은 엄마가 느낄 마음의 힘듦까지 헤아려 다독여주었다. 기력이 없으시면 만사 귀찮죠. 아무것도 하기 싫으실 거예요. 저도 그래요. 그럴 때는 밖에도 안 나가고 혼자 있고 싶어요. (어쩌고 저쩌고...) 괜히 늙어서 그런가 그런 기분 들어서 우울하신 마음도 생기시지요. 근데 이거 금방 해결해요. 심각한 거 아니에요.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둘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몇 년 전 처음 그 한약국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당시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였다. 나를 추스리기가 힘들었고 감정이 널을 뛰는데 의욕은 없어서 무기력했다. 교무실 책상에 엎드려 쉬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앞자리 선생님이 한약 이야기를 꺼냈고 미리 예약을 하고 간 그 자리에서, 그 30분 정도의 대화에서 나는 일종의 작은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다). 다음날 내가 한층 활기찬 표정으로 출근했을 때 주변 선생님들의 놀라던 반응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랬었다. 그때도 선생님이 나에게 따뜻했다.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면서 내가 처한 어려움을 평가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고 공감해 주었다. 내가 왜 힘든지를 구구절절 납득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냥 지금 내가 힘든 것은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었고 내 탓이 아니었으며 언젠가는 충분히 개선될 일이었다. 나는 느긋하고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엄마를 모시고 오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몸에 맞는 약을 지어서가 아니라, 누군가 내 엄마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들어주고 따뜻하게 다독여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딸인 나는 하지 못하는 따뜻한 말들에서 엄마는 분명 크게 위로를 받고 있으리라. 원 없이 속을 털어놓은 엄마를 모시고 진심을 담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진료실을 나왔다. 미리 알아본 근처 맛집으로 이동하는 사이 엄마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다행한 일은 엄마가 남기지 않고 밥 한 그릇을 드셨다는 것. 물론 소화력이 조금씩 회복되던 중이라 가능했지만 상담의 효과도 작용했으리라.
다정한 사람들은 정작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있는지를. 삶의 거의 모든 순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와 나 사이에도 언제나. 온기가 필요하다. (202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