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다
매달려 볼까.
시작은 그냥 한 번 해본 생각이었다. 매달려 볼까.
홍제천 산책로 곳곳에는 벤치와 운동기구가 놓여있다. 동네 주민들은 홍제천을 따라 걸었고 벤치에 앉아 쉬었고 각자의 소소한 운동을 즐겼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숫자는 늘 고만고만했다. 적당한 밀도였다.
이 동네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나는 홍제천을 좋아하게 될 것임을 바로 알았다. 내게는 걷기를 향한 종교에 가까운 믿음이 있다.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절대적인 믿음. 걷기는 몸을 단단하게 해 주었고 머리는 가볍게 만들어 주었으니 입증된 믿음이었다. 체육관에 놓여있는 러닝머신 위를 걷는 것보다 밖에 나와서 걷는 것이 좋았다. 뭐랄까. 헛되지 않았다. 결과물이 있었다. 나를 A지점에서 B지점으로 확실히 옮겨주었고 이동을 반복하는 사이 다양한 정보가 쌓였다. 홍제천은 길었고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걷는 길에 눈에 들어온 철봉에 '굳이' 매달려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걷기만을 신봉했고 다른 운동에는 관심도, 자신도 없었으니 말이다. 난데없는 생각의 밑바탕에는 학창 시절의 지긋지긋했던 체력장(예전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에서 유일하게 매달리기만 만점을 받았던 경험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매달리기'라는 종목에서는 이름 그대로 철봉에 매달린 시간에 비례하여 점수가 부여되었다. 그냥 매달려서는 안 되었고 반드시 철봉 위에 얼굴이 놓여야 했다. 얼굴이 철봉 아래로 내려가면 실격이었다. 다리를 접어 올려 몸을 웅크리고 이를 악물고 두 팔의 힘으로 한껏 매달리는 일. 무려 30년 가까운 먼 과거임에도 매달리기에서 만점을 받았을 때 기뻤던 기억은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다.
처음 홍제천 산책로 한 구석에 있는 철봉에 매달렸을 때, 놀랍게도 매달릴만했다. 꽤나 매달려있었던 것 같다. 그래봐야 30초 내외겠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노력하면 기록이 늘지 않을까 하는 더 큰 기대를 품기 시작했고 홍제천 산책을 가면 루틴처럼, 의식처럼 철봉에 매달렸다. 1분까지는 매달릴 수 없었지만 고등학생 때의 기록보다는 높았던 것 같다. 매달리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예술적인 이유도 있었다. 매달린다는 행위가 삶에 대한 은유처럼도 느껴졌달까. 내 육체의 하중을 고스란히 견디며 기를 쓰고 철봉 위로 얼굴을 디미는 행위가, 버티고 견디며 살아내는 나의 삶과도 비슷했다. 너끈히 오래 매달릴 수 있게 되면 힘들이지 않고 편히 살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열심이었다.
매달리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 PT를 받기 시작했다. 운동의 중간중간 코치님과 수다 타임이 오면 더 오래 매달리는 방법, 잘 매달리는 방법, 매달리기 위해 필요한 근육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치님 입장에서는 수다 거리가 생겨 반가웠을 것도 같다. 매달리기에 열정을 보이는, 운동신경과 체력이 영 부족한 40대 아줌마인 나를 흥미롭게 보는 듯도 했다. 매달리기 기록이 미미하게나마 조금씩 경신되는 재미를 느끼다가 어느 순간 정체기가 왔다. 그 무렵 어깨도 아팠던 것 같다. 시들해졌다. 직장 가까이로 이주하느라 한참 멀리 동쪽에 집을 얻어 살게 되면서 홍제천은 내 삶에서 분리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이러저러한 사정상 3월 초까지 40일 정도를 살기 위해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왔다. 한 번이면 족할 이사를 연달아 두 번이나 하게 되었으니 속이 상했다. 이사 당일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남편이 먼저 서쪽으로 출발을 하고 나는 동쪽집의 잔금을 받는 등의 부동산 업무를 처리하고 뒤늦게 출발했다. 내부순환로를 한참을 달리다가 연희 IC를 빠져 나오는데 홍제천이 보였다. (과장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순정한 반가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홍제천을 따라 걸었던 많은 날들이 생각났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걸으며 영어 회화 문장을 따라 읽고, 송은이, 장항준이 진행하는 씨네마운틴(시즌1)도 즐겨 들었다. 마음이나 머릿속에 복잡한 것이 가득 차면 걸음걸음과 함께 비워내던 곳이었다. 그리고 이내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철봉'이었다. 어둑한 저녁에 기를 쓰고 매달렸던 철봉 생각이 났다. 악착같이 힘을 쓰다 보면 아득해졌던 기분 같은 것이. 철봉에서 내려올 때면 결국 여기까지구나 하고 마주했던 한계 같은 것이.
2년 만에 돌아와 처음 홍제천으로 산책을 나갔던 날 다시 나의 철봉 앞에 섰다. '매달려 볼까.' 남편이 옷을 받아주었다. '시간 좀 재 줘.' 떨렸다. 얼마나 매달릴 수 있을까. 2년 전보다 조금 무거워진 것도 같은데. 두 팔로 철봉을 잡고 껑충 뛰어올라 얼굴을 철봉 위로 내밀었다. 다리를 접어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몸통의 흔들림을 남편이 잠깐 잡아주었다. 그래 이 느낌이었지. 나의 하중을 오롯이 느꼈다. 쉽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았다. 게다가.
2년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안정감 같은 것이 있었다. 코어가 안정된 느낌이라고 말하면 너무 설레발 같지만. 복부 안쪽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안정감을 분명하게 느꼈다. 한참 더 매달려 있을 수 있는 기분이었다. 젖 먹던 힘까지 더 쓸 수도 있었지만 적당한 시점에 내려왔다. 몇 초야? 남편이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46초. 2년 만에 매달린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데?
그것도 운동이라고 몸에 열기가 올랐다. 외투를 살짝 걸치기만 하고 다시 걸었다.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매달리기는 2년 만이지만 나는 그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새로운 동네에 와서 1년 정도 PT를 받았고 그 후 1년은 일주일에 서너 번 혼자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나만의 루틴으로 운동을 해왔다.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구나. 내가 해 온 작은 노력들은 사라지지는 않는 거였다. 속도가 느리기는 해도, 오르락 만 아니고 내리락도 하겠지만 조금씩 우상향을 해가는구나. 그게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등바등 전전긍긍하며 산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노력하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말해봤자 다음날이면 또 발을 동동거리며 아등바등한다. 나의 애씀이 결과물 없이 헛되다고 여겨지면 더없이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고 야금야금 쌓인다. 나이가 들수록 사는 게 헛수고 같을 때가 많았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헛된 생각은 있을지언정 헛된 몸짓은 없어서 나의 몸 어느 구석에 먼지처럼 때처럼 때론 씨앗처럼 남는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202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