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 차 부부, 우정으로 산다?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저녁마다 세탁을 한다. 업무분장은 다음과 같다.
-A: 세탁물과 세제를 넣고 세탁 버튼을 누른 뒤 알림음이 울리면 다시 건조기로 옮겼다가(건조기 먼지 거름망을 깨끗이 닦는 게 주 업무) 건조를 마친 세탁물을 소파 위에 던져두기
-B: 세탁물을 잘 개킨 뒤에 원래 위치에 넣어두기
처음엔 A와 B의 업무 경계를 두고 종종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아예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두었다. 남편은 주로 A를, 나는 B를 해왔지만 고정된 역할은 아니다. 오늘은 내가 A라서 빨래를 넣어두고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세탁 종료 알림음 울리면 알려달라고 당부해 두고 방으로 들어와서 내 할 일을 했다.
한참이 지나 전화가 왔다. 남편이었다. 몇 걸음 걷기 싫어서 전화를 하다니. 세탁이 끝난 모양이구나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카톡 안 봐?
-수면 모드라서 안 울려. 빨래 끝났어?
-카톡 보면 알아.
뭐라고 써놨을까 궁금해하며 카톡 대화창을 열었을 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띠 띠로리 띠 띵 띠 띠로리링 띠로리리~
LG가전제품을 쓰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떠오를 바로 그 멜로디다.
이 메시지를 보고 든 생각은 '역시 귀엽군'이었다. 함께 외출을 할 때마다 주차장 기둥 뒤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 놀라게 하는 남편이라서, 음식을 한번 권하면 "안 먹어." 했다가 한번 더 권하면 냉큼 입 벌려 받아먹는 남편이라서 나는 남편이 참 귀엽다. 귀여운 데엔 장사가 없는 법이라서 권태 없이 아옹다옹, 알콩달콩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바로 오늘, 맥락 없지만 실감나는 꿈을 꾸었었다. 내가 (실종인지 의식불명인지의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수년 만에 돌아왔더니 남편은 이미 재혼한 상태였다. 이 사실을 알고 나는 남편을 원망한 게 아니라 같이 살 수 없어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더랬다. 잠에서 깨고도 한참 슬픔은 생생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2년이라던가 3년이라던가. 뇌파까지 측정해서 확인했다고 하니 과학적 근거를 갖춘 주장이다. 설렘과 떨림을 동반하는 강렬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무한히 지속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얼마 전 들은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금슬이 매우 좋은 부부를 대상으로 뇌파를 측정했더니, 배우자를 볼 때 나오는 뇌파가 자기 집 거실 소파를 볼 때의 그것과 비슷하더라는 거다. 빵 터질만한 유머 같지만 사랑이 설렘과 떨림, 열정을 지나면 편안함, 안정감으로 형태를 바꾼다는 맥락의 이야기였다.
마냥 귀엽고, 잃을까 염려되는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202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