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이란 무엇인가
추석 연휴 때의 일이다. 성묘를 위해 멀리 이동 중인 차 안.
9살짜리 조카와 나란히 앉아 온갖 게임을 하며 놀아주었다. 밸런스 게임(유튜브 평생 안 하기 vs. 닌텐도 평생 안 하기), 음식 월드컵(치킨 vs. 피자), 넌센스퀴즈(아몬드가 죽으면?), 369게임, 손병호 게임(초등학생 접어), 글자 거꾸로 빨리 말하기(쓰레기통, 통기레쓰) 등등. 게임 퍼레이드의 막바지쯤, 인물 맞히기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문제를 내기로 한 조카의 입에서 나온 첫 문장은, "귀여워요."였다.
나는 바로 답을 말했다. "이OO?"(문제를 낸 당사자인 조카)
조카는 낭패감을 살짝 비치더니 수줍게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맞았어요."
이번엔 내가 문제를 낼 차례였다. "귀여워."
정답을 맞히고자 의욕이 넘치는 조카는, 가족들 이름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 "아니야." "땡!"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다 말했다고 생각한 조카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고, 나는 그쯤 답을 알려주었다.
"정답은 큰아빠야.(그러니까 내 남편이다.)"
조카는 격하게 저항했다. "말도 안 돼. (혼잣말을 하는 중) 아니 어떻게 큰아빠가 귀여워요? (운전석에 앉은 큰 아빠를 관찰하며) 아, 도대체 어디가 귀여운 거지? 알 수가 없네."
혼돈에 빠진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그날 차 안에서 조카를 보면서 매 순간 귀여워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닌텐도와 유튜브 중에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인생의 난제 앞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부림치거나, 369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는 모습을 봤을 때, 게임에 졌을 때 숨기지 않고 드러내버리는 실망과 좌절마저도 귀여워서 아이구 귀여워 죽겠네 하면서 볼을 꼬집고 싶은 것을 몇 번이나 참았다.
귀여움이란 무엇일까. '모양이나 행동이 앙증맞고 곱살스러워 그 대상을 예쁘고 정겹게 여김'이라는 게 네이버 어학사전의 설명이다. 예쁘고 정겹게 여겨지는 그 모양이나 행동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일요일 저녁 소화를 시켜볼 요량으로 나선 박OO로드에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그 영향으로 남편의 귀여움을 운운하는 간지러운 글을 쓰기도 했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귀여움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떤 대상을 볼 때 귀엽다고 느끼는지. 어린아이, 작은 동물, 인형, 미니어처 등이 쉽게 떠올랐다. 일단 작은 것은 거의 귀엽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물리적으로 전혀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바꾸어 말하면 완전하게 무해한 존재랄까. 얼마 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마리오, 마리지 형제의 생명을 위협하던 악당 쿠파가 마지막에 (본의 아닌 스포일러 죄송) 광선총을 맞고 몸집이 작아지자마자 단숨에 악당이 앙증맞은 귀요미가 되었다.
그렇다면 또 생각해 본다. 몸집이 나보다 더 큰 남편이 어째서 내 눈에는 귀여운가. 물리적으로 현격하게 작은 존재가 아닌데도 귀여움을 느끼는 경우는 꽤나 많지 않던가. 생각이 잠시 막힐 뻔했는데,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의 흔한 장면이 생각났다. 질문자는 엄청 진지한데 (그 질문이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 진짜 심각할 때도 있었다.) 질문을 다 듣고 입을 뗀 법륜 스님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며 껄껄 웃기부터 하신다. 이때 법륜스님이 질문자에게 느끼는 감정이 일종의 '귀여움'이 아닐까.
빤히 수가 보이는 행동을 하는 사람(하지만 악의는 없어야 한다. 악의가 있는 존재는 무해하지 않으니까.), 내가 답을 알고 있는 문제 앞에서 골똘한 사람(나는 이미 확실한 답을 알고 있다고!), 예측한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내 저럴 줄 알았지!)을 보면 귀엽지 않나. 주차장 기둥 뒤에 숨는 남편의 행동이 귀여워 보이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숨어서 한참 나오지 않는다면 귀엽기는커녕 약이 올라 화가 나버릴 테니까. 기둥 너머로 신체의 일부가 빤히 보인다거나 뛰지만 속도가 느려 숨는 모습조차 보일 때 그때가 딱 귀여움의 정점이다. 이 경우 귀여움은 물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충분히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앙증맞은 몸집을 가졌다 해도 눈빛이 음침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에게서 쉽사리 귀여움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악의를 품을 수 있는 존재, 나를 곤란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상대 앞에서 저절로 올라오는 경계심 때문에 귀여움이 씨앗조차 뿌릴 수 없을 테니까. 하여, 내가 내린 결론은 귀여움의 본질은 '무해함'이라는 것. 속이 잘 보이고 생각이 쉽게 읽히고 빤히 수를 알겠는 투명한 존재는 대응 가능하므로 무해하고, 그래서 귀여울 수 있다. 물론 무해함은 귀여움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무해하지만 귀엽지 않을 수는 있다는 게 함정.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썸남, 썸녀가 귀엽게 보인다면, 그건 상대가 해석 가능한, 무해하지 않은, 곁에 둘만한 사람이라는 확인이 끝난 셈이다. 그래서 귀여운 데에는 장사가 없다. 만일 귀엽게 보이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그 앞에서 유리처럼 투명한 존재가 되어볼 일이다. 속을 빤히 읽히고 해석당하는, 티끌만큼도 해를 끼칠 리 없는 무해한 존재가 되자. 그런 척이 아니라 진정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는 기본이다. 귀여움을 장착한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을 상상해 본다. 몹시 설렌다. (202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