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다, 쓸만하다
정확히 일 년 전이 생각난다. 2022년 12월 31일 아침 일찍 차를 몰고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으로 향했다. 2층에 자리를 잡고 주섬주섬 노트북과 책, 노트를 꺼냈다.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던 작년, 당시 48개의 글이 업로드된 상태였다. 나는 글 50개를 채우고 싶었다. '채운다'는 표현조차 말이 안 되는 나만의 기준이었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였다. 자기와의 싸움이랄까. 풋.
올해의 책이라는 테마로 이미 후기 한 편을 올린 상태였는데 시리즈로서의 정합성을 가지려면 올해가 끝나기 전에 후속 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마음을 흔든 두 권의 책이 있었기에 아침부터 후기를 써 내려갔던 것이며 어쩐지 집중이 잘되는 마땅히 그 카페여야만 했던 것이다. 아흔아홉 석을 가졌어도 한 석을 채우고 싶어 한, 속담 속 어느 부자의 간절한 마음을 알 것도 같은 기분. 풋.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며 두 편의 글을 완성했다. 그날 건물을 나오면서 지불한 주차요금은 일만 천 원. 카페 이용자는 두 시간이 무료였으니 꽤나 오래 앉아 있었던 셈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안 한다고 해서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50편을 채우려고 글을 쓰면서 사실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등바등 안 하겠다면서 내가 또 이러고 있네? 근데 어쩌랴. 나란 사람.
목적한 바를 이루고 집으로 오면서 기분이 아주 좋았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어도 오직 그 충만한 성취감 하나를 위해 지난 금토일 부지런히 글을 썼다. 약속이 있었던 금요일에는 지하철 안에서 짬짬이 여행기를 썼고, 남편의 병시중을 들었던 어제는 약에 취해 잠든 환자(병명: 비염과 두통) 옆에서 연재글을 썼다. 지금은 저녁 외식을 앞둔 막간에 갑자기 생각난 얘기를 주절주절 쓰고 있다.
술술 써지는 날은 적고, 써야 되는데 라는 부담감뿐 마음이 동하지 않는 날은 많았다. 남이 쓴 좋은 글을 읽으면, 조바심이, 열등감이, 때론 좌절감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또 어떤 날은 패기와 열정 비슷한 마음이 솟구치기도 했다. 작가들마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여기저기에 글을 써둔 것만 봐도, 글쓰기의 난처함은 내 문제만은 아닌갑다.
흔들리는 나를 가만 들여다보는 명상으로도, 휘발되는 기억을 보조하는 외장하드로도, 살다가 건져낸 깨달음이나 통찰을 보존하는 방법이자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편집하는 삶의 기술로도 글쓰기는 나의 가장 귀한 것. 내 맘대로 안 돼서 안달 나지만, 안 보고 살 수 없어서 헤어질 수도 없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연인 같은 존재다.
문턱을 넘어 남들에게 보이는 글을 쓰기 시작한 작년의 박기복에게 고맙다. 박기복의 글을 읽어주고 하트를 눌러주고 댓글을 써주고 구독을 해준 분들에게도 무척 감사하다. 읽기와 쓰기를 향해 순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솔직하고 용감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이 공간(브런치 스토리)에서, 오래오래 놀고 싶다. (202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