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복의 널뛰기_제6화
'박기복의 널뛰기'를 구상할 때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쓰는 과정에서 알게 된 바가 있다. 내가 비로소 터널 바깥에서 빛을 받고 서있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는 지금의 나와 괴로움 속을 헤매던 그때의 나는 강을 사이에 둔 이쪽과 저쪽 만큼이나 떨어져 있다. 그 경계를 유유히 흐르는 것은, 이른바 '김주환의 가르침'
남동생은 나를 놀릴 때 샌님 내지는 먹물이라 표현하곤 하는데 내키지 않지만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이 명백하게 참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 수영강습을 신청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수영 첫걸음> 같은 책을 사서 읽는 거였다. 뭐든 책으로, 글자로 배울 수 있다고 믿는 타입. 그래서 이론을 토대로 착실하게 마스터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못한 헛똑똑이. 그게 나다.
어쨌거나 나 같은 먹물류의 인간에겐 머리로 납득하는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 혼돈과 무질서를 견디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터다. 운동을 위해 PT를 받을 때도 코치님에게 자꾸 설명을 요구했다. 근육 작동의 원리가 이해되어야 동작을 따라 하기가 수월했다. 숨이 차오르는 것을 꾹 참고 힘든 동작을 지속할 동기부여를 위해서도 납득의 과정은 중요했다.
김주환의 가르침이 나를 저격한 지점이 바로 이거였다. 저서 <내면소통>에도 나오는 마음근력 훈련의 구체적 방법들은 처음 들어본 것들이 아니다. 이런저런 책을 찾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추천받곤 하던 것들-명상, 운동, 존중하는 태도, 감사하는 마음 같은-이었다. 다만, 그는 나를 설득하였다. 어째서 그것들을 꾸준히 지속해야 하는지를 온전히 납득시켰다. 주장의 기반은 탄탄했다. 뇌과학이었다.
2022년 12월 어느 날이었을 거다. 유튜브앱을 열었다가 자극적인 썸네일(1000만 원을 줘도 아깝지 않다는 레전드 영상)을 보고 무심코 누른 재생 버튼이 나를 편도체와 전전두엽 피질의 세계로 이끌었다. 적절한 비유를 곁들인 설명은 이해하기 쉬웠다. 1시간 25분이 넘는 분량인데도 끊지 않고 한 번에 시청할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었다.
대전제는 간단하다. 인간의 뇌는 오로지 개체의 생존을 위해 작동한다는 것. 두개골 안 깜깜한 곳에 있는 뇌는 감각기관을 도구 삼아 외부 상황을 파악하고, 오직 생존에 최적화된 결정을 내리고 명령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생존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우리들의 고마운 뇌가 현대인에게 맞춤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것.
인류의 역사에서 압도적으로 길었던 구석기시대에 맞춰 진화한 그 상태 그대로, 나와 당신의 머릿속에 원시인들의 것과 작동 방식이 같은 뇌가 들어 있다. 사냥감을 찾아 하염없이 이동하는 삶,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맹수와 싸우다 죽든, 굶어 죽든 당장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에 딱 맞는 뇌 말이다.
생존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위험을 민감하게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감정으로 표현하자면 두려움이고 뇌의 입장에서는 편도체가 활성화된 상태를 뜻한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다른 기관들은 일제히 기능이 최소화되고 근육의 힘이 증가한다. 맹수를 사냥하느냐, 먹이가 되느냐의 기로에서 구석기시대인에게 제일 필요한 건 근력일 터다.
그러나 알다시피 현대인의 중요한 문제들(가령, 시험, 면접, 발표 같은 것들)은 근육으로 해결되는 것들이 아닐 뿐더러 두려움(불안)은 오히려 독이다. 시간을 관리하고 충동을 조절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편도체가 아니라 전전두피질 중심의 신경망을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는 '위기'를 인식하면 편도체 중심의 신경망을 통해 감정적인 대응을 하려고 하니 이래서 현대인들에게는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의 내내 듣게 되는 말은 편도체를 안정화시키고 전전두피질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편도체 안정화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명상이라는 걸 납득한 후에는 마음 잡고 명상을 시도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호흡에 집중하며 앉아있는 일이 뭐 얼마나 대단한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사라지니 떠오르는 잡생각을 떨치려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노력을 기꺼이 지속할 수 있게 된 거다.
또한, 그는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면소통 명상'을 제안한다. 마음 근력(자기 조절력, 자기 동기력, 대인관계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강조하는 것은 긍정적 내면소통이다. 이미 너무 많이 사용되어 닳아버린 단어들이지만, 용서, 연민, 사랑, 수용, 감사, 존중이 어째서 필요한가에 대한 차근차근한 가르침이야말로 나의 어둠과 빛의 세계를 가른 강물의 정체다.
수개월간,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에서 일요일 밤 9시마다 라이브 강의가 열렸다. 남편이 거실에서 <미운 우리 새끼>를 시청하는 동안 나는 노트를 펴고 메모를 해가며 강의를 들었다. 라이브 시청 인원은 회마다 천오백 명에서 이천 명 사이를 오갔다. 주말이 지고 있는 이 밤, 어딘가에서 얼굴 모를 사람들이 나처럼 집중해 설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반갑기도 했다.
강의를 들을 때면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공짜로 들어도 되나 황송한 마음이었다. 정성을 들여 준비한 강의에 담은 것은 지식만이 아닌 진심이었고, 강의를 통해 받은 건 가르침을 넘어선 위로였다.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언급하기는 쉽지만, 믿음을 심어주고 방법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 어려운 걸 그분이 해주었다. 하여,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나를 깨운 '김주환의 가르침'의 정수를 떠벌려 볼까 한다. (20240107)
7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