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부자의 호기로움에 관하여
나는 졸부다.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아쉽게도 돈이 아니라 시간 얘기. 3월부터 1년간 '자율 연수 휴직‘ 상태이니 2024학년도 한정 '시간 부자'인 셈이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휴직에는 뚜렷한 사유와 증빙서류가 필요할 텐데 자율 연수 휴직이란, 용어 그대로 자기 계발을 원하는 교사의 자유 의지가 그 사유다. 간단한 연수 계획서를 증빙서류로 제출하면 학교장의 허락 아래 절차가 마무리되는데 이토록 과정이 산뜻한 까닭은 무급이기 때문이다.
언제였더라. 자율 연수 휴직 제도가 신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색을 했다. 10년 이상 재직한 교사에 한해 딱 한 번 허용되는 휴식의 기회였으니 심사숙고가 필요했다. 게다가 일 년 치 급여를 기회비용 삼는 것이니 간단한 문제일 수는 없었다. 오십 대에 명예퇴직을 할 생각이라, 사십 대 후반에 일 년 쉬어주면 딱이겠다 싶어서 2024년을 자율 휴직의 해로 특정하고 버텨왔더랬다. 3년 남았다, 2년 남았다, 1년만 더.
지난해 말, 막상 신청서를 내려고 하니 일 년 치 급여를 포기하는 것이 아깝게 느껴지기는 했다. 갚아야 할 대출금도 남아있고 교직 생활이 대단히 힘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휴직을 신청했다. 돈이야 내년부터 다시 벌 것이고 견딜 수 없을만치 힘들 때 도망치는 마음으로 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행이었다. 회피나 도피가 아니라 나의 성실과 고생에 대한 ‘트로피’(라임 보소)라고 생각하자, 훨씬 결정이 쉬워졌다.
그리하여 시간 부자로 살면서 갖게 된 첫 마음은 ‘조바심’이었다. 금고에 현찰을 잔뜩 쌓아놓고 살면 이런 기분일까. 돈을 도둑맞을까 불안한 마음처럼 넘치는 시간을 알차게 쓰지 못할까 봐 괜히 조바심이 일었다. ‘알차게’라는 강박을 내려놓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처음부터 뭘 하려고 휴직을 한 게 아니었다. 한동안 타령하던 바로 그 ‘한량’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한량이 되는데도 연습은 필요했다.
내년 2월 복직을 앞두고 지난 일 년 뭐 했더라 한탄하지 않을 방법은 기록이었다. 사람이 시간을 보내려면 뭐든 하게 되어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고 동네 산책을 하는 소소한 일들일지언정 기록으로 남겨둔다면 적어도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식의 허망한 느낌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보다 일기를 더 자주, 많이 썼다. 조바심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쉬어도 되나?’로 시작해서 ‘알차게 보내야 되는데 어쩌지?’를 지나자 ‘야호, 나 시간 많다. 누려보자.’의 시기가 왔다. 알차게 보내기 위해 고심한다는 느낌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말하자면, 없이 살던 사람이 일확천금을 얻어 졸부가 되었을 때 할 법한 소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물론 내 경우는 돈이 아니라 시간 얘기다. 나는 엄연한 시간 부자 아니던가.
다들 각자의 근무지에서 일을 하고 만날 사람도 별로 없는 낮 시간, 부르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았다. 이사 온 지가 벌써 3년이 넘었는데 처음으로 시립, 구립 도서관에 안면을 텄다. 학기 중 도서관의 대낮 풍경은 고요했다. 책을 읽겠다며 왜 카페를 찾아다녔던가. 사람도 얼마 없는 도서관에 앉아 있으니 책이 참 잘 읽혔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해도 대출을 하지 않았다. 또 와서 읽으면 되니까. 시간 부자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플렉스랄까. 나는 시간을 펑펑 썼다.
내가 뚫은 두 도서관은 얄궂게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보 30분 내외의 거리에 있었다. 버스를 타면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대낮의 햇살을 받으며 걸었다. 물론 흐린 날에도 걸었다. 시간을 줄이려는 고민 같은 건 나 같은 시간 부자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시립 도서관이 위치한 자리는 이름난 재래시장 바로 옆이었다. 책을 보고 슬렁슬렁 걸으며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양쪽으로 난 상점들에서는 갖가지 주전부리를 팔고 있었지만 다만 시간부자일 뿐인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소화량과 열량을 가늠하면서 신중하게 한 두 가지씩만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많으니 뭐든 할 수 있고 해도 된다는 생각은 점점 해방감을 주었다. 내가 이십 년 넘도록 밥벌이를 위해 지불한 노동의 본질이 바로 ‘시간’이었음을 실감했다. 넘치는 것이 시간이지만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서 기왕이면 관심의 영역에 써야겠다는 포부가 피어올랐다.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하는 오전 음악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수준도 괜찮으니 누려보라는 얘기였다. 3월 14일 오전 11시 공연을 고민 없이 예약해 두었다. (기분상) 산 넘고 물 건너 한 시간 반 걸리는 예술의 전당에 자주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간 김에 미술 전시회도 볼까 욕심이 났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 아니던가.
때마침 진행 중이던 전시를 추천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셸 들라크루아‘라는 화가는 내가 알던 그 들라크루아(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가 아니었다. 오픈 시간으로 미리 예약해 두었다. 디데이를 이틀 앞두고 전격적인 남편의 제의가 있었다. 지방 출장이 있는데 OO 씨(내 친구)가 살고 있는 도시다, 한 차로 가서 자기가 업무상 만남을 갖는 동안 친구를 만나지 않겠냐는 거다. 그렇다. 남편은 내게 대리기사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친구와의 만남은 영리한 미끼였고 나는 그 미끼를 물었다. 예술의 전당과의 만남이 두 건이나 있었음에도 무리한 일정을 승낙했던 것은 역시 시간 부자의 호기로움 탓이었다.
3월 14일은 목요일이었다. 출근길의 지하철을 감당하면서 산 넘고 물 건너 예술의 전당에 갔다. 파리의 아름다움을 동화처럼 그려놓은 사랑스러운 그림들에 홀딱 반해 한 시간 가까이 서있다가 바로 음악당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고 클래식 공연을 관람했다. 중간중간 곡에 대한 설명 시간이 있었는데 나긋한 말소리에 잠깐 졸기도 했다. 커피 한 잔 할 여유도 없이 부랴부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후배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급해져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였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두 시간 반 넘게 달려 목적한 도시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을 피해 일찍 움직인 덕에 차는 생각보다 막히지 않았다. 간 김에 인근 명소도 둘러보았다. 아침부터 그림에, 음악에, 이제 관광까지 쉴 새 없는 질주였다. 남편 일행을 내려주고 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얼굴을 보는 건 몇 년 만이었다. 반가움을 안고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살가운 친구는 덕분에 얼굴 본다고 되레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남편과 후배 직원을 태워 두 시간 넘게 까만 밤길을 달렸다. 초행길이고 밤이니 당연히 긴장이 됐다. 후배 직원을 집 앞에 내려주고 나니 이미 밤 열한 시. 집으로 오면서 남편에게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시간 부자인 백수는 시간을 쓰는 일에 겁이 없다. 하지만 백수가 명심하여야 할 것이 있으니 시간 부자가 에너지 부자는 아니라는 것. 에너지 한도 초과로 방전되어 다음날 하루종일 귀한 시간을 몸져누워 있는 데에 쓰면서 다짐했다. 오직 시간 '한정' 부자일 뿐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로. (2024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