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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복 May 14. 2024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

누구에게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날파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전 글 ‘우리 집엔 팅커벨이 산다’ 참고) 날파리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다. 어느 여름날, 쓰레기를 버리려고 분리수거장으로 내려온 나는 일군의 날파리를 목격하게 된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 뚜껑이 열린 순간, 그 안을 사정없이 날아다니던 날파리들을.


그날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려오기 전에 내게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따라 그들을 보고 공연히 화가 났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 화의 정체는 에잇 더러운 날파리떼! 같은 비난이 아니었다. 한심한데 불쌍하고 불쌍해서 한심한, 그런 복잡한 마음이었달까. 손쉬운 비난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속상함에서 비롯된 꾸중 같은 것. 너네들 왜 이러고 사니… 냄새나는 쓰레기 주변이나 맴돌고.


그래봤자 잠시 스쳐가는 하찮고 사소한 생각일 뿐일 수도 있었는데 아직까지 또렷한 기억으로 남게 된 까닭은 그다음 때문이다.


쓰레기 처리를 속도감 있게 해치우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몸을 틀자마자 내 생각의 터무니없음을 깨달았다. 나도 참. 그럼 어쩌라는 거지? 날파리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어디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지? 벌이나 나비처럼 꽃밭을 헤매고 다니길 바란 건가, 새들처럼 창공을 날기를 바라는 건가. 파란 하늘 높이  줄지어 날아가는 날파리떼를 상상하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냄새나는 쓰레기 주변을 맴도는 것이야말로 저들의 삶이요 운명이라는 것을 납득해 버렸다.


날파리들이 자주 목격되는 곳이 쓰레기통 주변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그곳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자료조사차 ‘날파리’를 검색해 보았다. 초파리가 더 적절한 표현이었는데 나무위키를 통해 알게 된 그들의 이야기가 어마어마하다. 잠시 소개하자면,


초파리는 세계적으로 3천여 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최초의 초파리 화석은 무려 기원전 5600만 년에서 3390년 사이 시기의 것이다. 완전 변태 곤충으로서 성충이 되면 12시간 정도 지나 짝짓기를 하고 2일 후면 알을 낳는다. 1~2일 후면 애벌레가 되고 4~5일을 경과하면 번데기가 되었다가 다시 7일을 지나 초파리가 되는데 섭씨 20도 정도의 온도에서는 알에서 초파리까지 16일이, 25도 정도에선 13일이 소요된다. 더운 여름에 기승을 부리는 데는 역시 이유가 있다.


당과 산을 포함한 물체라면 어디든 상관없이 달려드는 것이 그들의 삶이라고 나무위키에 똑똑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의 영어 이름이 fruit fly이고 초파리의 '초'자가 식초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을 보니 참으로 잘 지은 명칭이다. 불나방이 빛을 좇고 다수의 인간들이 돈과 권력을 좇듯, 그들은 그저 당과 산을 좇는 것이니 초파리들이 과일 껍질이 나뒹구는 쓰레기통 주변을 기웃거리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내와 신내에 환장하는 그들이 쓰레기장 주변을 떠도는 것은 헤어날 길 없는 숙명이로구나 생각하며 당시 며칠 초파리를 다른 눈으로 봤었다. 얼마 전 날파리에 관한 글을 쓰는 사이 옛 기억이 다시 떠올랐던 것인데, 가진 것이 시간이다 보니(나는야 시간부자) 생각은 구르고 굴러 초파리에서 나에게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내가 헤어나지 못하고 맴도는 세계에 관해서 말이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가사로 삼아 만든 곡을 우연히 접하고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는 일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두꺼운 소설을 며칠에 걸쳐 성실히 읽어내는 일이 중요한 세계. 나의 심연을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세계라든지 보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줄기차게 떠들어댈 수 있는 세계에 관해서.


어떤 이에게는 돈이거나 명예일 수도, 종교나 인물, 게임이거나 골프이거나 음악이거나 등등. 어떤 세계의 언저리를 누군가 맴돌고 있다면 그것은 뭐가 됐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함부로 타박할 수는 없다. '홀림'으로 가는 알고리즘에는 기질이든, 습관이든, 추억이든, 상처든 양상은 달라도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내 눈에 가장 매혹적인 세계를 꼽아본다. 결론은 역시 '이야기'라는 세계다. '읽고 쓰는 사람'이 인간 박기복 제1의 정체성인 이유다. 윤동주의 시어와 위화감 없이 녹아드는 저음의 목소리를 반복재생하다가 하고 싶은 말을 골라가며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날파리가 그러하듯 나도 어쩔 수 없이 맴도는 자리가 정해진 탓이다. 그나저나 날파리 한 마리를 보고 글을 두 편이나 썼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날파리라는 세계를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위잉위잉. (20240514)


사진출처: 핀터레스트(드라마 '더킹 영원의 군주')

별 헤는 밤(윤동주 시, 조범진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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