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의 즐거움
밤 산책을 다녀왔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자는 생각으로 나섰을 때만 해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크게 한 바퀴를 돌 생각이었다. 그 큰 한 바퀴는 차들이 달리는 다차선 도로를 따라 구획된 커다란 사각형이었다. 음악을 들을 요량으로 이어폰을 꼈다가 오랜만에 팟캐스트로 KBS 라디오 문학관을 들어볼까 싶어졌다. 단지 안은 조용했지만 큰길로 나가면 자동차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성우들이 연기하는 드라마가 잘 들리지 않을 터였다.
계획을 변경해서 단지 안을 돌기로 했다. 발에 착 감기는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지만 걸어야 할 영역이 줄어들었으니 빨리 걸을 이유가 없어졌다. 세상 한가한 사람처럼, 누가 봐도 산책을 위한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느긋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딛었다. 연필을 한 번도 떼지 않고 가장 큰 도형을 그린다는 마음으로 산책로를 구상하며 걷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산책을 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단지에는 총 3개의 출입구가 있었고 출입구를 지나치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신호등은 있지만, 지키기도(차가 거의 지나가지 않으니) 안 지키기도(어쨌거나 빨간 불인데 꼬마 애들이 볼 수도 있으니) 애매한 구간이었다. 횡단보도를 통과하지 않으려면 주차장 출입구를 따라 돌아야 하는데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분리수거장 근처를 지나가야 했다. 오늘은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날이지만 여름이 가까워오고 있으니 근처 공기가 산뜻할리는 없다.
그래서 나는 마구잡이로 걸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휙 뒤돌아 왔던 길로 걸어가기도 했고 같은 구간을 뱅글뱅글 몇 바퀴 돌기도 했다. 물론 아주 느긋한 걸음으로. 이건 나답지 않은 산책이었다. 그러니까 그간 내가 해오던 방식은 산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산책이었는데 덕분에 듣고 싶었던 라디오 드라마를 방해 없이 온전히 들을 수 있었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을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시선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사진도 찍었다. 올려다본 하늘도, 내려다본 보도블록도 무엇하나 평범하지 않았다. 특히 가로등 빛 아래 나뭇잎들은 밝은 대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어둠 속의 은은한 빛에는 확실히 우아함 같은 것이 있었다. 낮에는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단지 안 곳곳의 가로등이 밤이 되니 존재감을 뽐냈다. 가로등의 빛은 '인생에 고통이 없다면 지혜가 빛날 리 없지' 따위의 생각으로 번졌다.(은유와 비약이 일상인 편)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50분짜리 드라마가 끝나갈 즈음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천천히 걸은 덕분에 피로감은 없었다. 14층까지 충분히 걸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둑판 모양의 노트에 한 칸, 한 칸, 기역니은을 써 내려가는 아이처럼, 차근차근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집까지 걸어 올라갔다. 도어록 버튼을 누를 즈음에는 다리가 약간 후들거리는 것 같았지만 숨은 차지 않았다. 건강어플의 걸음수를 채우거나 유산소 운동을 위한 산책과는 차원이 다른 굉장히 멋진 산책을 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다운 삶이란 나에게 알맞은 속도와 에너지를 가늠하며 사는 것이라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다운 삶으로의 초대') 가장 나다운 산책의 형태를 오늘에서야 찾은 것 같다. 일상의 에너지를 아끼려고 규칙과 질서에 연연했었다. 루틴이 삶을 단순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여주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은 나 같은 사람에겐 중요하다. 분명히 중요한데 전부는 아니었다.
늘 하던 대로만 해서는 나에 맞춤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어차피 '변하지 않는 나'라는 것 자체가 허상이니까! 내 안의 즉흥성과 변덕스러움, 기복이 불편해 잠재우려고만 했는데 이런 특이성들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염원하는 나다운 삶으로 이끌어 줄 선물 같은 재능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마침 오늘 ‘자기 돌봄(타라 브랙, 2011)‘이라는 책을 읽다가 좋은 시를 발견했다.
인간이란 여인숙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우울, 초라함
몇 가지 순간적인 깨달음들이
뜻밖의 손님으로 찾아온다
그들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하라
그들이 한 무리의 슬픔이라서
그대 집을 난폭하게 휩쓸고
가구들을 다 없애더라도
여전히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며 대접하라
아마도 그는 새로운 상쾌함을 위해
그대를 청소해 주는 것일 테니
암울한 생각, 수치심, 못된 마음
그들도 문에서 웃으며 맞이하라
그리고 안으로 초대해 들이라
그 누가 오든지 감사하라
각각의 손님은 안내자로서
저 위로부터 보내졌을 테니
-잘랄루딘 루미, <여인숙>-
천덕꾸러기로 여겼던 손님들을 따라 깨달음이라는 반가운 손님이 바로 오늘 나를 찾아왔다. 깨달음 덕에 멋진 산책을 한 것인지, 멋진 산책으로 깨달음이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무엇이든 환대하고픈 밤이다. (20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