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영장에 가는 이유
수영장의 계급은 셋으로 나뉜다. 초급, 중급, 그리고 상급. 자유수영 시간, 25m 길이의 6개 레인 앞에는 처음 온 사람도 알 수 있도록 안내판이 놓여 있다. 시작점에서 물을 바라보고 섰을 때 오른쪽 두 개가 초급 레인. 이제 막 자유형을 익혀서 숨 좀 쉴 수 있게 된 나의 구역이다. 초급 두 레인 중에서도 맨 오른쪽이 왕초보의 자리다. 암묵적으로 그렇다.
두 달 전 자유수영에 참여하려고 검색을 하다가 실력에 따라 구역이 나뉘어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느려 터진 속도로 헤엄을 치면서 누군가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은 영 미안스럽고, 그리하여 그 구역 천덕꾸러기가 되는 일은 수치스러워 걱정이었는데 한결 안심이었다. 수준이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 가면서 여유 있게 자유수영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바람직한가.
그러나 처음 목격한 왕초보 레인의 상황은 예상한 그림이 아니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물 반 사람 반이라 해야 하나. 25미터 레인에 총 열여섯 명이 들어가 있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은 그게 주말 이용자수의 평균치였고 평일 자유수영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늘 열두 명 내외를 유지했다. 왕복 50미터이니, 1인에게 허용된 거리는 고작 3~4미터라는 거다.
이런 식이라면 제대로 연습이 가능할까 했던 염려는 쓸데없었다. 연습이 안될 것처럼 보이지만 원하는 만큼 연습은 가능했다. 말이 안 되는데 이게 되네? 하는 웃픈 아이러니. 이유는 왕초보들은 수영과 휴식의 배분이 아주 조화롭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헤엄과 걷기를 병행하고 있는 앞 주자를 따라잡을 능력자들도 아니었다. 시작점과 반환점은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번잡했다. 수영장 벽에 몸을 밀착하고 다들 가쁜 숨을 고르기 바빴다.
그렇다고 질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휴식을 취하겠다는 의사표시(물 안경 이마에 걸쳐두기, 먼 산 보기, 구석 자리 찾아가기)를 하지 않는 한 순서는 준수되었다. 물안경을 다시 고쳐 쓰거나 출발 위치로 몸을 옮기면 주자의 의사는 존중되었다. 충분히 쉬셨나요? 그럼 먼저 출발하시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스러운 공간. 저마다 겸손하기 그지없는 실력과 체력대로 자유롭게 즐기면 그뿐이니 눈치 보거나 주눅 들 이유도 없었다.
강습 때 배운 것과 유튜브로 익힌 것들을 기억하면서 레인을 왔다 갔다 했다. 몸을 쭉 펴서 유선형으로 만들고(싶지만 택도 없고) 발모양을 잡고(싶지만 발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고) 롤링을 하(는 시늉을 하)고 팔을 젓(는다기보다 휘두르)고 숨을 쉬(기 위해 사력을 다하)면서. 초반에는 자주 팔, 다리, 호흡이 꼬여서 물을 들이켜게 되고 다급히 중간에 멈춰 서곤 했지만, 하고 또 하면 언젠가는 늘겠지라는 느긋한 마음은 다행히 닳지 않았다.
수영에 대한 내 마음은 (경험한 적은 없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맘과 비슷할 것 같다. 사랑을 쏟은 상대에게 기대를 품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동물에게는 바라는 것 없이 무한사랑을 주게 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수영에 시간과 애정을 쏟고 있지만 기대는 작다. 운동 능력의 부족을 어렸을 때부터 순순히 받아들인 덕분이다. 오직 자유형만 즐길 수 있으면 충분하다. 유튜브에서 ‘부드러운 자유형’을 자주 검색하긴 하지만, 영영 뻣뻣한 수영만 하더라도 괜찮다.
간혹 실력 좋은 뒷사람이 앞질러 가도록 잠시 비켜주게 되더라도 열등감의 'ㅇ'도 느끼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물속을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고 어제보다 오늘 좀 낫다는 걸 내가 안다. 그래서 적어도 헤엄치는 동안에는 내게 기본 사양으로 장착되어 있는 비교와 경쟁의 마음이 헐거워지고 타인의 인정을 얻으려는 욕구가 힘을 잃는다. 사람 수만큼 다양한 영법이 존재하는 초급 레인을 누비는 나의 느긋한 마음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발이 닿는 깊이인데도 빠져 죽을까 봐 겁을 내던 왕왕초보 시절, 아직 숨을 쉬다가 못 쉬다가 불안 불안할 때의 일이다. 출발 지점에서 몸을 붕 띄워서 헤엄을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물이 나를 떠받쳐주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부력이었다.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 올려지는 힘. 평소에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것은 중력이지만 공기보다 수백 배 밀도가 높은 물질인 물에서는 부력이 믿는 구석이 된다.
내 몸에 작용하는 부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몸에 힘을 빼야 한다. 박자를 놓치지 않고 호흡을 하려면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해야 한다. 잡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익숙한 중력의 세계에서는 넘치는 생각에 짓눌려 살았는데, 무겁게 누르던 생각의 무게를 물은 무디게 했다. 그리하여 물속에서 내가 맞이하게 되는 것은 자유로움과 가벼움이다. 그토록 어렵던 명상을 수영장에서 저절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매력을 알아버린 덕분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수영장에 간다. 팔을 앞으로 뻗어 몸을 쭈욱 펴고 발끝으로 벽을 밀며 출발하는 순간이, 25미터 레인을 휴식 없이 왕복했을 때가,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기특해하며 물 밖으로 나오면서 무척 행복하다. 아직도 종종 본의 아니게 물을 먹지만 입안의 찝찝한 물기를 뱉으며 생각한다. 마음이 메말라 쩍쩍 갈라질 때, 머릿속이 꽉 막혀 뻑뻑할 때, 물기를 채우러 수영장에 오면 되겠다고. 감히 추천하자면, 심신 단련에 수영만 한 게 없다.(20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