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기복 Dec 17. 2024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내 손 안의 보물지도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게 2022년 1월이다. 작가 심사를 받고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가 설날 며느리 노릇을 하며 폭발한 감정을 토로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편 이상 쓰다가 점점 게을러져서 한 달에 한 편도 쓰지 않고 넘긴 적도 있다.


글쓰기의 동력이 떨어졌던 건 싫증을 잘 내는 성격(나는야 박‘기복’이니깐요) 때문은 아니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내는 과정은 여전히 질리지 않는 즐거움이었지만, 재능에 대한 의심과 외부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실망으로 심통이 났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꽤 오랫동안 브런치에 올라온 남의 글은 안 읽고 내 글만 쓴다고 들락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나는 남의 글을 읽지 않았으니 얌체 같은 행동이 맞다. 물론 나름의 변을 할 수는 있다. 부끄럽지만, 인이 박혀서 떨치지 못하는 ‘비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어 질수록 잘 쓴 글을 보면 조바심이 났다. 비교와 경쟁이 내면화된 탓이었다. 아예 에세이들을 읽기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어쩜 이렇게 잘 쓸 수가 있지?, 이런 좋은 글을 나는 쓸 수 없겠지? 동경과 그 반작용으로 생기는 좌절은 편하게 글을 읽을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수백 개의 라이킷을 받는 브런치 작가들을 보면 샘이 났다. 숫자가 명징하게 드러내는 차이라는 것은 얼마나 단도직입적인가. 인간사 많은 일들이 ‘기세’가 중요한데 비교와 시샘에 야금야금 잡아먹힌 열정은 힘을 쓰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누군가 내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달아도 뭐라 답해야 할지 난처했다. 열린 공간에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은 열지 못한 탓이었다. 친한 사람들하고만 연결되는 닫힌 세계. 그게 그간 내가 살았던 우주였다.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이랬던 내가 달라졌다.


생각지도 못한 갑상선암 진단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간 거저 얻은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었고 잃으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중히 여겼던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재판관을 자청하며 나 자신을 외롭게 둔 것이 사무치게 후회가 됐다.


글쓰기가 내게 재미와 기쁨을 주는 일이 확실한데, 재능 따위, 숫자 따위, 인정 따위 그게 다 뭐람? 내 진심만 담겼다면 잡글을 신나게 휘갈겨도 그만이지. 그때부터는 주저 없이 수다를 풀어내듯 내 글을 즐겁게 쓰고 남의 글들도 재미나게 읽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꼭 시간을 들여 브런치의 글들을 읽는다. 내가 구독한 작가들의 글을 차례차례 읽으면서 라이킷이나 댓글로 반응을 전한다. 내가 쓴 글에 라이킷을 눌러준 작가들의 글을 몇 편은 꼭 읽어본다. 내가 문장을 쓸 때 들이는 노력만큼 그들도 그랬을 것을 아니까 성의를 다해 읽으려고 노력한다.  


새로 알게 된 작가들을 구독하는 일도 전보다 잦아졌다. 나와 비슷한 결이라서 구독하고, 나와 다른 결이라서 구독하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서, 내가 모르는 경험을 해서 구독하는 식이다. 내 안의 뭔가가 건드려졌다면 계산 없이 구독을 누른다.


질병 때문에 갑자기 직면한 거대한 외로움과 거기서부터 헤매다 도착한 연대감도 나를 변화시켰다. (글 온탕과 냉탕 사이​,  당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고통 안에서 연결된 존재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내 감정을 관찰하고 글을 도구삼아 사색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귀한 변화다.


모르는 타인들의 삶이 궁금하다. 왜곡되고 단편적인 시선으로 쉽게 부러워하거나 동정하는 대신, 다들 저마다 적당히 쓰고 적당히 단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균형 감각이 생겼다. <심신단련> 1화는 수영장에서 질서를 지키지 않는 몇몇에 대한 짜증에서 시작됐었는데 석 달이 지나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다니.


당장 카페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부터 달라졌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톤이 독특해서 내 귀에 음성이 쏙쏙 박혀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저 남다른 재능을 직업적으로 살리고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유모차를 끌고 여럿이 와서 떠나가라 떠들어도 그래 저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싶다. 한 시간 넘게 최고의 딕션으로 보험 상담을 해주는 옆자리 상담사의 직업 정신과 전문성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낸다.


나를 뒤흔든 최근의 건강 이슈는 곧 수술이라는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역사적 사건을 논할 때처럼 ‘의의’를 찾자면(일종의 직업병!) 식생활의 혁신부터 떠오르지만, 사실 더 중대한 의의는 닫힌 줄도 몰랐던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는 계기가 됐다는 거다. 그 덕분에 좀 더 넓고 안온한 세계에 안착하게 되었으니까.


어쨌거나 평범한 인간인 나는 클리셰를 벗어날 도리가 없다. 전화위복! 새옹지마! 무르팍 깨지게 넘어졌지만 보도블록 틈사이에 끼워진 보물지도를 발견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어디서 봤더라. 삶에는 딱 두 가지 경우만 있다고. 이기거나, 배우거나. (202412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